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건해 Jun 01. 2016

건강 +1 아이템에 대하여


중장년의 외국인이 어떻게 사는지 본 적이 없어서 외국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한국인은 나이를 먹으면 건강을 위해 불확실한 돈을 투자하는 빈도가 점점 높아지는 것이 확실하다. 옆에서 냉정히 생각하면 이런 게 효과가 있을 리가 있나 싶은 것들도 자꾸 구매해서, 보기에 안타깝다. 


최근에는 어머니가 시장에서 원래 굉장히 비싼 것을 싸게 떨이로 판다고 건강 팔찌를 세 개나 사왔다. 가족이 넷인데 왜 셋을 사셨느냐고 물으니 넷이나 사기에는 비싸서 그랬단다. 아마 만 원쯤은 했던 모양이다. 사이즈에 상관 없이 찰 수 있는 금속 밴드형이고 안쪽에 지름 3밀리쯤 되는 원석Z(혹시 모를 잡음을 방지하기 위해 검열)가 규칙적으로 박혀 있었는데, 상인의 설명으로는 밴드도 티타늄이라 원석Z가 빠져도 몸에 좋단다. Z에 열광하는 중년이 하도 많아서 Z가 어느 정도는 몸에 좋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해왔던 나는 그 설명을 전해듣자마자 혼이 빠지는 기분이었다. 티타늄이 우수한 금속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걸 몸에 두르고 있는 것만으로 어떻게 건강이 개선될 수 있단 말인가? 이러다간 라듐이나 폴로늄을 몸에 좋다고 파는 상인이 나타날지도 모른다. 


그러나 건강에 좋으니 쓰라고 주시는 물건을 매도하고 진실을 낱낱이 규명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순순히 받아들었다. 정신적인 위안이 된다면 아주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리하여 본의 아니게  ‘Z-티타늄 브레슬릿 (건강+1)’이라는, 차고 있는 것만으로 아다만티움 발톱을 막아내고 미스릴 갑옷을 찢어발길 수 있을 것 같은 기막힌 아이템을 착용하고 며칠을 생활해 봤다. 그런데 무라카미 하루키가 바다표범 기름을 마시며 '건강 보조 영양제는 그 효과를 도통 알 수 없다는 게 문제’라고 쓴 것처럼 이런 건강 보조 기구들 역시 그 효과를 체감하기가 영 쉽지 않다. 차라리 운동 기구라면 아무리 이상한 물건이라도 쓰는 동안은 운동 효과를 느낄 수 있겠는데, 차고 있으면 건강해지는 팔찌의 효과는 어떻게 느껴야 한단 말인가? 나는 고민 끝에 그것을 차고 잤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를 비교해보기로 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침에 느낌이 다르긴 했다. 팔찌를 차고 자면 팔 전체에 차가운 기운이 끼어 있는 듯한 감각이 느껴졌다. 이물감이라면 이물감이고 개운하다면 개운한, 희한한 느낌이었는데, 그것이 Z 때문인지, 아니면 단지 금속 팔찌를 차고 자서 혈액순환에 이상이 생긴 탓인지 알 길이 없었다. 굳이 나쁘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서 나는 그럭저럭 어깨가 시원한 것 같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모양도 그리 나쁘진 않아서 이 정도면 계속 착용해도 괜찮겠구나 싶었다. 


반지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건강 반지라면 낄 의향이 있지만, 팔찌는 일할 때 거추장스러워 싫다.


그러나, 며칠 전 오픈마켓에서 Z 팔찌를 검색했다가 생각이 바뀌었다. 네 개 다 사기에는 비싸서 셋 만 샀다는 팔찌의 가격은 놀랍게도 1400원이었던 것이다! 뭐든 가격으로 따지는 것은 좋지 않은 습관이지만, 가격이 나름대로 신빙성의 기준이 되기도 한다. 어머니가 바가지를 썼으리라는 것은 일단 무시하고, 냉정히 생각해서, 차고 있는 것만으로 명백히 건강해지는, 심지어 영구적인 효과를 가진 팔찌가 고작 맥주 한 병 값이라면 누가 왜 그것을 사지 않겠는가? 


그래서 그 즉시 원소 Z의 효과에 대해 한국어, 영어, 일어로 검색해 보니, 이건 참으로 가관이다. 이온을 어떻게 해서 인체의 밸런스를 잡아주고 산소를 공급해서 세포를 활성화하고 숙면을 유도하고 빈혈을 없애며 심지어 암 치료에도 효과가 있단다. 이걸 곧이 곧대로 믿자면 연금술사들이 그토록 찾던 현자의 돌이 따로 없다. 게다가 사람에 따라 설명도 제각각이다. 과학에 전문적인 지식은 없지만 이걸 다 믿을 수 없다는 것만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명백한 매커니즘이 있다면 이렇게 얘기가 분분하진 않으리라. 백번 양보해서 효과가 있을 수는 있어도, 아직 불확실하다는 것이다. 


아무튼, 그렇게 자료를 찾아보고 나니 이 신비의 팔찌는 당장 거추장스럽고 촌스럽게 느껴지기 시작했으며, 자고 일어났을 때의 묘한 감각도 불쾌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게 조금이라도 긍정적으로 느껴졌던 것은 아마 위약 효과 때문이었으리라. 사람의 믿음이란 상상 이상으로 굉장한 것이라, 좋은 것이라고 믿으면 정말 좋은 것 같고, 나쁜 것이라고 믿으면 정말 나쁜 것이라고 믿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이 팔찌도 좋은 것이라고 인식되는 동안은 정신적으로 효과를 거두고 있는 셈인데, 그렇다고 가만 있다간 어머니가 언제 14만원이나 140만원짜리 아이템을 사올지 모르니 언젠가 말을 꺼내볼 일이다. 


(2015.07.22.)




-후기


그리하여 그 팔찌는 어떻게 되었느냐. 이것도 후속 보도를 하는 재미가 있겠군요. 간단히 말해서, 두어 달쯤 지났을 때는 아무도 찾지 않게 되었습니다. 건강에 관한 모든 것들이 이런 식이죠. 팔찌를 찬다는 아주 사소한 생활 습관 하나조차 바꾸기 어려운 겁니다. 건강해진다는 건 그래서 어려운 거예요. 별로 예쁘지도 않고 거추장스럽기만 한 팔찌를 매일 차고 다닐 수 있을 정도로 자신의 생활 패턴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은 그딴 것 없이도 다른 방법으로 건강을 잘 챙길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무튼 아주 간단히 건강해질 수 있다는 광고는 그 무엇도 믿지 않기로 했습니다. 


(2016.06.01.)


매거진의 이전글 헌혈 전선 이상 없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