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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건해 Feb 01. 2023

데스크 패드는 쓰기 나름

책상에 깔아 쓰는 깔판을 데스크 패드나 데스크 매트라고 하는데, 나는 이것을 평생 쓰지 않다가 3년에서 4년 전부터 쓰기 시작했다.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면 지금은 쓰고 있지 않을 텐데 여지껏 아껴쓰고 있으니 나는 일상 속에 스며든 데스크 패드에 제법 높은 점수를 준 모양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남에게도 추천할 수 있으니 확실히 그렇다.


그래서 데스크 패드를 쓰면 어떤 점이 좋은가? 가장 멋진 부분은 책상이 차갑지 않다는 점이다. 한국의 전후 세대 중 많은 사람들이 값지고 고급스러운 원목 책상이나 식탁을 사놓고 이것을 보호하기 위해 상판에 맞는 유리를 덮어 놓는 것을 당연히 여기는데, 예전에 교양 예능 방송인 ‘알쓸신잡’에서 유현준 교수가 지적했듯이 이러면 책상이 차가워서 살을 대기가 싫어진다. 더 엄밀히 표현하자면 유리의 온도가 실제로 아주 낮은 건 아니고 체온을 빠르게 빼앗아간다는 뜻인데, 찾아보니 유리의 열 전도율은 0.0034로, 같은 온도의 물에 손을 대고 있는 것과 비슷하거나 그보다 더 차게 느껴지는 셈이다. 한편 그 유리가 덮어버린 나무의 열 전도율은 0.0005니까 당연히 나무가 따뜻한 느낌을 주는 소재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단단하기 짝이 없는 유리 표면에 비하면 나무 표면은 부드러워서 손목을 오래 대고 있어도 피로가 덜하다.


그러니 비싼 원목 책상을 사서 유리로 덮는 것보다는 그냥 원목의 질감을 그대로 느끼며 쓰는 게 합리적인 일이긴 할 것이다. 애초에 유리로 덮을 거라면 그 밑이 싸구려 합판이든 쇳덩어리든 전화번호부든 무슨 차이가 있단 말인가? 그리하여 카페에서 아름다운 원목 책상의 질감을 즐기고 온 어느날 나도 과감하게 유리를 걷어치워야겠다는 생각을 하긴 했는데…… 수십 년을 아껴 쓴 책상 상판을 어느날 갑자기 너도 세상의 풍파를 느껴봐야 한다며 노출시켰다가 상처가 나면 역시 아까울 것 같기도 하고, 그 커다란 상판 유리를 깨지지도 않았는데 버리자면 그것도 돈이요 일이라 타협안으로 선택한 것이 바로 데스크 패드였다.


요컨대 원목 책상을 보호하기 위하여 덮은 유리로부터 나를 보호하려고 유리 위에 한 층을 더 깐 셈인데, 뭘 아껴쓴다는 시도가 이렇게 잘 생각해보면 이상할 때가 종종 있다. 비슷한 예를 들자면, ‘트레이딩 카드 게임’은 희귀한 카드가 비싼 값에 팔리기도 하고 카드를 더 잘 섞는 데에 유리하기 때문에 카드 크기에 맞는 ‘비닐봉지’인 프로텍터를 씌우는데, 이것도 뒷면에 일러스트가 인쇄된 제품은 나름대로 비싼 탓에 이 프로텍터에 또 프로텍터를 씌우기도 한다. 나도 트레이딩 카드 게임을 제법 오래한 데다 일러스트 프로텍터도 써봐서 심정은 이해하지만, 이쯤되면 트레이딩 신주 단지도 아니고 이게 다 뭔가 싶어 불합리한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각설하고, 내가 사용하는 데스크 패드는 청색이 약간 들어간 짙은 녹색의 인조 가죽 제품이다. 진짜 가죽을 사고 싶었지만 비싸기도 하고 근래 들어 가죽 제품 사용에 죄책감도 약간 느끼기 시작해서 합리적인 가격의 석유 가공품을 택하고 말았다. 이 역시 합리적이었는지 다소 의문이다. 색깔은 갈색과 녹색 중에서 한참 고민한 끝에 시각적으로 더 편안하고 카지노 테이블과 비슷해 보이는 색을 골랐다. 깔아놓고 보니 안정된 느낌도 들고 편안해서 만족스럽다. 감촉도 적당히 부드럽고 약간 푹신해서 몸을 오래 대고 있어도 피로감이나 거부감이 없다. 광마우스를 아무데나 놓고 써도 무방하다는 점은 소소한 부수적 이점이다. 책상에 손목이나 팔을 오래 대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쓸 가치가 있다.


물론 단점도 좀 있는 편이다. 일단 종이를 놓고 글씨를 쓸 때 딱딱하게 받쳐주지 않기 때문에 펜이나 연필 지나간 자리가 약간 움푹 들어간다는 점. 손글씨 쓸 일이 좀처럼 없는 요즘 큰 단점은 아니지만, 덕분에 뭘 신경 써서 적어야 할 때는 멀고 먼 옛날에 사용했던 ‘마법소녀 리나’ 책받침을 사용하고 있다. 책장 정리중에 나온 것인데…… 정말이지 별 게 다 남아있군.


그러나 책상 위에서 칼질을 할 때는 이런 책받침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게 나름대로 큰 문제다. 예전에는 종이 한두 장 칼질할 때 그냥 유리 위에서 해도 그만이었다. 어지간히 힘을 주지 않는 이상 유리 표면이 충분히 버텨줬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드러운 데스크 패드 위에서 칼질을 할 수 있을리가 없으니, 요즘은 간단한 작업을 할 때도 커팅 매트를 꺼내서 쓰고 있다. 즉, 나무 책상을 보호하기 위해 깐 유리가 싫어서 깐 데스크 패드를 보호하기 위해서 커팅 패드를 깐다는 소리다. 여기서 커팅 패드를 보호할 방법까지 강구한다면 정말 웃겨지겠지만, 다행히 나도 그렇게까지 하진 않는다.


그런데 칼질 못지 않게 위험한 복병이 하나 더 있었으니, 바로 순간접착제였다. 순간접착제 딱 한 방울 쓰는 작업은 이상할 정도로 빈번하게 있는 일이라 대충 데스크 패드 위에서 하곤 했는데, 작업을 하고 나서 보면 접착제가 전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튀거나 배어나와 바닥에 묻은 경우가 있었다. 순간접착제란 소량을 써도 빠르고 단단히 굳는 게 장점인 물건인지라, 그렇게 튄 자국은 무슨 짓을 해도 깨끗이 지울 수가 없었다. 유리 표면이라면 칼로 긁어내면 그만인데 여간 골치아픈 일이 아니다. 결국 같은 실수를 두어번 반복하고 나니 데스크 패드의 한쪽이 영 보기 싫게 되어 얼마전부터 좌우를 뒤집어 쓰기 시작했다. 앞뒤를 뒤집어 쓸 수는 없는 물건이니 이 데스크 패드의 수명도 반이 지나고 만 셈이다. 영원히 함께하기로 작정하고 산 건은 아니지만 고작 귀찮음 때문에 물건이 상했다는 사실이 씁쓸하다.


(무엇을 보호하는 동시에 완전히 누릴 수는 없다)


그나저나, 내가 다니던 중학교에선 책상에 끼워서 쓰는 플라스틱 덮개를 전교생이 사용했다. 처음에는 불필요한 지출처럼 보이는 면이 없지 않았지만, 좀 써보니 상당히 유용하고 합리적인 물건임을 알게 되었다. 학년이 바뀌면 내 알 바 아닌 책상에 비해 덮개는 개인 소유물이라 핸드폰 조작용 구멍을 뚫어버리는 일도 없었고, 낙서를 해도 딱히 문제가 되지 않았다. 미술 시간에는 뒤집어서 네 모서리의 턱이 위로 오게 했으므로 잡다한 쓰레기가 흩어지지 않는다는 이점까지 있었다. 그리하여 개인용 책상 덮개를 학생 시절 내내 애착을 갖고 썼는데, 이 경우는 집에서 쓰는 것과 반대로 낙서도 좀 있고 흠집도 몇개 있는 편이 좋았던 것 같다. 사실 어떤 물건이든 내 흔적이 남은 것이 남지 않은 것에 비해 좀 더 애착이 가는 법이기 때문이다. 흔적이 얼마나 사용성에 영향을 미치는가, 복구나 교체에 얼마나 비용이 드는가가 흔적 남기기를 가로막을 따름이다.


또다시 시답지 않은 예로, 내게는 20년 가까이 프로텍터 없이 갖고 논 카드 게임이 하나 있다. 심지어 몇 년 내내 동아리방에 방치한 탓에 손때가 엄청나게 심하게 묻었는데, 이것을 회수하여 잘 닦고 뒤늦게 프로텍터를 씌우면서 이건 평생을 안고 가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체념으로 시작한 생각이지만, 좀 지나고 보니 뭔가를 영원히 소유하게 되었다는 실감이 제법 개운하고 기분 좋았다. 지금도 나는 카드 섞을 때의 용이함과 팔아치울 때의 가격 문제가 아니라면 프로텍터를 씌우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여긴다. 오래 갖고 논 물건은 그만큼 낡는 것이 아름답고 정이 가기 때문이다. 최고급 바둑판처럼 갈라졌다가 아문 흔적이 있는 게 더 가치 있다고까지 주장하진 않겠지만, 시간이 새겨진 물건에는 그 시간 만큼의 의미가 있고, 의미 있는 물건과 함께하는 생활은 그렇지 않은 생활에 비해 덜 건조하다. 그러니 언젠가는 원목 책상도 책상 그대로 쓰며 방 한켠의 온도를 조금이나마 높이고 싶다.


위와는 별 상관없는 여담인데, 몇몇 친구들이 다니는 회사에서 매년 자사 상품 이미지가 인쇄된 데스크 패드를 주는 통에 처치 곤란이라는 소식을 얼마 전에 들었다. 합성 고무 한쪽에 천을 붙인, 마우스 패드의 초대형 버전 같은 물건이다. 사실 나도 어디서 받은 대형 마우스 패드를 쓸 일이 없어서 처박아두고 있었는데, 이 소식을 들은 뒤로 유용한 활용법이 없을까 이리저리 궁리하게 되었다. 그래서 먼저 시도한 것은 닳아버린 신발 밑창에 보강용으로 붙이는 방법이었는데, 고무가 그 정도로 튼튼하진 않아 금방 닳아버렸다. 다음으로 시도한 방법은 적당한 크기로 잘라서 컵받침으로 쓰는 것. 이건 성공적이었다. 적당히 미끄러지지도 않고 오염을 닦아내기도 어렵지 않았다. 부분부분 잘린 그림이 현대 미술적인 분위기를 풍기기도 했다. 쓰고 남은 나머지는 잘 겹친 뒤에 붙여서 새로 장만한 기계식 키보드 앞에 놓을 쿠션으로 만들었다. 너무 딱딱하지도 않고 물렁하지도 않은 완충감이 아주 마음에 든다. 이렇게 내 주변에 시답잖은 역사가 또 하나 쌓여가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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