화이트 크리스마스의 기적 6

금은형 단편 연재소설

by 김은형

“ 하하하 저보다 더 오래된 향수 이야기군요. ”

“ 어? 웃으셨네요? 평생 웃지 않을 것 같은 얼굴이신데? 하하하 ”

“ 제가 그렇게 무서워 보이나요? ”

“ 아뇨 무섭진 않은데 어두워보여요. 무겁고 어둡고 행복하지 않아 보여요.”

“ 초면에 실례를 무릅쓰시는 것이 특기 이신가 봐요? ”

“ 네, 맞아요. 하지만 지금은 실례를 무릅쓰기 위함이 아니라 선생님은 웃는 모습이 훨씬 멋지고 행복해 보이신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던 거예요. ”


나의 말이 끝나고 한동안 그는 말이 없었다. 그리고 나도 뻘쭘하여 또다시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를 모르고 있었다.


“ 이제 다 됐습니다. 폐 타이어 트렁크에 다시 넣어야 하니 트렁크 여세요.”

“ 아.. 네.”


트렁크를 여는 순간 잊고 있었던 그림 액자가 하나 눈에 들어왔다. 동생에게 의뢰해서 만들었던 문인화 액자였다. 매화꽃 속에 새가 앉아 봄을 노래하는 모습이었다. 순간 이 그림을 이 사람에게 선물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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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 이거 제 동생 작품인데, 감사의 인사로 드리고 싶어요. 양난도 싫다고 거절하셨으니.. 분명 돈은 더 받지 않으실 거고, 이 그림을 받아주세요. 작품의 완성도가 마음에 드실지 모르지만 제 진심의 감사의 마음으로 알고 받아주세요. ”

“ 아뇨 싫습니다. 다만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서 도와드린 것이지. 어떤 대가를 원했던 것은 아닙니다. ”

“ 그래도 전 선생님께 오늘의 노고와 친절에 보답하고 싶어요. 사양 마시고 받아주세요. 값이 많이 나가는 작품도 아니에요. 하지만 거실에 걸어놓고 쵸코 케이크 먹기엔 좋을 거예요. ”

“싫습니다. 어서 연장이나 정리하게 도와주세요. 눈이 더 거세지고 있어요. 밤도 어두워졌고요. 도로가 더 미끄러워지기 전에 출발하세요. 서두르죠. ”

“ 받아주세요, 만약 고장 난 바퀴를 고친 것이 선행이고 봉사였다고 생각하신다면 이 그림은 그냥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아주세요. 산타 할아버지도 모르는 아이들에게 선물 주시잖아요. 그냥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아주세요. ”

“ 충분히 받았습니다. 양난을 사는 당신을 본 것, 코코 마드모아젤 향이 나는 당신의 뒷모습에서 그녀를 발견하고 추억한 것만으로도 충분한 크리스마스이브의 기적이었어요. 더욱이 저를 웃게 해 주셨잖아요. 그것도 크리스마스이브에....... ”




“ 그거야 누구나 그럴 수 있죠. 제가 의도적으로 보답한 것은 아니잖아요. 하지만 선생님은 저를 위해 시간과 노력을 아끼지 않으셨죠. 그러니 저도 보답하고 싶어요. 그림이 맘에 들지 않으세요? ”

“ 아뇨, 아닙니다. 당신은 양난을 샀고, 쵸코 케이크를 샀죠. 그리고 코코 마드모아젤 향기로 꼭꼭 숨겨놓고 가둬놓았던 내 생애 최고 순간들의 자물쇠를 열어 주었어요. 그리곤 내게 아름답고 행복했던 추억들 속에 눈 내리는 크리스마스이브의 행복을 맛보게 해 주었죠. 그것으로 됐어요. 그것으로 된 거죠. ”

“ 그래도... 제가 죄송해서..... ”

“ 안 되겠네요. 아마도 선생님은 끝끝내 그 그림을 제게 주고 싶어 하실 것 같고, 저는 받을 수 없고.... 안녕히 가세요. 저 먼저 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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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 어? 자 잠깐만요, 잠깐만요... 선생님! 이거 가져가세요, 크리스마스 선물이에요, 이 그림을 가져가세요.! 선물이에요, 선물! 선물 받을 줄도 몰라요? 전 어쩌라고요? 미안해서 어쩌라고요? ”


그러나 나의 말은 내 귀에만 들릴 뿐 그는 이미 호텔 주차장 어딘가로 마치 괴도 루팡이 트렌치코트를 휘날리며 사라지는 것처럼 버버리 자락을 휘날리며 사라져 버렸다.


잡을 수도 없었다.


뛰어 달아나는 그를 따라 조금 뛰어 보았지만, 헌 옷 가게에서 2500원 주고 산 웨스턴 스타일 가죽부츠의 바닥이 미끄러워 더 이상 뛸 수도 없었다. 그저 막막한 마음으로 그가 사라진 곳을 한참을 눈을 맞으며 서 있었다.


미안함과 고마운 마음을 지나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져 왔다.

마치 화이트 크리스마스의 기적과 같은 동화 속에 내가 우뚝 서 있는 기분이었다고 할까?


눈은 그렇게 따뜻하고 포근하게 멍하니 서 있는 내 외투 위로 쌓여갔다. 몇 분 뒤 정신을 수습하고 타이어 펑크를 수리하던 자리를 정리한 뒤 시동을 걸었다. 친절한 그의 레몬향기가 여전히 코 끝에서 맴돌았다.

화이트 크리스마스의 기적이었다.

그러나 곧 드라나의 환상의 세계에서 빠져나와 현실의 세계로 다시 투신할 시간이 오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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