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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암산의 가성비와 준비되지 않은 등산의 위험성(개정)

가성비 멋진 산도 준비 없는 자에게는 고통을 준다

by 이건해



등산 얘기를 시간순으로 하려 했는데, 먼저 다루는 게 좋을 것 같아 최근 무모하게 호암산에 간 경험을 우선 쓴다.


이날의 등산은 상당히 우발적이었다. ‘미션 임파서블: 파이널 레코닝’을 본 뒤에 가볍게 걷고 돌아갈 작정으로 나선 것까진 계획대로였으나, 목적지와 목적지까지 가는 과정을 대단히 대충 결정했다. 영화가 길어서 4시쯤에야 끝났다는 걸 생각하면 다른 후보지였던 ‘서대문이음길’이 합리적인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오랜만에 산다운 산과 암릉을 걷고 싶다는 욕망이 나를 이끌었다. 이것도 병이라면 병이다.


목적지는 정했으니 다음은 가는 방법을 정할 차례다. 다음 세 가지를 고려했다.

1.버스를 타고 호암산 중턱에 있는 호압사 인근까지 접근한 뒤에 30분쯤 산을 오른다.

2.석수역에서 이어지는 서울 둘레길을 따라 간다.

3.신대방에서 내려 독산 자락길을 따라 호압사를 거쳐간다.


1번은 가장 쉽고 빠르고, 2번은 쉬운 길을 걷게 되지만 둘레길 스탬프 하나라도 더 찍을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3번은 쉬운 길이지만 자락길의 들머리가 가깝다는 이점이 있었다. 게다가 북한산 둘레길처럼 잘 알려진 거대 코스가 아니니 지역주민만 아는 맛집 같은 게 아닐까 하는 막연한 기대도 생겼다. 나는 고민 끝에 독산 자락길을 택했다. 내가 하는 선택이란 대개 이런 식인데, 아마 이건 모험심 때문만이 아니라 미지의 영역의 우수성을 증명해서 효능감을 얻으려는 심리 때문일 것이다.


그리하여 신대방역에서 내려 한참 걷다 중고 의류 상점까지 구경한 뒤 5시 42분에야 들머리에 도착했다. 아예 야간 등산을 하기로 작정한 게 아니면 산에 오르지 않는 시각이다. 아니, 이 시각이면 사실 하산하는 사람도 드물다. 그러나 지도로 대충 보니 호압사까지 4킬로미터 정도고, 일몰은 7시 30분 이후니까 아슬아슬하게 깊은 밤이 되기 전엔 하산할 수 있을 법했다. 물론 이건 완벽히 틀려먹은 계산이었지만.......


그나저나 들머리에 가는 과정도 아주 순탄치는 않았다. 실수로 한 블록 일찍 꺾는 바람에 미성 중학교 안쪽 길로 가려 했더니 산으로 통하는 철문이 단단히 잠겨 있었던 것이다. 이런 식으로 학교나 일반 주택 단지 안의 들머리가 잠겨있는 걸 경험하는 건 세 번째였다. 아마 안전상의 조치이리라. 앞으로 이런 길은 택하지 않기로 작정하며 학교 옆으로 돌아가서야 겨우 산으로 올라설 수 있었다.


그래도 산 위로 올라서고 나니 길은 제법 훌륭했다. 아주 넓게 다져진 길도 짐승길처럼 비좁은 길도 아닌 정도로 적당한 흙길과 나무 계단이 이어졌고, 정심 초등학교 옆의 좁은 길을 빠져나가니 매력적인 데크길이 나왔다. 근처에 생태 공원과 체육 공원이 있어서 그런지 여러 갈래로 나뉜 데크길은 관리 상태가 좋았다. 심지어 도로 위를 구름다리로 건널 수도 있었다. 데크길을 선호하진 않지만 이런 길은 자연과 함께하는 미래의 풍경같아서 보기에 즐겁다. 표지판을 제대로 보지 않아 두 번이나 길을 잘못 들어섰지만, 어쨌든 보기에는 즐거웠다.


다리를 건너고 나니 이제 본격적인 자락길이었다. 연초록도 진초록도 아닌 나뭇잎 사이로 평탄한 흙길과 나무계단이 번갈아 이어졌다. 그런 길을 비스듬이 내리쬐는 태양빛이 황금색으로 물들여 눈에 보이는 풍경 전체가 따듯해졌다. 이런 시간을 뭘 찍어도 사진이 잘 나오는 ‘매직 아워’라고 하는데, 그 마법의 법칙은 숲길에서도 예외가 없어서 나는 걸음마다 감탄했다. 특별히 꽃이 많거나 수종이 멋진 것만 모여있지도 않은데도 계단의 풍경이 빼어나게 아름다웠다. 이런 순간을 사람에게서 발견하면 십중팔구 사랑에 빠지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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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과 빛으로 물든 작은 계단길)


그러나 이렇게 자연의 아름다움에 사로잡힌 6시 47분경, 나는 슬슬 지쳐서 주저앉을 지경이 되었다. 아침으로 방탄커피, 점심으로 두유 한 팩만 먹고 버텼더니 에너지가 거의 다 고갈된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양갱 하나를 꺼내서 다 먹어야 했다. 금방 하산할 줄 알고 추가 식량을 사지 않은 게 패착이었다. 애초에 등산할 때는 뭐든 남겨서 온다고 생각하고 준비해야 한다는 걸 잘 알면서도, 나는 이날의 일정은 등산으로 생각하지 않았던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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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퍽 아름답지만 어쩐지 끝나지 않는 오솔길)


지쳐서 정신이 없었던 탓인지 길을 두 번쯤 잘못 들어가며 걷자니 험하지도 않은 길이 영원처럼 이어지는 듯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슬슬 그만두고 돌아갈까 하는 생각도 진지하게 했다. 하지만 낮고 쉬운 산으로 유명한 호암산의 초입에도 가지 못한 채 포기한다는 건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았다. 결국 두 시간 가량 걸어서 7시 30분경에 호압사 앞에 도착했다. 예상보다 한 시간은 더 걸린 셈이다. 지도를 보고 거리를 대충 계산했는데도 이렇게까지 오래 걸린 이유가 무엇일까?


근본적인 이유는 단순했다. 지도는 평면인데 산지는 경사로니까 지도에 보이는 거리에 1.5 정도는 곱해야 했던 것이다. 단순 계산상으로는 그렇게까지 더 길어지지 않지만, 이동 시간을 산출하려는 목적으로 거리를 어림잡는다면 걸음이 느려지거나 길을 헤매는 것까지 감안할 필요가 있으니, 지도상의 4킬로미터는 6킬로미터로 어림잡고, 한 시간에 2킬로미터에서 3킬로미터 걷는다고 계산해야 안전했다. 이 정도로 기초적인 부분을 이제야 깨달은 건 아마 내가 남이 만든 정보나 앱만 참고하거나, 혼자 다닌답시고 시간을 신경 쓰지 않은 탓이리라. 위험하지 않은 상황에서 배운 게 그나마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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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무는 해가 물들인 산길의 아름다움은 걸어봐야 안다)


그렇게 별 무리 없는 안전한 길을 나 혼자 천신만고 끝에 걸어서 호암산 초입에 들어서고 나니, 봉우리로 향하는 경사가 여간 험해보이지 않았다. 정비가 아주 잘 된 데크 계단만 오르면 되는데도 까마득했다. 치솟은 봉우리를 갈지자로 움직이며 올라야 해서 데크 계단이 한눈에 몇 겹이나 보이는 게 상당히 막막한 느낌을 줬다. 평소라면 제법 느긋하게 올라갈 길인데, 기력도 시간도 없는 상태에서 오르자니 태산같아 보였다. 나는 포도당 캔디를 꺼내 먹은 뒤, 장갑을 꺼내서 끼고 난간으로 몸을 당겨가며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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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질녘 호압사의 운치 있는 광경)


그즈음 나를 움직이는 것은 대단한 풍경을 보겠다는 기대가 아니라 여기서 포기할 수 없다는 오기, 그리고 훨씬 높은 산을 다녔던 기억이었다. 북한산 숨은벽과 도봉산 Y계곡을 누비고 다닌 사람이 여기서 늘어질 순 없지 않은가. 나는 계단을 한 칸, 한 칸, 반 칸, 반 칸.......이런 식으로 느리게 오르면서 숨을 몰아쉬었다.


그러다 나는 문득, 이 정도가 산에 익숙하지 않거나 체력의 최대 용량이 도시의 일상생활에 맞춰진 사람의 상태가 아닐까 생각했다. 이미 지쳐서 걸음걸음이 무겁고, 풍경은 눈에 들어오지 않고, 딱히 더 기대되는 것도 없고, 가방도 무겁고, 발은 아프고, 당장 상식적인 공간으로 돌아가 뭐라도 먹고 싶을 뿐인데 자꾸 걸음을 재촉당하는 상황이 아마 이럴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다리를 쭉쭉 펴라든가, 보폭을 줄이라든가, 물을 조금씩 마시라든가, 주변의 멋진 풍경을 즐기라든가, 평소에 운동을 안 해서 그렇다는 얘기 따위를 들으면 살의가 치밀고 다시는 산에 오지 않겠다는 결의를 다지게 될 것이다.


정신은 육체에 종속되어 있으니 다른 육체로 사는 이상 타인을 완전히 이해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 차이를 극복하고 시간을 함께하려면 대단히 세심한 고려가 필요할 것이다. 등산처럼 기력을 쓰는 활동도 그렇지만 다른 취미도 비슷하지 않을까? 나는 멍청한 선택을 한 자신을 증오하면서 새삼스럽게 그런 깨달음을 얻었다. 공복과 탈진 속에서 깨달음을 얻다니, 이래서 고행들을 하는 모양이다. 근처에 보리수가 있었다면 번뇌를 모두 떨쳐버릴 수 있었을 텐데 아쉬운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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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겹겹이 이어지는 데크 계단이 시각적으로 체력을 빼앗는다)


데크 계단이 끝난 건 7시 51분이었다. 옆을 보니 해가 넘어가 어두워지는 도시 풍경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그 풍경은 그야말로 광대하면서도 너무 멀지 않아 생동감이 넘쳤고, 변해가는 하늘 아래 켜지는 불빛들이 몹시 아름다웠다. 이 보상을 위해 과도한 비용을 지출하긴 했지만, 그래도 충분한 가치가 있는 광경이었다. 가성비 좋은 맛집 코스라고 하더니 과연 그랬다. 아마 상식적인 경로와 상태로 호압사까지 왔다면 적당히 숨을 고르며 잘 왔다고 기뻐할 만했다. 이 시티뷰는 아차산보다 훌륭했고, 불암산에 못지 않았다. 산과 코스의 아름다움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대단히 권장할 만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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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이 내려앉는 도시의 풍경)


그런데 데크 길이 끝이 아니라 거기서 암릉을 올라서야 했다. 경사가 제법 심해서 긴장하며 손발을 써야 하는 구간이 숨은 곳이었다. 암릉 중독자로서는 반가웠지만, 지친 만큼 편치 않게 느껴지기도 했다. 데크에서 봉우리의 암릉으로 올라서니 넓으면서 울퉁불퉁한 바위가 이어졌다. 나는 야경으로 변해가는 도시를 눈에 담고 정상을 향해 걸었다. 슬슬 다 왔을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끝이 보이지 않아 당황스러웠다. 게다가 굴곡이 심한 바윗길이 계속 이어져 상당히 놀랐다. 심지어 바위는 마치 계곡에서 볼 수 있을 형상으로 물길 같은 골이 패여 있었다. 걷기 힘든 것과 별개로 지질학적으로 재미난 곳이 아닌가 싶었다.


사진을 많이 찍어가며 경사를 오른 끝에 8시 10분에 마침내 정상에 도착했다. 정상에는 뜻밖에도 넓은 헬기 착륙장이 펼쳐져 있고, 그 옆의 바위 지대에 국기봉이 있었다. 나는 사진을 찍고 주저앉아 숨을 돌리며 집에서 가져온 귤을 하나 까먹었다. 그리고 등산화와 양말을 벗고 왼쪽 엄지발가락에 반창고를 붙였다. 자꾸 쓰린 것이 물집이 잡힐 징조가 보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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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량한 암릉 위의 국기봉이 정상을 알린다)


근래에는 이런 증상을 느끼지 못했는데 의아하진 않았다. 이제 나는 문제의 이유를 알 정도가 되었다. 이날 나는 비교적 얇은 양말을 신고 있었다. 게다가 이 물건은 메리노울 함량도 낮았으니 땀을 처리하기에 유리하지 않았을 것이다. 심지어 등산화도 90년대에 나온 보급형 구식 제품을 시험삼아 신었는데, 발가락이 놀 여유가 없는 사이즈라 땀이 잘 마르지도 않았으리라 추측할 수 있었다. 여유 없이 딱 맞는 신발은 통증과 물집의 지름길이다. 요컨대 양말도 신발도 총체적 난국이었다는 말이다.


그나마 등산화가 기본은 잃지 않아 발바닥 전체가 아프거나 바닥이 미끄럽진 않았다는 게 다행이었으나, 그렇게 반창고를 바르고 있자니 바람이 제법 쌀쌀해졌다. 다행히 바람막이 정도는 잊지 않고 챙겨 다닐 정신머리는 있었던 터라 나는 가방에서 바로 바람막이를 꺼내 입었다. 그러나 이게 웬걸, 그래도 추웠다. 바람막이가 여름용 홑겹이라 바람이 세차게 불 때마다 체온이 솔솔 새어나가는 모양이었다. 등산을 여러 번 하는 동안 방수투습 재킷이 필수 등산 장비는 아니라는 쪽으로 의견이 바뀌었는데,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여름이라도 조끼와 바람막이 두 겹으로 강한 바람을 막을 준비를 하거나, 방수재킷까지는 아니더라도 고어 윈드스토퍼(고어텍스 인피니움)처럼 멤브레인이 들어간 바람막이로 방풍 대책은 확실히 세워둬야 안전할 모양이었다. 더 높은 곳에서 더 심한 바람을 쐬면 죽을 수도 있다는 말이 과장된 경고가 아니었다.


이렇게 오만가지 실수를 다 해보고 나니 또다시 아무 지식 없이 산을 찾은 사람이 겪을 고난이 어떤 것일까 생생히 떠올랐다. 의욕도 없고 기운도 없는데 체중을 분산해줄 등산스틱도 없다면, 짐의 무게를 분산해줄 허리 벨트도 없는 가방을 매고 있다면, 게다가 충격을 막고 바닥을 붙잡아줄 등산화도 물집을 막아줄 양말도 없이, 면티 한 장 걸치고 강풍에 노출되어 다닌다면 이 짓은 고문 중의 고문이 아니겠는가 말이다. 역시 준비되지 않은 자에게 무턱대고 산을 권할 일이 아니다. 그건 아무나 붙잡고 대뜸 유연성을 키우라며 다리 찢기를 강요하는 꼴이다. 그러니 굳이 산에 가는 느낌을 낼 거라면 둘레길로 시작해서 봉우리 같은 곳은 잠깐 곁들이는 정도로, 기력을 지속적으로 보충해가며 마치는 게 모두에게 즐거운 길일 것이다.


본의 아니게 생초보의 심정을 이해하고 하산을 시작했다. 8시 22분에는 밤이 세상을 뒤덮기 직전이 되어 온 도시가 찬란하게 빛났다. 시야의 끝에서 끝까지 빛무리가 가득한 광경은 마치 지상을 가로지르는 은하수를 보는 듯했다. 지독한 고생을 해서라도 볼 만한 가치가 있냐고 묻는다면 단연코 그렇다고 답할 수 있는데, 심지어 호암산은 쉽게 오려면 얼마든지 쉽게 올 수 있는 곳이니 평범한 길을 택해서 온다면 누구도 후회는 없을 것이다. ‘대체 집 놔두고 산을 뭐하러 올라가냐’고 주장할 등산 극렬 반대주의자조차 여기는 멋있다고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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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의 빛이 별처럼 흩뿌려진 세상)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이었으니 최대한 빠른 길을 택해서 하산을 했다. 데크길로 된 둘레길을 걸어 아파트단지 쪽으로 빠지는 게 가장 나을 듯했는데, 시커먼 어둠이 내린 뒤에도 점점이 불을 밝힌 길이 아름다운 탓인지 밤 산책을 나온 사람들이 제법 되었다. 나는 지친 채로 그들 사이를 걷다가, 길이 맞긴 한지 도통 알 수 없는, 마치 북유럽 공포영화에 나올 법한 샛길로 빠져 대로변으로 탈출했다. 그 와중에 짧은 데크길 같은 게 있어 따라가다 바로 앞이 시커먼 빛을 띠고 있어 발을 멈추기도 했는데, 옆을 돌아보니 연못이라는 안내가 적혀 있었다. 설마 이런 곳에 사람 몸이 다 빠질 연못이 있지야 않겠지만, 이렇게 지친 마당에 발까지 푹 젖으면 정말이지 처참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아파트 단지 앞에서 버스를 타고 시장 근처에 내려 24시간 운영하는 순대국밥집에 들어갈 수 있었다. 심각한 공복상태라는 걸 고려하고 보더라도 지금까지 가본 곳 중에서 가장 훌륭한 국밥집이었다는 게 대단한 보상이 되었다. 옆자리에 모여 앉아 술잔을 기울이는 젊은 남자들은 혐오적인 유행어를 쏟아댔고, 벽에 붙은 거울 속 내 모습은 기겁할 정도로 누추해 보였지만, 그래도 기쁨은 별로 줄지 않았다. 아무도 강요하지 않은 고난을 거쳐 누구나 쉽게 갈 수 있을 산을 간신히 정복했을 뿐이더라도 나는 내가 세운 목표를 달성했고, 평소에 체감하기 힘든 타인의 입장을 느꼈으며, 좀처럼 볼 일이 없는 도시의 야경을 조망하지 않았는가 말이다.


아마도 사람의 정서 상태를 지탱하는 보상이란 대체로 이런 것이리라. 내가 제어할 수 없는 곳에 있는 거대한 보상만을 추구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피폐해진다. 그러니 이렇게 내 마음대로 만든 난관을 극복하며 아무렇게나 의미를 부여하는 시간을 만들 필요가 있는 것이다. 남들이 이룩한 것에 비해 초라하고 스스로 불러온 재앙에 짓눌리는 과정에 불과하다 해도 아무렴 어떤가. 나의 즐거움은 남이 만들어주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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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훈

야경을 보기로 작정한 게 아니면 산은 일찍 다니자.

산지의 거리는 평면지도상의 거리보다 1.5배는 길게 계산하는 게 좋다.

학교 안에 있는 산 입구는 막혀 있을 때가 많다.

식수와 식량은 남을 정도로 갖고 다니는 게 좋다.

딱맞는 신발과 얇은 양말은 물집을 유발할 수 있다.

여름이라도 산은 상상이상으로 추워진다. 바람막이를 포함해서 걸칠 옷을 둘 챙기거나 방풍 의류를 챙기자.

야경은 사진이 잘 나오지 않으니 바빠도 촬영 후에 곧바로 확인하자.

야간 등산을 할 경우 넓은 범위를 잘 비춰주는 조명을 갖고 다니자. 코앞만 보이면 길이 아닌 곳으로 들어서기 쉽다.

산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여유롭게 소화할 수 있는 수준은 아주 보수적으로 고려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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