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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건해 Jul 10. 2024

어차피 팔 물건을 얼마나 닦아야 하나



사진 촬영 얘기를 하기 전에 중고 물품 판매 전의 세척에 대해 이야기했어야 하는데 깜빡했다. 어차피 팔 물건을 굳이 공들여 세척까지 해야 하나? 간단히 결론을 내리긴 어렵지만, 이것도 결국 빠른 처분이 목적이라면 세척하지 않고 팔 수도 있고, 값을 조금이라도 더 높이려면 최대한 깨끗이 세척해서 팔아야 한다고 정리할 수 있겠다.


이렇게만 끝내면 너무 당연한 소리에 불과하니, 팔 물건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세척해야 하는 이유부터 정리하자. 윤리적인 문제를 떠나서, 일단 사진으로 보기에도 더러운 물건은 잘 팔리지 않는다. 우리가 옷차림의 단정함으로 사람의 됨됨이를 판단하듯, 물건이 더러우면 그것의 기능도 정상은 아닐지 모른다는 불안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물건은 작업용 의복처럼 애초에 더럽힐 작정으로 구하는 게 아닌 이상 구매자가 사서 세척할 생각을 하게 되는데, 오염이 먼지 수준을 넘어간 것으로 추정되면 세척에 들어가는 수고와 비용이 그 물건을 싸게 구해서 얻은 이익을 넘어갈 위험이 커진다. 이것도 너무 당연한 소리 같지만, 뜻밖에도 중고 장터를 보면 더러운 물건을 그리 싸지도 않게 올린 사람이 제법 많다. 물건을 쓰던 사람은 이만하면 쓸만하다고 생각하기 쉽기 때문이다. 자기 객관화가 어렵듯이 자기 상품 객관화도 어렵다. 따라서 자기 물건이 영 팔리지 않는다면 시간을 내서 물건을 세척해보는 것도 방법이다.



그렇다면 세척을 어느 정도 해야 좋을까? 매물을 아주 새것같이 만들 수 있다면 그게 제일이겠지만, 세척도 시간과 노력과 비용이 드는 일이다. 따라서 내가 지불하는 비용보다 물건의 가격이 높아질 거라고 기대할 수 있는 선에서 세척하는 게 합리적이다.


이런 타협점을 경우에 따라 찾아보자. 일단 표면이 매끈해서 닦기가 어렵지 않은 플라스틱, 유리, 금속 제품은 오염이 보인다면 물티슈로 한 번 닦는 것만으로 훨씬 말끔한 모습이 되니 수고를 좀 들이는 게 좋다. 먼지가 가득 쌓인 선풍기나 거울, 커피 얼룩이 남은 키보드, 핏자국이 남은 망치 따위를 얼씨구나 살 사람은 얼마 없을 테니.


그러나 자전거처럼 구조가 복잡하고 기름때처럼 닦기 어려운 오염이 생긴 물건은 깨끗이 만들기가 쉽지 않다. 처분도 귀찮은 일인데 어느 세월에 털고 세척 용품을 동원해서 닦는단 말인가. 이런 경우는 실사용에 거슬리지 않을 정도로 닦아내기만 해도 괜찮다고 본다. 몸이 닿는 부분을 위주로 닦고 나머지는 털어내는 정도로 세척을 마치는 것이다. 세척에 드는 노력이 너무 크기 때문에 그 정도만 해도 수준급이다. 기능에 이상이 없고 사진과 설명에 거짓이 없다면 그 물건은 팔리고, 항의를 받을 일도 없을 것이다.


천이나 가죽처럼 대충 닦거나 털어서 해결되지 않는 재질로 만들어진 물건이 가장 골치아프다. 의류, 가방, 신발 등등이 그렇다. 이중에서 작고 가벼우며 세탁기로 빨 수 있는 물건이라면 그나마 부담이 덜한데, 코트나 패딩처럼 집에서 세탁하기가 어려운 물건은 오염이 있다고 세탁소에 보낼 수도 없다. 어차피 팔 물건이고 얼마에 팔릴지, 팔리기나 할지도 정확히 모르는 차에 비용까지 들여 세탁소에 맡기긴 싫을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이럴 때는 부분 세탁을 시도하거나 세탁을 그냥 포기하고 상태를 정확히 고지하는 게 적당한 타협안이다.


(물건은 빛을 내지 않으면 빛나지 않는다)


다만 신발은 가급적 품을 좀 들여서 파는 편이 낫다. 아예 물에 담가서 빡빡 닦으라는 얘기는 아니고, 최소한 솔로 터는 정도는 하자는 말이다. 신발이란 사용하다 보면 자연히 밑창에 흙과 이물질이 끼고 갑피에 흙먼지가 앉기 마련이고, 심지어 사용하지 않더라도 먼지가 누적되어 발가락이 닿지 않는 안쪽에 먼지가 낀 채 남게 된다. 이런 물건은 가격이 바닥까지 떨어질뿐더러 팔린다 해도 좋은 소리를 듣기 어렵다.


뿐만 아니라 더러운 신발은 정말 볼품이 없다! 흙먼지를 뒤집어쓴 등산화나 부츠를 말끔히 닦아본 사람이라면 아마 이해할 텐데, 실감이 나지 않는다면 유튜브에서 신발 세척이나 복원 영상을 찾아보라. 손상 복구 과정이 없는 단순 세척이라도 가죽 신발의 케어 전후의 차는 인간이 일주일 쯤 안 씻고 뒹군 꼬락서니와 예식장에 가는 모습의 차이 이상이다. 내가 팔 물건이 꾸밈 없이 추접스러워도 아끼고 사랑해줄 구매자를 찾는 게 아니니까 더럽다는 생각은 들지 않을 정도로 관리를 해서 사진을 찍자.


신발 세척을 자주 해본 경험으로 요령을 적어보자면, 흙먼지는 보통 물을 분무한 뒤에 구두솔로 털기만 해도 해결된다. 표면이 매끈한 재질이면 물티슈도 약간은 효과가 있다. 잡화점에서 파는 신발 세척용 물티슈는 일반 물티슈보다 나은 편이다. 그러나 물티슈 같은 부직포 재질로 신발 밑창을 닦는 것은 실수다. 섬유가 고무에 조금씩 달라붙어 거미줄을 짓밟고 다닌 꼴이 되기 쉽다. 이 섬유들을 일일이 떼는 건 대단히 귀찮으므로 바닥만큼은 물을 분무하고 솔로 털자. 물이 튀는 것도 말리는 것도 귀찮아서 물티슈에 손이 가는 게 습관적인 패턴이지만 분무기로 물을 적당히 뿌리면 물도 덜 튀고 금방 마른다.


스웨이드나 누벅처럼 표면이 기모라면 잡화점에서 전용 고무솔과 지우개를 사서 비비듯이 터는 게 좋지만, 오염이 배어 습식 세척이 불가피할 경우엔 원래 용도보다 다용도 세척제로 유명해진 ‘발을 씻자’를 써볼 수 있겠다. 염기성 세제는 가죽을 망가뜨리지만 발을 씻자는 약산성이면서 세척력이 강하다. 추가로 통가죽이나 인조 가죽은 가죽 로션을 발라서 마감하면 윤기가 돌아 귀티가 날 지경이 되는데, 가죽 로션이 없다면 인간용으로 나온 핸드크림을 사용해도 무방하다.



다시 한번 강조하는데, 반드시 이런 식으로 물건을 새것같이 깔끔히 닦아서 팔아야만 한다는 얘기가 아니다. 어느 정도 깨끗이 만들면 값도 더 받을 수 있고, 팔리기도 빨리 팔릴 수 있으니 합리적인 선에서 세척하라는 말이다. 나는 신발을 수십 켤레나 깨끗이 빨고 수선까지 해서 팔거나 기부하곤 했는데, 이따금 과도한 장인정신을 발휘하는 바람에 ‘어차피 내 손을 떠날 물건인데 얼마나 이득을 본다고 이 고생을 하는 거지’라는 회의감에 시달리곤 했다. 청결함이 얼마나 득이 되는지 수치로 확인할 수도 없고 받은 사람이 기뻐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니 당연하다. 신발을 정성껏 닦으면서 보니 새삼 정이 가서 처분을 포기한 적도 몇 번 있다. 자기 물건을 자기가 새로이 잘 쓰게 되었다면 그건 나름대로 아름다운 결말이지만, 정리의 관점에서 보면 다시없는 실패다. 그러니 스스로 지치지 않는 선을 발견하자. 기후 위기와 경제 침체라는 깨지 않는 악몽의 시대를 살아가는 내내 우리는 이 행위를 지속해야 할 테니, 지치지 않는 게 제일이다.



*추신 

저는 언제나 돈과 일을 구하고 있습니다.


*추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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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신

제10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에서 특별상을 받고 2023년 2차 아르코 문학나눔 도서보급사업에 선정된 저의 "아끼는 날들의 기쁨과 슬픔"이 지금도 절찬리에 판매중입니다. 낡고 고장난 물건을 고치거나 버려진 것들을 수선하고 중고 거래를 지속하며 느낀 소비 생활의 고민과 의미에 대한 수필집입니다. 지속적으로 물건을 사고 버리는 일에 피로감을 느끼거나 사소한 소비에도 회의감을 느낀 경험이 있는 분들이라면 공감할 부분이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구매해주시면 저의 생계와 창작에 큰 도움이 됩니다. 살려주세요...

종이책: https://search.shopping.naver.com/book/catalog/39577892619 

밀리의 서재: https://millie.page.link/kz1M5 

밀리의 서재 요약본 오디오북: https://millie.page.link/ExYT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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