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정한 행복을 누리는 방법
맥주처럼 가볍고 즐겁게 마실 수 있는 술이 없다. 과장이 아니라 정말로 그렇다. 소주부터는 도수가 너무 높고, 와인은 과도하게 묵직하고 달며, 근래에 유행하기 시작한 하이볼은 향이 너무 강하다. 결국 만만한 술을 찾다 보면 맥주로 돌아오게 된다. 과자나 견과류 따위 간단한 안주와 먹든 피자, 치킨, 감자 등의 식사와 함께 하든 많은 경우 맥주가 갈증을 해소하고 청량함을 선사한다.
내가 맥주를 본격적으로 마시기 시작한 것은 물론 대학에 들어간 뒤였으나, 곰곰이 돌이켜보면 대학생활 초기에 우르르 몰려다니며 먹은 맥주는 제 맛을 즐겼다고 할 수 없을 것 같다. 비교를 별로 해보지 못해서 맛을 잘 알지도 못했을뿐더러 관리가 덜 된 생맥주를 마실 때가 대부분이었고, 그나마 그것도 더는 마시기 싫을 때까지 마셔댔으니 그건 맥주를 즐긴 게 아니라 야만 습속의 일부로 수행한 의식의 한 부분에 불과했다. 프레데터가 첨단 무기로 에일리언을 잡고 성인이 될 동안 한국 대학생은 알코올로 자신의 위와 간을 파괴하며 성인이 되는 셈이다.
위장 파괴의 나날을 지나 내가 맥주를 진심으로 맛있다고 절실히 느낀 것은 대학교 2학년 시절, 넥센 히어로즈의 야구 경기를 보러 갔을 때였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야쿠르트 스왈로즈의 경기를 보며 소설가가 되기로 작정한 반면에 나는 맥주가 진짜 맛있다는 소박한 깨달음을 얻었던 것이다. 참고로 히어로즈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나는 히어로즈의 팬조차 아니라 당시의 애인이 응원하는 팀의 경기를 보러 따라다녔을 따름이다. 아무튼 경기는 졌으나 지독하게 무더운 여름에 냉방이 될 턱이 없는 경기장에서 연신 땀을 닦으며 마신 맥주는 말 그대로 생명수라고밖에 할 수 없을 정도로 시원하고 맛있었다. 씁쓸하고 차가우며 은근히 구수한 동시에 알코올 특유의 싸한 맛이 알게 모르게 머릿속을 살짝 롤러코스터에 태우는 듯한 맛은, 젊음을 빚어서 맛으로 표현하면 바로 이런 것이겠구나 싶었다.
이후로 나는 걸핏하면 맥주를 마시는 사람이 되었다. 그 전에도 자주 마셨지만 이후로는 더욱 청량음료 마시듯 즐겼다. 같이 마셔줄 사람이 있든 없든 신경 쓰지 않고 샌드위치를 먹을 때도 맥주를 곁들였고 찐감자를 먹을 때도 맥주 비축분을 꺼내 먹었다. 영화를 볼 때도 입이 심심하다는 이유로 과자와 맥주를 즐겼는데, 그러던 어느날은 영화를 보면서 정신없이 마시다 보니 대낮부터 혼자 1리터짜리 페트병 하나와 330ml짜리 캔 하나를 비우고 말았다. 맥주가 아무리 잘 넘어가는 술이라 해도 정도가 있다. 이날부터 나는 대량의 맥주를 빠르게 마시는 유희를 서서히 그만두게 되었다. 건강이 걱정되어서라기보다는 가급적 상식선에 머물고 싶어서였다.
그리고 진지하게 따져보니 수지타산도 별로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1리터 넘는 맥주를 마시는 게 500ml 한 캔을 마시는 것보다 2배 이상 즐거운가하면 별로 그렇지 않다. 취기는 과도하고 맛은 점점 흐리멍텅해진다. 대략 700ml를 넘기기 시작하면 맥주맛을 섬세하게 즐기기 힘들어진다. 그냥 관성으로 마시는 것에 가깝다. 엄밀히 말해서 맛이 있어서 먹는 게 아니라 알코올이 도파민 분비를 촉진하니 뇌가 자동적으로 이 즐거움을 따라가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쾌락중추에 전기자극을 주는 레버를 연신 당겨대는 실험쥐와 다를 바가 없다. 아무리 내가 알코올이라면 크게 가리지 않고 섭취하는 작자라지만, 맛을 즐기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맥주를 이런 식으로 마시는 것은 건강과 맥주와 시간의 총체적 낭비다. 다른 모든 쾌락 추구 행위가 그렇듯, 이럴 때는 뇌를 비롯한 몸 전체가 감각을 되찾을 때까지 기다리는 게 가성비와 지속성을 챙기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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