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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건해 Mar 10. 2016

웨어러블 기기와 스마트한 다이어트를 기다리며



팔팔한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건강’이라는 단어에 대해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다 대학교에 가면 술과 밤샘 때문에 컨디션이라는 걸 신경 쓰게 되고, 대학교를 졸업할 때쯤에는 슬슬 술을 퍼마시거나 밤을 샌 다음 날이 예전 같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행복과 마찬가지로 건강이라는 단어는 그것을 잃어갈 때가 되어서야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나도 일 년에 병원 한 번 안 갈 정도로 건강한 편이지만, 요즘 들어서 건강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아니, 사실 그건 나이 탓이라기보다는 아이폰을 4S에서 5로 바꾸는 과정에서 관련 정보를 찾다가 아이폰에 기본 탑재된 ‘건강(헬스킷)’앱이 생각보다 본격적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깨닫고, 스마트 기기를 통한 건강 관리 칼럼을 읽었기 때문이지만.


아이폰의 iOS8부터 탑재되기 시작한 건강앱은 척 봐서는 대체 이걸 가지고 뭘 어쩌라는 건지 모르겠다 싶은 물건으로, 사실상 건강에 관한 디지털 장부에 불과하다. 하지만 조금 찾아보니 5S부터 저전력으로 가동되는 센서를 통해 걸음 수와 수면패턴을 자동 분석/기록해 준다고 한다. 주변에서 아이폰 5S 상위 기종을 가진 사람들이 이런 걸로 자랑을 하진 않았으므로 처음 듣는 정보였고, 꽤 흥미로웠다. 나는 “메모선장”이라는 닉네임대로 기록에 상당히 집착하는 성격이라 그동안 “Lumen Trail”이라는 앱으로 매일같이 운동 기록을 해왔던 것이다.


아무튼 이 정보를 알았더라면 무리해서라도 5S를 구입했겠지만 이미 5를 사버린 뒤라 어쩔 수 없었다. 어떻게든 이 기능을 대체할 방법을 찾아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한편으로 건강 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법도 알아냈다.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결론만 뽑아내자면, 아이폰의 건강 앱은 그냥 장부가 아니라 각종 건강앱들을 연동시키는 데이터 풀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었다. 주소록이라는 데이터가 있고, 이것을 여러 앱에서 읽고 편집할 수 있는 것과 비슷하다. 그리고 이것을 활용하는 앱 중에서는 “MyfitnessPal”(이하 MFP)이 가장 훌륭했다. 식사, 운동, 체중 등을 기록할 수 있는 앱인데 일단 무료에, 한국어를 지원하고, 식사에 관해 방대한 정보를 기록하는 데다, MFP와 연동되는 앱이 상당히 많아서 이것들을 테스트하다 보니 필요한 앱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아이폰 하위 기종으로 걸음 수를 트랙킹하는 방법으로는 “Pedometer”가 가장 나았다. 다른 것들은 대체로 GPS까지 써서 전력 소모가 극심했는데 페도미터는 GPS 없이 아이폰의 흔들림만을 추적할 수 있었다. 수면 패턴 분석은 여러 앱이 있는데, 그중 계정을 이미 만들어둔 Runtastic에서 만든 것을 쓰기로 했다. 그렇게 두 기능을 연동해서 쓰는 한편으로 MFP로 식사와 칼로리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것만으로 썩 나쁘지 않았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우연한 기회로 샤오미의 “미밴드”까지 입수하게 되었다. 한 번 충전하면 한 달 가까이 가면서(수치상) 13 달러 정도밖에 하지 않는, 웨어러블 기기의 미스터리 같은 존재다. 디스플레이도 없고 기능이라곤 만보기와 수면 패턴 분석, 진동 알림뿐인 녀석이지만 이것도 아이폰 건강앱과 연동은 되므로 모자라진 않다. 



그리하여 나는 미래인처럼 웨어러블 기기를 장착하고 건강 정보를 적극적으로 기록하기 시작했는데……. 이게 생각보다 재미있다. 부정확하고 계측되지 않던 생활상을 수치로 본다는 건 묘한 쾌감이 있는 일이었다. 기록에 따르면 나는 하루 평균 8000걸음을 걷는데, 시간으로는 한 시간 반가량이고 칼로리로는 300kcal도 되지 않는다. 잠은 6시간에서 7시간 정도인데, 깊은 잠은 3시간 남짓이고 반드시 한 번 깨어난다. 일주일에 0.5킬로그램씩 감량하기 위해서 나는 하루에 1720kcal만 섭취해야 하는데, 아침 식사만으로 600에서 700을 섭취하고 있다. 


여기서 저주받을 칼로리 얘기로 넘어가 보자. 칼로리를 계산하면서 깨닫게 된 것인데, 진지하게 다이어트를 할 생각이라면 칼로리는 반드시 기록할 필요가 있다. 다이어트를 하겠다고 마음만 먹고 칼로리를 계산하지 않는 것은 돈을 모을 생각이면서 가계부는 쓰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예전의 나 자신이 듣는대도 마음 상할 얘기지만, 사실이 그러니 어쩔 수 없다. '과식만 하지 않으면 되지 않겠어?’라고 생각하기에는 음식으로 섭취하는 칼로리가 너무나 막대하기 때문이다. 아무렇지 않게 제육볶음과 빈대떡, 밥을 먹고 나서 기록해보니 1000kcal를 넘겨버려 경악한 적이 있다. 거의 움직이지 않는 생활을 하면서 이런 식으로 세 끼 다 배불리 잘 먹어서는 하루하루가 끔찍한 적자다. 그리하여 아무리 귀찮아도 하루의 적자를 메꿔보기 위해 조금이라도 운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칼로리를 섭취하는 건 너무나 간단하고, 소비하는 건 끔찍하게 어렵다. 한 시간 반을 걸어야 밥 한 공기분의 칼로리가 소모된다. 푸쉬업을 백 개쯤 하고 ‘오늘은 정말 운동을 열심히 했군’ 하고 뿌듯해 해봤자 40kcal도 쓰지 못했다. 돈이 이렇게 아무리 열심히 써도 착착 쌓인다면 더 바랄 게 없겠지만,  이건 정반대다. 한번은 해산물 뷔페에 다녀와서 먹은 것들을 작정하고 계측해봤는데, 놀랍게도 1621kcal에 달했다. 이래선 제아무리 흉악한 운동을 한대도 소모할 길이 없다. 그날 하루는 철저히 파산하는 수밖에 없었다. 


써놓고 보니, 이래서야 도통 재미없게 들릴 것 같다. 정말, 정상적으로 생각하면 이건 그다지 즐거운 일이 아니다. 일단 먹은 것을 기록하기도 쉽지 않은 일이다. 포장 판매하는 제품이라면 바코드를 찍는 것만으로 입력할 수 있지만, 이 반찬도 조금, 저 반찬도 조금 먹는 한국식 식사는 내가 대체 뭘 얼마나 먹었는지 감이 오지 않아 계측이 난해하기 짝이 없다. 게다가 가계부를 쓰는 한편으로 매일같이 칼로리까지 계산하면서 적자인지 아닌지 신경 쓰다 보면 말 그대로 이중고에 시달리는 기분이다. 하지만 그런만큼 하루를 흑자로 마쳤을 때의 기분은 각별하다. 운동도 막연히 할 때에 비해 명백한 수치가 기록되니 보람이 생긴다. 훈련보상비 만 원이라도 받는 훈련과 아무것도 없는 훈련의 차이 정도로 큰 차이다.


다시 얘기를 스마트 기기로 돌려보자. 처음으로 웨어러블 기기인 미밴드를 써본 감상은 ‘썩 괜찮지만 없다고 딱히 아쉽지는 않겠다’는 것이다. 이제부터 자겠다고 설정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수면을 분석해주는 기능은 분명 멋지지만, 수면 분석 설정을 깜빡하고 잤다고 당장 수면의 질이 떨어져 다크서클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걸음 수와 칼로리 정도는 스마트폰으로도 분석할 수 있다. 애플워치를 비롯한 스마트워치를 보고 많은 사람들이 말하듯이 스마트폰으로도 할 수 있는 일을 굳이 몸에 장착하는 기기까지 써서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실제로 웨어러블 기기를 써보니 가격보다 ‘몸에 장착’한다는 부분이 특히 심각한 비용이었는데, 손목시계를 차지 않는 사람은 차지 않는대로 매일같이 손목에 뭘 감고 다니는 게 불편할 것이고, 나처럼 손목시계를 차는 사람은 새로운 기기를 장착할 부위 때문에 고심하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팔은 길고 둘이나 있지만, 사회 통념상 시계를 장착할 인벤토리는 하나뿐이다. 타임머신을 만든 에미트 브라운 박사처럼 한 팔에 시계를 여럿 차는 사람은 좀처럼 만날 수 없다. 미밴드 같은 스마트 밴드는 액세서리 같으니까 그나마 낫지만, 나는 평소에 팔찌를 하지 않는 터라 결국 오른팔에 찼던 미밴드를 왼팔의 시계 위쪽으로 옮겨야 했다. 그러나 그것도 스마트 밴드가 아니라 스마트 워치라면 불가능한 일이다. 어쨌든 손목시계는 하나만 차야 하고, 스마트 워치를 사면 그동안 쓰던 시계를 쓰지 못하게 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손목시계를 쓰지 않는 사람은 스마트 워치를 쓸 이유를 느끼기 힘들고, 손목시계를 사랑하는 사람은 그동안 쓰던 시계 때문에 스마트 워치를 들이기 힘들다. 나만 해도 끝내주는 최첨단 손목시계를 산다는 건 상상만 해도 멋진 일이지만 그것 때문에 다른 시계를 포기하고 싶지 않다. 아무리 싼 시계라도 그 나름대로 용도와 애착이 있다. “다른 여자 따위는 모두 잊게 해 줄게.”라는 말은 퍽 멋지고 유혹적이라 한 번쯤 듣고 싶은 말임이 분명하나 진심이면 상당히 곤란한 것인데, 스마트 워치가 노리는 궁극적인 위치가 바로 그런 것이라 오히려 손목시계 애호가들에게 목적 그대로 받아들여지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러나 그럼에도 웨어러블 기기라는 개념 자체는 꽤 빠른 속도로 보급될 듯하다. 미밴드를 쓰면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이 ‘진동’이었는데, 손목으로부터 전해지는 진동은 스마트폰의 그 어떤 알림보다 명확해서 놓칠래야 놓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걸 이용해서 미밴드는 아이폰에서는 전화 알림과 알람을, 안드로이드에서는 각종 앱 알림까지 연동할 수 있는데, 누구나 예상할 수 있듯이 대화면 스마트폰을 가방에 넣은 상태에서도 알림을 받을 수 있어 무척 유용하다고 한다(스마트폰을 가방에 넣지 않아서 아직 체험하지 못했다). 게다가 샤오미 폰을 쓴다면 미밴드를 차고 있는 것만으로 잠금을 자동해제할 수 있다. 아이폰과 맥도 이와 비슷한 연동으로 잠금을 해제할 수 있는데, 웨어러블 기기가 조금만 더 보급되면 본인 인증부터 결제까지 모두 수행할 수 있으리라. 요는 웨어러블 기기는 인체와 늘 접촉해있기 때문에 두뇌를 개조하고 칩을 박는 것과 비슷한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편의는 막대한 것이라 지금이야 웨어러블 기기를 장비한 사람이 단순한 얼리어답터, 긱으로 보일 뿐이겠지만 앞으로 몇 년 이내에 웨어러블 기기를 쓰지 않는 사람은 지금까지 피처폰을 쓰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을까. 그때쯤 되면 조모임을 하는데 누구 한 명이 웨어러블 기기를 쓰지 않아서 귀찮아 죽겠다고 불평하는 사람이 나올지도 모르고.


아무튼, 웨어러블 기기를 동원한 다이어트를 체험해보면서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지금은 수면과 걸음을 제외한 대부분의 데이터를 수동으로 입력하고 있어서 아주 스마트하다고 할 수는 없는 상황이지만, 조만간 이것들도 사진을 찍는 것만으로 입력되고 운동 종류나 강도, 요령 따위도 웨어러블 기기를 통해 지도될 게 틀림없다. 닌텐도 Wii만 해도 그에 비근한 시스템을 구축했으니 딱히 어려운 일도 아니다. 그때쯤 되면 다이어트도 아주 강력한 일상 밀착형 게임이 될 것이다. 인류는 이미 사생활 공개를 통한 쾌락과 단순히 예쁘고 야한 그림 수집을 위해 인간이 얼마나 많은 것을 희생할 수 있는지 충분하고도 남는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으니까 웨어러블 기기의 기술과 SNS, 게임의 노하우가 접목되면 사람들의 살과 돈과 영혼을 빼놓기란 아주 간단할 것이다. 물론 제아무리 대단한 기기가 보급되어도 그걸 쓰는 것은 사람이라 별 효력이 없을 수도 있지만, 단순한 기록이 동기를 유발할 수 있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육체와 생활에 밀착해서 심리를 자극하는 동기부여는 더욱 강력할 것이다. 그러니 그때까지 다이어트는 좀 대충해도 되지 않을까?


(2015.04.01.)



-후기


미밴드를 쓰기 시작한지 일 년이 지났습니다만, 몇 달 되지 않아 착용을 포기하고 어머니께 드렸습니다. 그 이유는 본문에도 적었듯이, 걸음이나 잠을 계측한다고 해서 근본적으로 생활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 충전하는 기기를 하나 더 차고 다니면서까지 쓸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죠.


다이어트에 실제로 도움이 되는 쪽은 식단과 체중 기록인 것 같습니다. '오늘은 별로 걷지 않았으니 더 걸어야겠군'은 불가능해도 '저녁은 작작 먹어야지'는 가능하기 때문이죠. 물론 정확한 계측이 불가능해서(한국은 더더욱) 스트레스를 받긴 합니다만.


그런데, 그럼에도 스마트 워치 하나쯤은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게 있으면 구체적으로 내 생활이 어떻게 변하겠다는가 하는 비전은 없는데도 그렇군요. 이건 아마 시계와 애플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써 어쩔 수 없는 숙명일 겁니다. 살 돈도 명분도 없어서 다행인지도 모르겠어요. 


(2016.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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