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살, 전쟁 같은 사랑(1부)
7살에 초등학교에 입학 한 나는 8살이 되자마자 2학년이 되었지. 뭐 당연한 말을 하냐고 어이없어 할 수도 있지만, 엄마 말에 의하면 내가 7살에 학교에 입학한 것은 정식 입학이 아니라, 일종의 테스트였대. 학교에 적응을 하나 못하나 확인 차원의. 그런데 내가 용케 잘 적응했던 거야. 두 번의 험한 일을 빼곤 말이지.
1학년 봄 소풍 때 함께 걸어가던 미애라는 친구가 나처럼 원피스에 흰색 타이즈를 신고 왔는데, 손을 잡고 돌아오는 길에 계속 똥 냄새가 나는 거야! 소똥 냄새인가? 하면서 계속 손을 잡고 왔는데, 우연히 그 친구 엉덩이 부분의 타이즈가 묵직하고 누런 번짐으로 변색되고 있음을 확인한 거지. 지금도 좀 이해가 가지 않아. 걔는 왜 똥을 타이즈에 싸고도 집을 향해 달리지 않고 내 손을 잡고 천천히 걸었던 걸까?
그 험한 일을 당하고, 가을이 되었어. 가을 운동회 전에 운동장 트랙을 정비한다고, 종례시간에 선생님이 엄마 헌 고무신을 한 켤레씩 가져오라는 거야! 그래서 당연히 모범생이었던 나는 엄마에게 헌 고무신을 달라고 했지. 하지만 하필이면 엄마는 새 고무신밖에 없었던 거야! 울고불고 난리 치는 나를 달래느라 엄마는 새 고무신이라도 가져가라고 하셨어. 하지만 물러설 내가 아니었지. 결석을 불사하고 끝끝내 헌 고무신을 고집했어. 그러자 속이 탄 엄마는 이웃집들을 돌아다니며 헌 고무신을 빌리러 다니셨고 드디어 헌 고무신을 찾아냈지. 남자 고무신이었어. 그래서 나는 여자 헌 고무신이 아니라며 다시 울기 시작했어. 결국 엄마는 내 손을 잡고 시장으로 갔어. 신발 가게 아줌마에게 혹시 헌 고무신은 팔지 않느냐고 물었지. 반드시 여자 고무신이고, 헌 고무신 이어야 한다고. 신발가게 아줌마는 없다고 하셨어. 헌 여자 고무신은 팔지 않는다고 하셨어. 결국 엄마는 울며 때를 쓰는 나를 데리고 새 고무신을 한 켤레 사서 손에 들고 1-2반 교실로 갔고 담임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착한 나를 위해 손뼉 치라며 격려하셨어. 아이들은 미친 듯이 박수를 쳤지. 1학년 2반 반장 한석희만 빼고. 그 후 선행상은 두 번쯤 받았던 것 같아. 개근상도 받았지. 그리고 나중에 커서 그 담임 선생님 아들하고 맞선도 봤어. 착한 은형이라 며느리 삼고 싶다고 하셔서. 하하하. 1학년 2반 담임 선생님 아들과의 맞선 이야기는 금은형의 연애기 25세쯤에서 다시 이야기해줄게. 오늘은 8살, 전쟁 같은 사랑이야기할 시간도 부족해!
어쨌든 나는 8살에 2학년 1반이 되었고, 2학년 1반 반장은 또 한석희였어. 1, 2학년을 통틀어서 나는 그 친구밖에 기억이 나질 않아. 왜냐고? 석희하고 진짜 전쟁 같은 사랑을 했거든. 아~~~ 한 명 더 있다! 그런데 이름은 기억나지 않아! 그 친구는 내 삶의 역사에 아주 위대한 인물로 기록되어야 할 위인이었지. 수업시간에 담임선생님이 “오늘이 무슨 요일이니?”하고 질문하셨는데, “요일이 뭐지?”라는 생각으로 내가 혼란을 겪고 있는 순간에 “금요일요”라고 답해서 내게 세상에 ‘요일’이라는 개념이 있고, 특히 ‘금요일’이 그중 하나라는 것을 단번에 깨닫게 해 준 삶의 스승이야! 그 아이는 대답 후 바로 화분을 깨뜨렸고, 난 그토록 훌륭한 아이를 매질하는 선생님을 정말 이해할 수 없었어. 그런데 더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썼던 나의 그림 일기장이야! 매일 요일이 쓰여 있었더라고! 참 어이없지 않아? 하하하
2학년 1반 담임 선생님은 박재영 선생님이셨는데, 나를 무척 예뻐하셨고, 무척 많이 때리셨어! 내가 구구단을 외우지 못했거든. 그래서 매일매일 나머지 공부를 했고, 선생님은 구구단 책받침을 하나씩 사 오라고 하셨어. 하지만 난 핑크색 드레스를 입은 정말 예쁜 공주가 그려져 있는 책받침을 골랐지. 그런데 선생님이 숫자가 있는 걸 사 오라고 하시는 거야! 내가 고집이 세서가 아니라 난 핑크빛 공주 책받침이 너무도 좋았어. 심지어 그것은 노란색 리본까지 달려있는 금발머리의 예쁜 인형그림이었거든. 포기할 수 없었지. 그런데 갑자기 반장인 한석희가 오더니 내 책받침이 구구단 책받침이 아니라며 나한테 손바닥을 내놓으라는 거야! 선생님 말씀을 듣지 않았다고 맞아야 한다면서. 반장 말이라 그래야 하는 줄 알고 손바닥을 내놓았어. 그랬더니 다시는 이런 책받침 가져오지 말라며 자기 손으로 내 책받침을 부러뜨렸어! 나를 때리려다 책받침을 부러뜨려 버린 거지. 내 맘이 어땠냐고? 내 가슴이 두 쪽으로 빡 하고 꺾인 기분이었지. 바로 울면서 집으로 달려갔지. 엄마는 석희네 엄마하고 같은 동네 계모임이신지라 석희네 집 전화번호를 알고 계셨어.
“ 아니, 우리 은형이가 울면서 집에 왔는데, 석희가 은형이 책받침을 부러뜨렸다네요? 책받침이야 우리가 또 사줘도 되긴 하는데, 우리 얘가 좀 놀란 것 같아요. 좀 잘 지내라고 지도 좀 해주세요. 호호호. 그러니까요. 얘들이 다 그렇긴 한데... 하여튼 사모님! 잘 부탁드려요. ”
다음 날 울어서 퉁퉁 부은 눈으로 새로 산 핑크색 접시 치마 원피스를 입고 학교에 갔어. 엄마가 다시 책받침을 사라고 돈을 주셨고, 나는 학교 앞 문구점에서 구구단 책받침을 샀어. 하지만 분한 마음과 서러운 마음이 다 가셨던 것은 아니야. 그런데 교실에 들어서서 가방을 열고 책받침을 올려놓자마자 한석희가 또 내 쪽으로 오는 거야
“ 너 구구단 책받침 사 왔어? ”
“ 구구단 책받침 사 왔냐고?”
책받침을 사 왔냐고 재차 묻는 석희에게 나는 갑자기 저항하고 싶어 졌지. 어떤 방법으로? 그냥 대답을 하지 않았던 거야. 두려움도 있었어. 이미 석희의 쭉 찢어진 매서운 눈에서 불빛이 반짝, 찌리리 하고 빛나는 것을 봤거든. 아니나 다를까 갑자기 석희는 2-1반 아이들을 향해 무서운 목소리로 소리치기 시작했어.
“ 야! 오늘 구구단 책받침 사 오지 않은 사람들 다 일어나서 손바닥 내! ”
각자 산만하게 떠들고 뛰어다니던 아이들이 순간 조용해졌지. 그리곤 일사불란하게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손바닥을 내미는 거야. 나는 그 아이들이 책받침이 있는지 없는지 보다는 석희의 말에 그토록 일사불란해지는 이유가 더 궁금했어. 도대체 뭘까? 저 아이들은? 그런 생각을 다 마치기도 전에 석희는 앞쪽에 있는 아이들부터 30cm 대나무 자로 손바닥을 때리기 시작했어.
“ 아! ”
“ 아야! ”
“ 앗!”
“ 아이고! ”
교실은 공포의 도가니로 순식간에 바뀌어버렸지. 아마도 지금 이 순간! 선생님은 자전거를 타고 학교로 오고 계실 거고, 아마도 평소보다 더 느리게 페달을 밟고 있을 거야. 아니 어쩌면 하필이면 오늘 아침 선생님의 고물 자전거 체인이 빠져서 그냥 걸어오고 계신지도 몰라. 아주아주 천천히. 그리고 느리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