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추락한 양 팀장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아봐야 했으므로 두 사람은 조심해서 지하층으로 내려갔다. 예선은 플래시에 의지해서 어둠속으로 내려가는 동안 양 팀장이 흘린 핏자국만 남아있고 양 팀장은 어딘가에 숨어서 복수를 노리고 있으면 어쩌나하는 영화적 이미지의 공포를 느꼈지만, 이미 죽을 고비를 한 번 넘은 탓인지 곧장 그럼 뭐 어떠랴 하는 낙천적 각오가 생겼다. 그리고 예선은 양 팀장이 그녀와 달리 자기 목숨을 걸면서까지 남을 해할 수 있을 사람이 아님을 잘 알았다.
각오가 무색하게도 양 팀장은 잘 보이는 곳에 있었다. 지하에 쌓인 잔해 더미 바로 위에 엎더져 있었던 것이다. 정원은 조심스럽게 양 팀장의 몸을 살피며 바로 눕히려다 흠칫 움직임을 멈췄다.
“죽었나요?”
“죽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무사하지도 않군요.”
정원이 양 팀장을 아주 천천히 돌려눕혔다. 그러면서 드러난 얼굴에 예선은 놀라서 입을 가렸다. 양 팀장의 이마에는 철근 조각이 뿔처럼 박혀 있었다.
정원이 한숨을 내쉬었다.
“전두엽에서 편도체까지 손상되었을 확률이 아주 높습니다. 저도 이 부분을 다쳤기 때문에 잘 압니다.”
정원을 그렇게 업신여기더니 자기도 뇌를 다칠 줄이야. 예선은 인과응보의 통쾌함을 느끼기 이전에 실감이 잘 나지 않았지만, 어쨌든 목숨은 살려야 했다.
”119를 부르는 게 좋겠죠?”
그러나 정원은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바로 수술부터 하는 게 정상 생활로 복귀할 확률이 높습니다. 예선 씨, 트렁크에서 검은색 가방을 갖다 주십시오.”
예선은 정원이 건네주는 차 키를 받으면서 되물었다.
“차에 수술 도구를 항상 갖고 다니세요?”
“고칠 수 있는 사람이 장애를 갖게 되는 걸 보고 싶지 않아서 싣고 다닙니다. 특히 오늘은 필요할 수도 있었고요.”
오늘 유혈 사태가 일어날 수도 있다는 걸 예상했던 걸까. 예선은 의문 속에서도 허겁지겁 정원의 차로 달려가 트렁크에서 커다란 공구 상자 같은 것을 꺼내어 돌아갔다.
콘크리트 잔해가 굴러다니는 곳에서 수술을 할 수는 없는 터라 조심스럽게 자리를 옆으로 옮겼다. 지하라 다행히도 바람은 불지 않았다. 정원은 양 팀장에게 모니터가 딸린 혈압계 커프 같은 것을 채워 상태를 확인하고는 가방에서 장갑과 소독제, 주사기, 메스, 전등, 겸자, 핀셋 등등을 꺼내어 빠르게 수술을 준비했다.
“대체로 일반인이 보기에는 편치 않을 테고, 상황에 따라선 심하게 끔찍하거나 사람이 죽는 모습을 볼 수도 있습니다.”
“상관없어요.”
예선은 스스로 놀랄 정도로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어차피 죽이려고 했으니까요.”
정원은 대답 대신 모니터가 달린 청소기 같은 것으로 양 팀장의 상처 부위를 겨누고 스위치를 눌렀다. 그러자 이윽고 모니터에 엑스레이 같은 화상이 표시되었다. 예선은 비파괴 검사 장비가 휴대용으로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다행이군요.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수준입니다.”
정원은 곧장 쇳조각을 천천히 당겨 뽑아냈다. 붉은 피와 회백색 액체가 묻은 철근 조각을 보자니, 예선은 정원이 왜 경고했는지 알 수 있었다. 슬슬 비현실감이 사라지고 구역질이 몰려올 것 같았다. 예선은 잠시 눈을 돌려 수술 도구 가방을 보았다. 미디어에서 본 적 있는 도구보다는 처음 보는 도구가 더 많았는데, 그중에는 긴 금속 관이 달린 드릴 같은 것, 그리고 그 관에 딱 맞는 크기의 총알 같은 것도 빨간색과 파란색 두 종류가 있었다. 아무리 큰 사고를 당한 적이 있는 의사라지만 상비품으로는 과한 규모라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이렇게 될 것도 예상하고 계셨던 거예요? 싸움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셨으니까…….”
정원은 피를 닦아낸 뒤에 검사기로 다시 한번 머리를 촬영하며 대답했다.
“이번 일의 시나리오는 둘이었습니다. 제약 없는 곳에서 양 팀장이 모든 걸 털어놓고 예선 씨가 용서하는 것. 또는 양 팀장이 폭력을 휘두르는 것. 전자라면 예선 씨의 몫이지만 후자라면 제가 해결하게 될 확률이 높았죠. 그는 스스로 인정하지 않았지만 저를 연적으로 여기고 있었으니까요. 그렇게 되면 저도 강경한 반격을 할 작정이었으니 최악의 경우도 대비한 겁니다. 설마 이런 식이 될 줄은 몰랐지만요.”
정원은 허리춤에 숨겨두었던 호신용 스프레이를 꺼내어 보여주었다. 양 팀장이 그렇게 비겁한 수를 쓰지 않았다면 금방 제압되었을 것이다.
결국, 양 팀장은 자유 속에서 무엇을 선택할까 하는 기로에 섰고, 폭력으로 우위에 서길 택한 끝에 스스로 지옥에 뛰어든 셈이었다. 자기 감정과 잘못을 인정하거나, 최소한 정원을 해치려 들지 않았더라면 여기서 온전히 걸어나갔을 것이다.
예선은 정원이 미리 말해줬다면 좋았겠다고 생각했으나, 아마 그랬다면 긴장과 두려움으로 굳어서 뭔가 꾸미고 있다는 느낌을 주었을 게 분명했다.
정원은 핀셋으로 두개골 사이의 철 파편을 하나 더 꺼내고는 가방에서 드릴과 총알을 집어들었다. 그리고 파란색 총알을 보여주었다.
“이건 나노봇입니다. 조직을 고속으로 수복하거나 바이패스를 만든 뒤 자가 분해될 겁니다. 하지만 두뇌를 완전히 원상복구할 수는 없어요. 생존과 생활에 큰 지장이 없는 수준까지만 회복될 겁니다.”
“그럼 작은 지장은 어떤 수준인데요?”
“아마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는 사람이 될 확률이 높습니다. 그렇지만 그게 어떤 양상으로 나타날지는 알기 어렵습니다. 사고로 머리가 관통되고도 살아남은 사람 중에서 성격이 아주 괴팍하게 변해버린 케이스는 적지 않습니다. 특히 양 팀장처럼 성격도 욕망도 특이한 사람이라면……. 후유증을 줄여서 저와 비슷한 수준으로 만들려면 당장 이것까지 써야 하죠.”
정원은 빨간 총알을 보여주었다.
“여기엔 제 두뇌에 넣은 것보다 개선된 신형 인공 두뇌와 이식을 위한 나노봇이 함께 들어 있습니다. 한번 이식하면 10년 가량 작동할 겁니다. 그동안은 저처럼 감정적으로 좀 모자란 사람이 되긴 하더라도 최소한 남에게 아무렇게나 위해를 끼치는 사람은 아니게 되겠죠.”
설명을 마친 정원이 예선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둘 다 쓰겠다는 설명이 아니라 선택의 요구라는 걸 바로 알았다. 한 인간의 미래를 자신이 결정해야 한다는 사실에 잠시 숨이 막히는 듯했다. 왜 내가 이렇게 무거운 결정을 해야 하는 걸까? 애초에 그런 결정을 할 권한이 있기나 한 걸까?
하지만 고민은 길지 않았다. 당장 누군가는 결정해야 하고, 그건 여기서 예선 자신이 가장 적합했다.
“인공 두뇌 이식까지 하죠.”
예선은 자신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명확히 알 수 없었다. 양 팀장은 그녀를 갖고 놀았고, 잘못은 물론이고 감정조차 인정하지 않은 인간말종이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목숨을 걸고 죽이려 했으니 굳이 다시 정상적인 인간으로 살려낼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죽게 놔두는 게 부담스럽다면 반쯤만 고쳐서 성격이 아주 이상해지게 만들고, 결과적으로 사회에서 고립되어 파멸하는 꼴을 감상하는 것도 괜찮은 복수가 될 것 같았다.
하지만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손익이나 이치를 따져보기 전에 이미 그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따져본다 해도 타인의 삶이 망가지는 것을 보기 위해 위험성이 어떻게 폭발할지 알 수 없는 사람을 세상에 내놓는 건 미친 짓이 분명했다.
고맙게도 정원은 이번에도 이유를 묻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드릴같은 기구 중간의 뚜껑을 열고 총알을 차례로 장전했다. 그러곤 길다란 관을 양 팀장의 머리에 밀어넣고 방아쇠를 당겼다. 그 모습은 어떻게 봐도 양 팀장을 죽여 없애는 장면으로 보였고, 정말 그러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마 지금이라도 인공두뇌 이식은 하지 말자고 하면 양 팀장의 삶을 산산조각낼 수 있으리라.
예선은 이제 힘으로 타인의 삶을 좌지우지하는 일의 잔혹한 매력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