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껌이라는 소박한 재미의 그리움
껌을 음식이라고 하긴 어폐가 있지만 어쨌든 입에 넣고 맛을 즐기는 물질이니 잠시 이야기하자.
어릴 때는 껌을 제법 즐겼다. 초등학교 때는 껌을 씹는 게 대단히 일반적인 유희였던 탓이다. 사회 자체가 전반적으로 식후는 물론이고 그냥 ‘입이 심심할 때’ 껌을 하나 씹는 걸 당연시하기도 했고, 초등학교 친구들도 네 명 중의 한 명 정도는 반드시 껌을 갖고 있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껌이 보편적이었다. 어느 정도인가 하면 그 유명한 롯데껌처럼 껌을 TV에서 광고하기도 했고, 과자나 아이스크림 따위처럼 신제품이 트렌드를 형성하기도 했다. 슈퍼에서 계산할 때 신제품이 보이면 잔돈으로 한통 사보는 게 거의 당연한 일이었다. 당장은 아니어도 결국 언젠가는 씹기 마련이니 껌을 사는 건 필수품 비축에 가까웠다.
그렇게 형성된 껌 문화 속에서 껌은, 내가 느끼기론 세 종류로 나뉘었다. 일단 위생용. 이것은 후라보노나 롯데껌 트리오 따위로 대표되는 기본적인 껌으로, 주로 입가심과 치아 이물질 제거를 위해 이용되었다. 맛이 청량하고 민트가 들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두 번째가 유희용이다. ‘껌 문화’를 모르는 이는 껌을 질겅이는 게 대체 무슨 유희가 될 수 있나 싶겠지만, 풍선껌으로 대표되는 유희용 껌은 잘 뭉치고 질겨서 짝짝 씹다가 혀끝으로 모아 바람을 불어넣음으로써 풍선 형태로 부풀릴 수가 있었고, 이게 소소한 재미거리가 되었다. 최소한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훨씬 재미있었다. 씹을 때마다 단물이 나오는 것도 모자라서 풍선을 크게 만든다는 도전도 할 수 있었으니까 시간을 죽이는데에는 상당히 유용했다. 어릴 때 아버치 차를 타고 용산 전자상가에 컴퓨터를 손보러 가던 날, 막히는 차 안에서 대략 세 시간에 걸쳐 껌을 씹다 자다 다시 깨서 껌을 씹어 한 통을 다 먹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땐 정말이지 핸드폰도 게임기도 책도 없이 수행중인 석가모니만큼이나 깨끗한 빈손이었기에 차 안에서 자거나 껌을 씹는 것만이 시간을 보내는 방법이었던 것이다.
그나저나 이때는 껌을 씹어 풍선을 부는 게 어째선지 저항적인 패션성을 띠게 되었는데, 이유가 뭘까? 거리에서 친구를 기다릴 때 달리 할 짓이 없어서 껌을 씹고 풍선을 부는 모습이 불량해보였기 때문이거나, 불량해보이는 애들이 껌을 씹고 풍선을 부는 경우가 자주 목격되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입안에 있던 물질을 입밖에 꺼내어 풍선 모양을 만들었다 다시 입안으로 수거하는 행위가 어른 앞에선 할 수 없는 드러운 짓이라 저항성의 상징이 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실제 초등학교의 세계에서 풍선껌을 씹는 게 불량함이나 저항성을 띠는 것 같진 않았다. 풍선껌을 씹는 친구는 보통 달라면 하나쯤 주기 마련이라 그냥 친근하고 인심 좋은 친구일 뿐이었다. 다른 것은 몰라도 껌 정도는 나도 갖고 다니다 친구들을 줄 수 있었기에 풍선껌은 군것질을 죄악시하던 나도 후한 사람으로 만들어줬다. 특히 껌 문화가 고도화되어 등장한 신제품 중에는 케이스를 열면 작고 가느다란 껌이 가로로 늘어서있어서 담배 권하고 받듯이 내밀고 껌 하나를 뽑아갈 수 있게 만든 것도 있었는데, 껌 하나가 작은 대신에 갯수가 많아서 나도 즐겨 먹고 남에게도 자주 나눠줬다. 작은 과일맛 알갱이가 박혀 있어서 씹어먹는 맛도 각별하고 좋았는데……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무슨껌을 나눠먹었다. 참 즐거웠다’라는 일기라도 써뒀으면 좋았으련만, 하여간 당연히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은 기억조차 못하는 법이다.
(써놓고 보니 ‘아이디 피스 비’라는 껌이 이 타입이었던 것 같다)
(껌이란 요즘으로 따지면 입안의 피젯 토이였다 image by airtank)
어릴 때는 사실 껌의 용도와 주요 소비층이 다르다는 걸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날 어머니가 부업 일터에서 식사 후에 씹게 껌을 사오라고 심부름을 시켰을 때, 내 기준으로 아주 달고 맛난 풍선껌을 사갔다가 입가심으로 이런 껌을 씹겠냐고 핀잔을 들은 적이 있다. 그 일을 계기로 껌을 구분해서 소비하게 되었는데,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내게 맛있다고 남에게도 맛있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점이다. 입맛의 다양성을 음식이 아닌 껌으로 배웠다는 건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껌의 종류 중 세 번째는 수집형 껌이다. 껌에 수집상품이 들어있어서 수집욕을 자극하는 껌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 것들 중 가장 인기가 많았던 껌은 단연코 ‘덴버’였다. 공룡 만화영화 이미지로 만든 판박이 스티커가 들어 있어서 이걸 여기저기 붙이며 노는 애들이 천지에 넘쳤다. 나는 혼나는게 무서워서인지 판박이를 붙이고 노는 일 자체에서 흥미를 일찌감치 잃어버렸지만, 그때 곳곳에서 발견되는 판박이의 부착량은 요즘같으면 사회문제라고 뉴스에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지경이었다.
판박이보다 내가 좋아했던 건 책이 들어있는 껌이었다. 상품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어느 천재적인 사람이 ‘껌 포장지 안에 책을 만들어 넣어보자’고 생각했고, 실제로 그런 게 만들어져 유통되었던 것이다. 껌 사이즈 그대로 가로로 길쭉한 그 책은 지극히 단순한 내용의 만화가 많았고, 더러는 텍스트로 된 것도 있었다.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아무튼 그런 게 있어서 학교에서 시도때도 없이 호로록 읽으며 놀았다. 껌을 샀는데 읽을 게 따라온다니, 손 안의 기기에 볼거리가 무한히 존재하는 요즘 기준으론 황당한 일이지만, 굿즈 개념으로 돌아와도 좋지 않을까?
그런데 이렇게 다양한 방식으로 꽃피웠던 껌 문화는 중학교로 올라가자마자 시들해지고 말았다. 어쩐지 그리 재미있는 일이 아니게 된 것이다. 자일리톨의 등장으로 위생용껌은 확고한 영역을 구축하는데에 성공했지만 유희용 껌은 명맥만 거의 유지하게 되었다. 수집형 껌은 아예 오래도록 본 적조차 없다.
이러한 껌 문화의 몰락에 대해 사람들은 마트에서 현금을 잘 쓰지 않게 되어 잔돈을 쓸 이유가 없게 되었다고도 하고, 핸드폰 보급 탓에 심심풀이로 껌 씹을 이유가 없게 되었다고도 한다. 전부 일리있는 말인데, 나는 후자가 더 그럴듯하게 느껴진다. 도파민 분비 촉진이 껌 소비의 원동력이었다면 눈곱만큼도 지루할 틈이 없는 요즘 시대에 그처럼 하찮은 도파민은 아무 감흥을 주지 못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말이다. 게다가 껌이란 결국 뱉어서 버려야 한다는 문제가 따르기 마련인데, 아무도 그런 대가를 치루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러나 누구나 껌이 가방에 하나쯤 있던 시대를 돌이켜보면 껌이라는 게 상당한 재미거리 아니었나 싶다. 껌을 씹는 행위는 대단치 않은 오락이지만, 이 껌 저 껌 바꿔가며 사보기도 하고 ‘좋은 사람을 만나면 나눠주기도 하는’ 일이 생활에 제법 괜찮은 색채를 더해주었다. 슬쩍 권하기도 좋고, 받기도 부담스럽지 않으며, 거절당한다고 마음이 상하지도 않는다. 아마 인류사에 이렇게 가볍게 주고받을 수 있는 호의가 별로 없지 않았을까?
껌 문화가 떠나가고도 오랜 세월이 지난 요즘 나는 껌 대신 작은 무설탕 박하사탕을 갖고 다닌다. 베풀고 싶은 마음을 주체하지 못해서는 아니고 단순히 입냄새도 조심하고 흡연욕구도 다스리기 위해선데, 상비하고 다니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하나씩 주다 보니 은근히 생색내는 재미가 있다. 비슷한 사탕을 갖고 다니는 사람을 만나서 교환하자면 호감이 가기도 하고 껌 부흥기의 추억도 살아난다.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라는 말처럼,사소하지만 도움이 되는 이 작은 음식의 일종들을 여전히 애호하지 않을 수가 없다.
*추신
제10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에서 특별상을 받고 2023년 2차 아르코 문학나눔 도서보급사업에 선정된 저의 "아끼는 날들의 기쁨과 슬픔"이 지금도 절찬리에 판매중입니다. 낡고 고장난 물건을 고치거나 버려진 것들을 수선하고 중고 거래를 지속하며 느낀 소비 생활의 고민과 의미에 대한 수필집입니다. 지속적으로 물건을 사고 버리는 일에 피로감을 느끼거나 사소한 소비에도 회의감을 느낀 경험이 있는 분들이라면 공감할 부분이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구매해주시면 저의 생계와 창작에 큰 도움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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