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건해 Jul 15. 2019

또다시 잠들기 위해 싸우고 있네

요즘도 들어 또다시 수면 문제로 전쟁을 치르고 있다. 분명 어릴 때는 자신의 수면에 대해 ‘누우면 졸리고, 졸리면 자고 일어나면 되는 것 아닌가?’ 정도로 인식했는데, 역시 세상 만사 그렇게 속편하게 흘러가지 않는 법이다. 인식조차 하지 못했던 인간의 기본적 자기 유지 기능도 얼마든지 망가질 수 있고, 그걸 바로잡기란 끔찍하게 힘들다는 것을 요즘 들어 절실히 깨닫고 있다. 


아무튼 늦게까지 자지 않거나 너무 일찍 자고 일어나는 등으로 수면 패턴이 파탄난 배경에는 일단 하루에 500밀리씩 마시는 커피가 있지 않나 싶다. 게다가 너무나 잠이 안 오면 복용했던 멜라토닌도 이제 먹지 않는다. 실컷 커피를 마시면서 집중력을 끌어올리다가 잠시 후에 ‘이제 잘 시간이니 멜라토닌을 먹어볼까?' 하는 것이 이율배반적이랄까, 지조가 없달까, 육체적으로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판타지 게임 ’위처’의 주인공 게롤트가 필요에 따라 공격력을 강화시켜주는 탕약도 마시고, 잠시 후에 회복약도 퍼마시고, 그러다 중독도가 높다 싶을 때 모든 약효를 없애주는 약도 아무렇지 않게 마시는 모습을 보면 역시 터프한 남자구나 싶지만, 실제 인간이 저런 짓을 하면 금방 간이 박살나리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멜라토닌과 카페인 중에 하나를 택해야 했는데, 여기서 나는 카페인을 택하고 말았다. 멜라토닌을 먹으면 아침까지 몽롱할 때가 많지만 카페인을 마시면 정신이 드는 듯한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요는 카페인 때문에 겪는 수면 장애 증상을 완화시켜보기 위해 카페인을 섭취하고 있다는 뜻이니, 애초부터 카페인에 유리한 싸움이었던 셈이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카페인이라는 것, 정말 팔아도 괜찮은 건가? 


하지만 순전히 카페인 탓만 할 수는 없는 게, 진짜 문제는 ‘하루를 끝내지 않으려는 미련’에 있기 때문이다. 날이 갈수록 하루에 미련이 남는다. 불완전연소한 것 같고, 껄쩍지근하다. ‘오늘은 참 재미있었다! 내일은 또 무슨 일이 일어날까?’ 와 엇비슷한 생각조차 들지 않고 늘 똑같은 고통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니, 휴식 시간으로 배정한 취침 전 시간을 더럽게 질질 끄는 것이다. 잠들지 않으면 내일이 오지 않는다고 믿는 것처럼. 


이 미련이 항상 침대까지 이어져서 불을 끄고도 눈이 빠져라 별 쓸모없는 것들을 뒤지다 늦게 잠들기 일쑤다. 사지도 않을 물건들. 가지도 않을 장소들. 그런 것들을 대체 뭐하러 보고 또 본단 말인가? 그야 그게 재미있기 때문이겠지. 하지만 ‘잠들면서까지 재미있길 바라는’ 심리 때문에 자꾸만 낮을 밤에 빼앗긴다. 심지어 그렇게 시간을 잡아두려는 발악을 하다 잠들면 꼭 새벽에 깨서 또 인터넷 어딘가를 서성이게 된다. 그야말로 백해무익한 짓거리다. 차라리 술과 담배가 덜 해로운 게 아닐까 싶을 지경이다. 정말이지. 


다만 이 문제의 해결 방법은 이미 잘 알려져 있고 수행하기가 그렇게까지 어렵진 않다. 전자 기기를 들고 침대로 가지 않는 것이다. 침대에선 잠만 잘 것. 이 방법을 말로만 들으면 ‘에이, 설마 그것만으로 숙면을 취할 수 있을리가’ 싶어서 반신반의하게 되는데, 나는 이 방법으로 꽤 오랫동안 전보다 길게 잠들 수 있었다. 스마트폰을 가지러 가는 게 너무나 귀찮다고 육체적으로 완전히 포기해버리는 것인지, 새벽에 깨던 증상이 깨끗이 없어진 것이다. 삶의 재미도 미련도 육체의 귀찮음 앞에서는 대책이 없는 모양이다. 이쯤 되면 인간의 고뇌가 다 무엇인가 싶어 허허롭기도 하다. 


여름에는 대체로 저 시간이 위험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그런 노력도 다 무너뜨릴 정도로 빼어난 강적이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으니, 그것은 바로 햇빛이었다. 여름이 되어 더워진 탓에 차광을 하지 않고 자니까 강한 빛이 들어와 해가 뜨자마자 일어나게 된 것이다. 안대를 하고 자긴 하지만 움직이면서 벗겨지니까 이 강제 기상은 피할 방법이 없다. 다시 안대를 하고 자도 이때의 잠은 영 질이 떨어지고, 어쩐지 심한 갈증 때문에 자려다 말고 일어나서 물을 마시게 될 때도 많다. 여차하면 담배도 피운다. 그러다 보면 아예 일어나는 게 맞지 않나 싶어 또 이것저것 뒤적이기 시작하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면 여간 피곤하지 않다. 더 자야 했던 것이다. 


결국, 이 끔찍한 고통의 고리를 끊을 방법은 디카프리오가 썼던 철가면 같은 걸 쓰고 자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검색해봐도 '수면용 가면' 같은 것은 팔지 않아서 나는 침대에 붙어 있을 이유를 더 만들어주는 쪽을 택해야 했다. 자리끼(자다 깨서 마실 물인데, 별 단어가 다 있죠?)를 머리맡에 두고, 자기 전부터 줄곧 좋아하는 방송을 반복 재생하기 시작한 것이다. 요즘 꾸준히 듣는 방송은 ‘하야미 사오리’라는 유명 성우의 방송인데, 음색이 다소 낮고 차분하기 때문인지 듣고 있자면 어느샌가 잠들고, 날이 밝아져도 심각하게 일찍 깨어나진 않게 되었다. 깨어나도 금방 물을 마시고 비교적 빠르게 다시 잔다. ‘잠들면서도 재미있으려는’ 욕구가 충족되었기 때문일까? 과학적인 원인을 분석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나로서는 겨우 한숨 돌린 셈이다. 하야미 사오리님,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건강하시고 오래오래 방송해주세요. 




매거진의 이전글 일식집을 둘러싼 수수께끼 아리마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