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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건해 Jul 24. 2024

중고 거래시 적어야만 할 내용들 1


팔기로 한 물건을 잘 닦아서 사진까지 찍었다면 이제 당연히 상품 설명을 적어야 할 것이다. 사진을 열심히 찍었으니까 설명은 대충 적어도 되지 않냐고?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다. 하지만 다음 예시를 보면 너무 대충 적는 것도 상당히 문제가 있는 일이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닌텐도? 게임기 안 써서 팝니다. 사진 참조.


설명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극단적으로 간단히 쓴 예시에 불과하면 좋겠는데, 의외로 설명을 이렇게 쓰는 사람이 적지 않다. 물건이 괜찮다면 설명이야 간결할수록 좋을 거라는 생각에도 일리는 있으나, 중고 물품 판매자는 신뢰도가 생명이라는 걸 잊어선 안된다. 아무리 내가 청렴결백한 우수 판매자라 할지라도 중고 시장에 서있는 한 구매자에게는 사기꾼으로 보일 확률이 존재한다. 돈만 받고 물건을 안 보내는 사기꾼 말고, 값싼 저택을 보여주면서 귀신 씌인 소년이 일가족을 살해하는 사건이 몇 번이나 일어난 사실을 고지하지 않는 부동산 중개업자 같은 종류의 사기꾼을 말한다. 억울하더라도 이런 종류의 의심은 플랫폼 내 매너 점수 따위를 아무리 높여도 영원히 씻을 수 없다. 누구나 들어와서 물건을 팔고 여차하면 도망갈 수 있는 중고 시장의 특성이라 어쩔 수 없다. 우리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내용을 가능한한 성의있게 적어야만 하는 것이다.

성의 있고 좋은 판매글에 필요한 요소를 나는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매너

판매 사유

확실한 사양

장점 어필

확실한 문제 고지

거래 방식 고지



   1.매너

제품의 여러 부분을 선명하게 잘 찍었다고 해서 판매자의 매너나 태도가 드러나기는 어렵다. 촬영자의 마음이 느껴지는 사진을 찍는 건 프로의 영역에서도 어려운 일이니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제품을 설명하는 글은 말에 가까운 것이라 길이가 짧아도 사람의 인상에 영향을 끼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누구나 읽고 눈시울을 붉힐 만큼 감동적이고 따뜻한 글을 써야 하는 것은 아니다. 중고 물품 판매자는 거래하기 꺼려지는 이상한 사람, 무성의한 사람, 자기가 뭘 파는지도 잘 모르는 사람으로 보이는 것만 피하면 평균 이상의 판매자가 될 수 있다. 그러자면 글의 매너부터 신경 써야 하는데, 그중 가장 기본적인 건 공격성을 보이지 않는 것이다.


물건을 파는데 대체 무슨 공격성을 드러낸단 말인가? 의아하게 느껴질 수 있겠으나, 거래를 오래 한 사람이나 문제를 자주 겪은 사람이 지친 나머지 이런 짓을 저지르곤 한다. ‘네고 금지 개X끼야’ 따위 욕을 대차게 써놓는 것이다. 거짓말 같지만 진짜로 본 사례다. 그보다는 훨씬 낫지만 그래도 보자마자 피곤해진 경우로는 ‘할인 요구시 즉시 차단. 설명에 적어놓은 사항에 대한 질문에는 답변하지 않으니 똑바로 읽어보길 바랍니다.’와 같은 경고도 있었다.


판매자가 잡다한 질문과 할인 요청에 시달렸다는 건 확실히 알겠지만, 이래서야 영 거래할 마음이 들지 않는다. 무슨 질문 하나 하기도 편치 않고, 구매 후에 문제가 생겼을 때도 적절한 조치를 해줄 것 같지 않다. 비슷한 예로 식당에서 무슨 메뉴를 보고 그건 어떤 요리냐고 물었더니 ‘메뉴판에 써있는데 못 읽어요?’ 같은 대답을 듣는다면 기분이 어떻겠는가? 혹은 카페 문에 ‘1인 1메뉴 주문 안 하고 떠들기만 하는 개매너 손님은 사양’이라고 적혀 있으면 들어가고 싶을까? 손해를 감수하고 그렇게 강한 어조를 써야만 할 처지일 수도 있겠으나, 온라인 플랫폼을 거쳐 교류하는 중고 거래는 상대를 쉽게 차단할 수 있으니 그렇게까지 표독해져서 얻는 이득이 크지 않다. 따라서 분노는 내려놓고 가급적이면 우호적인 자세를 취하자.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문장을 가급적 ‘해요’ ‘합니다’로 끝내고, 말이 너무 무거운 것 같으면 느낌표를 종종 넣어보자. 


-할인 요청은 받지 않습니다. 상세 설명 꼭 읽어주세요!


나는 위와 같은 정도의 어조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말랑말랑하게 써서 누가 귓등으로나 듣겠냐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는데, 말이 아니라 글인 만큼 어조가 부드러워서 무시하는 사람보다는 글을 대충 넘겨 읽느라 놓친 사람이 훨씬 많을 거라는 게 내 생각이다. 나 역시 판매글에서 필요한 정보부터 찾아 읽게 될 때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니 중요한 말은 험하게 하지 말고 똑같이 두 번 세 번 쓰는 편이 시각적으로도 의미 강조면에서도 낫다. 판매자인 나의 가치는 낮추지 않으면서 상상 이상으로 글을 제대로 읽지 않는 구매자에게 중요 정보를 전달하려는 시도를 포기하지 말자. 진상과 싸우겠다고 칼춤을 추고 있으면 지나가는 사람에게 보이는 건 칼춤을 추는 내 모습뿐이니 어쩌겠는가?


(물건 이름도 모르고 짜증까지 난 사람은 대하기 싫다)


   2.판매 사유


사실 물건을 처분하는 이유를 꼭 적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진실된 판매 사유가 적혀 있으면 그 물건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진다. 옷을 팔 때도 그냥 파는 게 아니라 ‘아끼던 건데 체형이 변해서 처분합니다’ 같은 이유가 달려 있으면 알게 모르게 호감이 생긴다. ‘잘 신다가 건강 문제로 등산을 하지 못하게 되어 처분합니다’도 좋은 물건인데 피치못해 파는구나 싶어 더 믿게 된다. 사주는 게 돕는 것 같기도 하다. 최근에 본 예로는 ‘등산 갈 때 이걸 신었어야 하는데 다른 것 신었다가 인대를 다쳐서 충격파 치료비만 몇 백만 원이 나왔다’라는 것도 있었다. 이쯤 되면 아침 방송의 건강 코너를 보는 방청객처럼 고개를 끄덕이며 좋은 등산화를 신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요컨대 흔히 마케팅 분야에서 말하듯이 제품에 스토리가 겸비되면 고객의 마음을 움직이기 쉬워진다는 말이다. 신품급 물건을 사는 게 아닌 이상 전주인이 정을 붙이고 쓰다 양도하는 물건이 더 안전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가 당장 결제를 시킬 수 없더라도 제품에 대해 아는 것 없이 대충 팔아치우기만 하려는 사람으로 보일 확률은 낮출 수 있다. 


그렇다고 없는 얘기를 굳이 쥐어짜서 억지로 만들어낼 필요는 없다. 오히려 그래선 역효과가 날 수 있다. 가령 ‘전남친 선물’을 처분한다고 신품급 물건을 여럿 올려놓으면 아무래도 수상한 냄새가 난다. ‘이사 선물’도 마찬가지다. 사실이든 아니든 업자가 위장한 느낌을 주기 쉽다. 실제로 오픈마켓에 물건을 등록해서 시세를 조작한 뒤에 받았는데 안 쓴다고 중고 거래를 시도하는 자들이 있다고 하니, 얘기가 너무 반복적이거나 거짓말 같다면 판매 사유는 생략하는 게 낫다.



추신: 매거진 페이퍼 269호에 헌 신 얘기를 썼습니다.

https://www.aladin.co.kr/m/mproduct.aspx?ItemId=340560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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