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잠수함 1

금은형 단편 연재소설

by 김은형


내가 아는 그녀는 글로써만 존재한다. 그러나 난 누구보다도 그녈 잘 알고 있다. 그녀가 무엇을 했는지, 무엇을 느끼는지, 무엇을 열망하는지..... 그리고 좋아하는 음식은 무엇이고, 좋아하는 사람들은 누구인지, 몇 살인지, 아이는 몇인지 등등...


누군가에게 비웃음을 당한다 할지라도 이미 난 그녀를 포기할 수 없다. 그녀의 블로그 읽기를 포기하지 못한다. 매일매일 그녀가 궁금하니까. 그리고 매일매일 그녀가 더 알고 싶어 지니까. 이런 나 자신이 웃기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녀의 블로그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우연히 내 랜덤 블로그에 그녀의 블로그가 들어오면서부터이다. 클릭한 그녀의 블로그 대표 폴더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올라와 있었다.


고속도로 위를 닭장차가 달린다. 닭장 속의 닭들이 모두 나를 닮았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왜 가는지도 모르면서 닭장 속에 갇혀 이리저리 흔들리며 자기 의지와는 상관없이 인생의 종말을 향해 달려가는 모습이......

그러나 닭들은 아무 생각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어쩌면 행복할지도....

나도 정말 그들처럼 아무 생각 없이 살 수 있다면 좋겠다.

고속도로 위를 달리는 저 닭들처럼 예고된 운명이 가까웠다 할지라도 아무 생각 없이 머릿속을 비워낸다면 좋겠다. 하지만 오늘 아침의 내 머릿속은 너무 복잡하다. 너무 많은 것을 욕망하고 갈구하고 있기에 복잡하다.

나는 정말 필요 이상의 것들을 욕망하고 있는 것일까?

진정 내 삶에서 그것들은 분에 넘치는 것일까? 그래! 아마도 그런 것 같다.

좁은 닭장 속에 갇힌 채로 세찬 바람맞으며 죽음을 향해 달리는 닭들도

저렇듯 자신의 삶을 겸허히 받아들이는데......


닭장차 이야기는 왠지 모르게 그의 정체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시켰다. 사실 나도 나의 갇힌 일상에 대해 답답증을 느껴오던 차였다.


직장상사의 일관성 없는 업무태도와 필요 이상의 집권 남용이 회사 전체의 의욕을 떨어뜨리고 있었고, 기획 파트의 우리 팀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긴장 속에 살아야 했다. 언제 어떻게 상사의 변덕이 우릴 괴롭힐지는 아무도 몰랐다. 이러한 긴장으로 퇴근 후 저녁마다 상사의 거만하고 새털같이 가벼운 태도에 대해 구토감을 느끼며 술을 마셔댔다.


그여자의 블로그 1.png


사실 나도 다르지 않았다. 닭장 속의 닭들과...... 그러나 답 글은 쓰지는 않았다. 프로필에는 여자이며 30대라고 기록되어 있었으나, 남자인 나도 나 자신을 프로필에 여자로 등록하지 않았던가?

며칠 후 일기를 쓰기 위해 내 블로그에 들어갔는데 다녀간 블로그에 “2004 블로그”가 등록이 되어있었다. 갑자기 반가움이 느껴지면서 저절로 더블클릭이 되었다.

새로운 글이 다시 업데이트되어 있었다.




출근길에 돼지를 싣고 가는 트럭을 만났다. 그리고 그중 맨 뒷자리에 있던 돼지와 눈이 마주쳤다.


< 오정동 농수산물 시장 > 앞에서.


그곳엔 도매 정육점들이 즐비한 곳이다. 아마도 그들은 그곳으로 팔려 온 것이 분명했다. 죽음을 생각했다. 며칠 전 부장님 어머님 장례식장에서 느꼈던 알싸한 아픔이 가슴을 찔렀다. 아팠다.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돼지의 눈을 피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눈으로 이야기했다.

“ 잘 가! 언젠가는 나도 너처럼 사람들의 이별의 인사를 받게 될 거야. 다만 네가 먼저 레테의 강기슭에서 인사를 건네받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 ”


어제 금산 엄마 집에 갔는데, 얼마 전 돌아가신 화자네 이모가 자식들 앞에 나타났다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살아생전에 여한이 너무 많으셔서 그렇다고 동네가 들썩거린단다. 화자네 엄마와 그 가족사는 완전히 소설 감이다. 언젠가는 그 가족의 이야기를 소설이나 드라마로 쓰고 싶다. 너무 드라마틱해서 리얼리티가 떨어지려나?


어쨌든 요즘엔 어쩌면 죽음이라는 일상의 장치가(?) 꼭 필요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아직도 내가 철딱서니 없는 아이라서 그런 거겠지? 쿠쿠.

트럭 위의 돼지는 내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난 한동안 돼지고기를 못 먹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돼지의 명복을 빈다. 살아서 무심하게 날 쳐다보는 돼지를 보며 명복을 빈다. 죽기 전에 목욕이라도 시원하게 해 주었음 하는 바람으로 기도한다. 트럭 위의 돼지를 위해 기도한다.

닭과 돼지 모두 좋은 곳으로... ^^



출근길에 만난 돼지와 닭들에 대한 잔상이 나로 하여금 짧은 답 글을 남기게 했다. 그의 블로그에는 혼잣말이라는 폴더가 새로이 생성되어 있었다. 아마도 내가 쓰는 일기장의 기능을 가진 폴더인 것 같았다. 호기심에 난 얼른 클릭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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