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팸 메일을 지우려고 받은 메일을 뒤적거리다가 아주 오래 전의 편지를 읽게 되었다. 2003년 1월 6일에 도착한 메일이었다. 일본에서.
새해 인사가 담긴 그 편지를 읽고 얼마나 마음이 따뜻했던지.....
일본 쓰쿠바엔 내가 정말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
오카노 선생님과 그의 아내인 키요미 선생님, 그리고 그들의 아들인 키요히로..
일본에 갔을 때 일본 사람들의 일상을 체험해 보는 홈스테이가 있었다. 바로 그 프로그램으로 알게 된 사람들이 쓰쿠바의 오카노 선생님 가족들이다. 그들과 함께 한 1박 2일의 시간 동안 우린 너무도 정이 들었다. 짧다면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들과의 시간은 내 평생 잊히지 않을 추억이 되었다.
얼마 전에도 오카노 선생님에게 한국 소주를 보냈다. 작년에도 보냈었는데......
하지만 내가 일본말을 못 하고, 그들은 한국말을 못 하기에 편지하기에도 한계가 있었다. 특히 내 컴퓨터가 일본어로 된 그들의 편지를 읽지 못하고 깨져서 도착하여 더욱 안타까웠다. 내가 좀 더 적극적이었다면 컴퓨터를 업그레이드해서 그들의 편지를 읽을 수 있었을 텐데.....
그들과 헤어질 때 일본말을 꼭 배우겠다고 약속했지만, 난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언젠가는 꼭 그들의 집에 다시 찾아가고 싶다. 그리고 오카노 선생님 집에서 농사지은 쌀과 배추로 만든 음식을 먹으며 시원한 맥주 한잔과 함께 그렇게 웃고 떠들고 싶다. 그들이 사는 150년 된 집 지붕이 흔들릴 정도로......
키요미 선생님네 집의 일본식 정원도 그립다. 정말 아름다웠는데... 뒤뜰의 삼나무 숲도.....
키요미 선생님의 훌륭한 음식들도 여전하겠지? 키요히로의 오염되지 않은 웃음도....
키요히로... 키요히로를 생각하니 잠깐의 흔들림이 나를 전율케 한다.
마치 신화 속에 나오는 안개에 휩싸인 작고 아름다운 섬 같은 느낌으로 말없이 고요한 미소를 담아내던 키요히로의 모습은 그야말로 정말 잊지 못할 일본의 추억이다. 다음 날 아침 그의 집을 떠나올 때 오카노 선생님 가족과 우린 서로 많은 선물을 주고받았다. 키요히로에게서 받은 미샤의 음반은 위로가 필요한 날이면 어김없이 CD 플레이어 위에 올려진다. 미샤의 음악을 통해 느껴지는 그들의 따뜻함이 늘 나를 위로하기 때문이다.
블로거의 혼잣말로 난 분명 그가 여자라는 것을 확인할 수가 있었다. 그리고 갑자기 블로그의 그녀가 가여운 생각이 들었다. 왜 그녀가 갑자기 가여워졌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오늘도 답 글을 쓰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어제와 다른 이유로 왠지 그녀에 대한 묘한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다. 섬같이 느껴지는 남자에 대한 흔들림에도 불구하고 왜 그녀는 고백을 하지 않은 것일까? 그녀가 말한 흔들림이란 내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가?
온갖 망상에 사로잡혀 있는 그 순간에도 난 자유롭지 못했다. 이유는 의뢰받은 작품의 기일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명 작곡가인 나는 처음으로 작품 의뢰를 받아 작품 만들기에 착수하였으나 거의 진척이 없는 상태였다. 시간이 정처 없이 흘러가고 작품은 나오지 않고 하여 긴장만 더해가고 있었다.
로맨스였나요? ^^; 상상만으로도 멋진 매력을 지녔던 분 같네요. 그런데 왜 고백하지 않으셨나요? *^^*
블루터치 님! 제 블로그에 자주 방문해주셔서 감사^^
그녀의 답 글에는 내 질문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로맨스가 아니었나? 엉뚱한 상상으로 다시 작품 마감 시간만 지연시키고 있는 나 자신이 한심했다. 그런데 문득 그녀에게 내 작품을 들려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20대 후반쯤 되었을까? 아니면 초반? 30대 초반? 중반? 어지러운 상상으로 가득하다가 그만 잠이 들어버렸다.
도대체 의미 있는 일이란 무엇이지?
직장에서의 일은 아무리 해도 끝이 나지 않고, 또 해보았자 표도 나지 않는다.
그럼 집안일은?
집안일도 아무리 해도 끝이 없고 , 이도 마찬가지로 별로 표도 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나에게 도대체 의미 있는 일이란 무엇일까?
어제는 내가 자주 찾는 보석사에 갔었다.
비가 온 뒤라 그런지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물론 스님과 보살님들은 초파일 준비에 매우 분주한 듯했다. 그러나 오히려 그 점이 더욱 절을 고요하게 만들고 있었다.
보석사 앞 작은 호수 가운데에 수양버들이 한 그루 서 있는데, 그곳에서 아주 예쁜 목소리로 노래하는 긴 부리 주황 새가 앉아 있었다.
왠지 그도 부처님 같아서 합장을 했다. 내가 아주 가까이 갔는데도 피할 줄을 몰랐다. 계곡 물소리를 들으며 잠시 명상에 잠겼다. 특별한 깨달음이 온 것은 아니나 조금 영혼이 자유로워지는 느낌을 받았다. 행복했다.
혼자만의 자유를 이렇듯 맘껏 느껴보는 것이 얼마 만인가?
잠깐의 명상을 마치고 전나무 숲을 걸어 나오며 몸과 마음이 마치 새털같이 가볍다는 생각을 했다.
도대체 내게 의미 있는 일이란 무엇일까?
영혼의 자유를 만끽하는 일! 어쩌면 그것이 진정 내게 의미 있는 일은 아닐까?
그러나 왠지 그녀의 말처럼 그녀의 영혼은 자유롭지 못한 것 같았다. 그리고 나도 점점 자유를 잃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