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건해 Nov 09. 2022

별일 없냐는 말의 어려움



올해 2022년 10월은 걱정이 많은 시기였다. 이 정도면 입상할 만하지 않나…… 하고 건방진 생각을 했던 공모전 둘에서 아무 소식도 듣지 못했고, 잠잠하던 어머니의 지병이 다시 증상을 보였으며, 아버지가 철봉에서 거꾸로 떨어지는가 하면, 두 사건을 무사히 넘기고 나니 나의 건강 검진 결과가 다양한 합병증으로 향하는 육체적 하강 곡선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그래도 당장 큰일이 터졌다고 할 정도는 아니라 어찌저찌 바쁘게 지냈는데, 그러다 2022년 10월 29일 저녁에 이태원에서 무슨 사고가 나서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속보가 스마트폰에서 슬쩍 지나갔다. 나는 핼러윈이 코앞이라 사람이 워낙 많이 모이다 보니 별 사고가 다 나는구나, 정도로 생각했다. 그러다 잠시 후에 사상자가 많다는 속보에 사고가 상당히 큰 모양인가 생각했고, 뒤이어 대통령이 이런저런 지시를 내렸다는 속보에는 과장된 리더십을 보여주는구나 싶어 한숨지었다.


그러다 쉬는 동안 상황을 더 알아보니 그렇게 가볍게 생각할 상황이 아니었다. 그래도 실감은 잘 나지 않았다. 무엇보다 정신없이 바쁘기도 했고, 이태원이라는 곳은 오래도록 나와 별 관계가 없는 곳으로 느껴지기도 했기 때문이다. 같은 사건도 가까운 곳이나 자주 가는 곳에서 일어나면 더 심각하게 느껴지듯이, 멀고 연이 없는 이태원에서 일어난 사건보다는 당장 내게 닥친 문제거리들이 걱정스럽기도 했다.


그러다 다음날 아침이 되어 이런저런 뉴스와 커뮤니티 게시물을 뒤적이며 처참한 상황을 한참 보고 나니 불안감이 스멀스멀 몰려오기 시작했다. 진행형이던 사고가 상황 수습만은 끝나서 받아들여야 하는 결론이 나온 탓도 있을 테고, 내가 꽉 막힌 원고를 약간이나마 진척시켜 잠시 심리적인 여유를 얻은 탓도 있을 것이다. 나는 그제야 이태원이 전혀 연이 없는 곳이 아님을 떠올리고 본격적인 걱정을 시작했다. 2주인가 3주 전에 이태원에 사는 친구 집에 갔다오기도 했는데 왜 감각이 마비되어 있었을까? 나는 이 사실을 기이하게 느끼다, ‘그런 곳’이나 다니니 화를 입는 것이라는 식으로 비난하는 소리를 들은 뒤에야 이태원과 나는 별 관계가 없다고 느낀 이유를 깨달았다. 이런저런 예능 방송과 코로나가 마구 퍼지던 때 본 뉴스의 영향으로 나는 이태원을 클럽만이 가득한 광란의 환락가 비슷한 곳으로 여기고 있었던 것이다. 1. 이태원은 환락가다. 2. 내 지인 중에 환락가를 다니는 사람은 없다. 3. 그러니 내 지인 중에 사고를 당했을 사람은 없다. 이런 삼단논법이 나를 안심시키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이번 달에 다녀왔듯이 이태원은 누구나 갈 수 있는 곳이다. 내가 그때 앤틱 거리의 행사를 보려 했듯이 핼러윈을 맞이한 거리를 구경하러 가는 사람이 따로 정해진 부류일 리가 없지 않은가. 그 사실을 깨닫고 나니 친구들 안부를 묻지 않고는 불안해서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 지경이 되었다. 그런데, 막상 메신저를 열고 보니 아무래도 쉽게 메시지를 보낼 수가 없었다. 아직도 걱정이 피부에 와닿진 않은 것인지 영 멋쩍고 어색하기도 했고, 괜한 호들갑이나 떠는 사람으로 보일 게 걱정이기도 했다. 그리고 무슨 일이 있으면 연락이 와도 벌써 왔겠지, 하고 좋은 쪽으로 생각하자니 나서서 묻는게 이상한 일이기도 했다. 굳이 물어서 내가 겪게 될 것은 유난스러운 사람이 되는 것, 혹은 정말 걱정스러운 소식을 듣게 되는 것뿐이 아닐까?


그리하여 나는 이런저런 작업으로 시간을 보내며 복잡한 불안감으로부터 멀어지려 했는데, 그다지 성공적이지는 않았다. 여기저기서 들어오는 암울한 소식들이 쌓이고 쌓여서 어디서든 괜찮다는 소리를 듣고 싶을 지경이 된 것이다. 결국, 나는 커뮤니티의 그룹 채팅방에 먼저 별일이 없으시면 좋겠다고 말을 꺼냈고, 몇몇 사람들이 비슷한 걱정을 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것으로 용기를 얻었다고 하기엔 좀 이상하지만, 적어도 못할 짓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나는 곧장 친구들 그룹 채팅방에도 비슷한 말을 꺼냈다.


대답은 한동안 오지 않았다. 상당히 긴 시간 동안. 덕분에 나는 또다시 잡다한 걱정에 휘말리게 되었는데, 이따금 확인해 보니 읽지 않은 사람의 숫자는 조금씩 줄어들고 있었으므로 걱정할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나는 유난스러운 사람이 되었든 아니든 그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그러다 한참 지난 뒤에 후배 한 명이 이태원에 사는 친구에게 안부를 물었고, 또다시 시간이 꽤 흐른 다음 그 친구가 ‘ㅇㅇ’이라고 지극히 간결한 답변을 했다. 나는 깊이 안도하는 한편으로 어지간히 귀찮아하는 듯한 답에 역시 좀 유난을 떨었나 싶기도 했고, 고맙다는 말까진 바라지도 않으니 그냥 집에서 쉬어서 괜찮다는 식의 말 정도라도 해주면 좋지 않았을까 싶기도 했다. 하지만 더 깊이 생각해보면 그 친구도 자신이 이태원에 산다는 걸 아는 사람들 상당수가 안부를 물어 지쳤을 것 같기도 했다.


시간이 또 조금 지나자 내가 두 번째로 걱정했던 친구가 너무 큰 재난이라 마음이 편치 않다고 메시지를 올렸다. 맛집 찾아 다니기를 즐기고 공포물과 핼러윈을 사랑하여 몇년 전에는 함께 롯데월드의 핼러윈 좀비 행사에도 갔던 친구였다. 그런 만큼 내가 아는 사람중에는 누구보다 더 핼러윈의 이태원에 놀러 갈 만한 사람이었는데, 다른 말은 없는 것으로 보아 별일은 없는 게 분명했다. 그즈음해서 나는 가까운 사람에 대한 걱정을 거의 내려놓을 수 있었다. 극히 낮은 확률로 형이 데이트 삼아 그쪽에 놀러갈 수도 있겠다 싶었으나 어머니가 다른 일로 전화를 한 김에 안부를 물었다는 모양이었다. 그에 대한 답은 “어휴, 저도 이제 안 젊어요”였다고 한다.


그날 오후 다섯 시쯤, 그럭저럭 평정을 찾은 나는 평소와 마찬가지로 산책에 나섰다. 그런데 몇 걸음 걷지 않았을 때 이메일이 날아왔다. 내가 가입한 과학소설작가연대에서 피해 사실이나 도울 일이 없는지 묻는 이메일이었다. 이태원에서 일어난 참사는 이제 나와 밀접하지는 않은 일이 된 상태였으므로 이것도 괜한 안부 메일이 된 셈인데, 그래도 나는 이 메일로 적지 않은 안도감을 느꼈다. 무슨 일이 있으면 도와주겠다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일단 큰 힘이 되었다. 하지만 그 이전에, 나도 미증유의 재난에 직접적으로 휘말릴 수 있는 사람이라고 간주하고 안부를 묻는 사람이 있다는 게 고맙게 느껴지기도 했고, 내가 남을 걱정한 게 이상하거나 쓸데없는 짓은 아니었음을, 그리고 나 혼자 괜한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는 나약한 인간은 아니었음을 확인해서 고독한 위축감을 버릴 수 있었다.


사실 이 글을 쓰는 데에 이례적으로 엄청나게 오랜 시간이 걸리고 있다. 어려운 글이기 때문이다. 고통받는 사람이 어디에 얼마나 있는지도 모르는데 나와 내 주변은 고통을 겪지 않아 다행이라고 말하는 일은 어렵고 두렵다. 어찌 보면 하지 않는 게 중간은 가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이영도 작가의 고전 판타지 소설, 드래곤 라자에 이런 장면이 있었다. 전투에서 처참하게 패배한 군대에 있었던 아버지가 죽지 않고 살아서 포로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기뻐 날뛰던 주인공이, 전사자 통지를 하러 가야 한다는 친구의 말을 듣고 충격과 죄책감을 느낀다. 그 모습을 본 친구는 가족이 전사했다는 소식을 들은 사람이 슬퍼하듯 가족이 무사하다는 소식을 듣고 기뻐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니, 죄책감을 느낄 필요는 없다고 말해준다. 나를 둘러싼 비좁은 삶의 정경에 별일이 없다는 사실에 대한 안도감 앞에서 나는 그 장면을 떠올렸다. 그렇다고 방방곡곡 돌아다니며 기뻐해서야 안되겠지만, 내가 안도했다는 사실에 죄책감까지 느낄 필요는 없을 것이다. 유난스러운 걱정을 한 것도 모자라서 고통받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나는 괜찮다고 마음을 놓는 일에 죄책감을 느끼는 사람이 나 말고도 또 있을 것 같아서 오래도록 이 글을 썼다.

(2022.11.03.)


 

매거진의 이전글 좋은 선물 주기의 난해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