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건해 Jun 29. 2022

나의 어깨를 지켜줘

장기간의 상담을 받고 있을 만큼 정서적으로는 문제가 많아도 육체는 대체로 건강한 편이었는데, 이제는 그것도 아닌 모양이다. 게다가 오른쪽 어깨의 통증은 고질병이다. 대체 언제부터 이랬지 싶어서 일기를 찾아보니 최초의 기록은 2018년. 4년이 넘도록 어깨 통증을 안고 산 셈이다.


투수도 아니고 육체 노동을 하는 사람도 아닌데 왜 오른쪽 어깨를 다쳤느냐, 그건 무거운 짐을 오른쪽으로만 지고 다닐 때가 많아서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그 짐이란 대체로 보드게임일 때가 많았다. 부끄럽게도 그렇다. 일반 상식으로 보면 좀 이상한 얘기지만, 나는 최대한 부피를 줄이겠다고 게임의 내용물을 뽑아서 여러 게임을 한 박스에 몰아넣은 다음, 거기서 멈추지 않고 ‘오, 게임을 더 가져갈 수 있겠어’ 라며 그런 박스를 한두 개 더 만들어 운반할 때가 많았다. 결과적으로 박스의 부피만큼의 종이를 들고 다니는 것이나 마찬가지 상황이 될 때가 잦았던 셈이다. 물론 들거나 지고 다니기 벅찰 정도가 되면 캐리어를 쓰긴 하는데 대중교통을 이용하자면 캐리어도 들어야 할 때가 적지 않은 데다, 나는 그럴 때마다 오른쪽 어깨만 혹사하는 버릇이 있어서 어깨 부담이 전혀 없진  않았던 모양이다.


나도 아프면 괴롭고 걱정되는 만큼 어깨를 혹사한 다음날에는 가급적 무리하지 않도록 신경 쓰며 어깨를 풀어주는 운동을 하기도 하고 아프지 않을 때면 어깨 강화를 위한 팔 운동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 버티면서 조금씩, 살살 나아졌다고 생각했는데…… 작년쯤부터는 어깨를 많이 쓴 이후로 통증이 지속되는 기간이 점점 길어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고, 저번 주쯤 되자 이게 도무지 안 낫는 것 같았다. 이러다 영영 낫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적어도 유튜브에서 배운 건강 운동이 쓸모없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그리하여 결국 집앞에 새로 생긴 통증의학과에 갔다. 엊그제 행복의 의미를 찾아낸 사람처럼 쾌활한 의사 선생님은 이것저것 물어보고 여기저기 누르고 찔러보더니, 초음파 검사기로 어깨를 비춰보곤 회전근개(어깨를 감싼 근육 사천왕)가 약간 손상되었다며, 젊으시니 금방 나을 거라 했다. ‘저도 그럴 줄 알았는데 이제 젊지도 않아서 안 낫나봐요.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으려나 봐요…….’ 라고 해봐야 좋을 게 없을 것 같아서 그만두고 얌전히 주사를 맞았다. 재생을 돕는다는 주사는 바늘이 아주 굵었는데, 다행히도 통각에 민감한 부위는 아닌지라 아픔을 참을 것도 없었다. 다만 주사로 주입하는 약물이 아주 묵직했고, 슬라임 같은 약물이 어깨에 주입되는 모습을 초음파로 직접 보자니 무슨 과학 실험 대상이 된 듯해서 기분이 묘했다.


그렇게 주사를 맞고 며칠 약을 먹으며 지낸 기간은 어깨 컨디션이 썩 괜찮았다. 이물감도 통증도 없어서, 이렇게 빨리 나을 거라면 진작 갔어야 하는데 괜히 병을 키웠구나 싶어 후회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닷새 정도가 지나자 슬슬 통증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전보다는 좀 나은 편이었지만, 주사가 도움이 되어 이 정도인지, 아니면 원래 이만큼 회복할 예정이었는데 약기운이 통증을 좀 없앴던 것인지 알 길이 없었다.


그리하여 우리집에서 어깨 통증과 오래도록 싸워온 또 한 명의 용사, 아버지에게 말해봤더니 아버지는 10여년 전에 어깨 수술을 한 이유가 바로 그 회전근개 파열 때문이었다고 했다. 지금껏 아버지 어깨가 많이 안 좋았다는 정도로만 알고 자세한 이유는 몰랐던 나는 자신이 그걸 딱히 궁금하게 여기지도 않았다는 사실에, 그리고 같은 부위가 문제라는 사실에 두 번 놀랐다. 어깨가 안 좋은 게 그렇게 심각한 건강 이상은 아니니까 적당히 그런갑다 하고 넘어갔는데 이것보다 심한 통증에 시달리셨구나 생각하니 마음이 좋지 않았고, 같은 부위가 아픈 것도 유전일지도 모르겠구나 싶어 씁쓸하기도 했다. 어깨가 특별히 약한 게 유전된 게 아니라 어깨를 쓰는 방식이나 어깨를 무리하게 써버리는 삶의 기조 같은 게 같은 길을 가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아버지의 의견은 병원 잘 다니고 치료 잘 받으라는 게 아니라, 병원 놈들이 딱히 해줄 수 있는 것도 없으니 어깨나 쓰지 말라는 것에 가까웠다. 주사의 효과가 그리 오래 가지도 않는다는 것을 체험했기에 나는 별수 없이 아버지의 조언을 받아들이고 소염제나 사다 먹기시작했다. 그렇게 일주일 정도가 지난 지금은 이물감이 은근히 남았는데, 운동처럼 본격적인 일을 벌이기엔 적합하지 않은 것 같다. 팔굽혀 펴기와 버피 테스트를 열심히 해서 살도 빼고 체력도 붙이려던 것이 이렇게 되었으니 어쩔 수 없이 또 열심히 쉬는 수밖에 없겠다.


물론 쉬겠다는 것은 반쯤 농담이고 뛰고 걷기는 계속 하는 중인데, 어깨 속의 뭔가가 어긋난 듯한 상태로 지내보니 러닝도 팔을 제법 쓰는 운동인지라 오른손으론 가방끈을 잡고 뛰게 되었다. 운동만 문제가 아니라 잘 때도 오른쪽으로는 눕지 않게 되었고, 책상에서 뭘 할 때도 가급적 팔에 체중을 싣지 않는다. 특히 책상에서 공부에 가까운 행위를 할 때도 어깨가 부담을 느낀다는 사실은 충격이었다. 시간이 갈수록 공부하기도 힘들어진다는 게 이런 뜻일 수도 있겠구나 생각하니 좀 무서워지기도 했다. 앞으로 모든 게 더 힘들어질지도 모르겠구나 싶었다.


(유튜브 보지 말고 전문가를 찾으세요)


아픔과 실패를 딛고 일어난 사람들을 본받으라고 할 때 흔히 부러졌던 뼈는 더 단단히 붙는다고 하는데, 아주 맞는 말은 아닌 것 같다. 뼈는 더 단단히 붙을지 모르겠으나, 다른 부분은 대체로 한번 문제가 생기면 오래도록 문제거리가 되는 법이다. 정신도 육체도 그렇다. 그래서 적당히 받아들이고 달래고 타협하면서 그럭저럭 사는 게 보통이고, 전보다 약간 좀 나아지는 경우라면 ‘미친, 내가 그 꼴을 또 당할 순 없지’하고 문제 상황을 요령 좋게 회피하는 것 정도가 아닐까…….


아무튼 잊어버렸던 문제 거리를 다시 떠안게 되니 골치도 아프고, 깊이 생각하니 괜히 자신감도 없어진다. 아마 나는 아플 때마다 아픈 만큼 훌륭히 성장해가는 부류는 아닌 모양인데, 아버지가 근육이 끊어지고도 그럭저럭 살아온 것처럼 요령 좋은 사람만이라도 되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돈 쓰지 않고 덕질하는 마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