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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건해 Feb 07. 2018

스마트폰이 멈추지 않아!

'핸드폰은 잠시 꺼두셔도 좋습니다’라는 광고 카피가 있었다. 한석규가 따뜻하고 멋진 목소리로 말해서 아주 여운이 깊은 카피였다. 핸드폰이나 일 같은 것은 다 잊어버리고 잠시 일상 속의 휴식을 즐겨보라는 의미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다만 이것이 통신사의 광고였다는 점이 이상한 부분이었다. 타이어 회사에서 ‘가끔은 걸어보셔도 좋습니다’하고 광고하는 것과 똑같지 않은가? 그 미스매치가 오히려 업계 1위 통신사의 여유를 보여준 것일까?


아무튼 확실히 강렬한 카피였고, 요즘에도 통할 만한 문구다. 스마트폰으로 정말 뭐든 할 수 있게 된 요즘은 전보다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더 길어지고 말았다. 그냥 길어지기만 한 것이 아니라 빈도도 대단히 높아져서, 뭘 하다 잠깐 막히기만 하면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트위터나 유튜브, 기타 등등 커뮤니티 따위를 뒤적이기 일쑤다. 덕분에 여차하면 3분에서 5분 이상을 까먹고 있다. 그리고 다시 원래 해야 하는 일로 돌아와서 또 몇 분간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따라잡아야 한다. 여기에 한술 더 떠서 '아, 역시 이대로는 안 되겠어'하고 담배를 피우러 갔다 오기도 한다. 학생 때 ‘딱 10시까지만 놀고 공부해야지’ 했다가 10시 5분까지 노는 바람에 ‘이렇게 된 거 15분까지만’ 하는 식으로 시간을 진창에 버렸던 것을 생각해 보면 몇 년이 지나도 별로 나아진 게 없는 것 같다. 더 큰 돈을 들여 기술적으로 진보적인 딴짓을 하고 있을 따름이다.


잠깐 알림만 확인한다는 게 그만.....



비효율도 이만한 비효율이 없다. 그래서 며칠 전에는 작정하고 노트를 펼친 다음 펜으로 작업을 해봤다. 손을 놀려서 직접 뭔가를 쓴다는 행위가 더 강하게 집중할 수 있게끔 해줄 지도 모른다고 예상한 것이다. 놀랍게도 그 예상은 적중했다. 생각을 하다 말고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빈도가 놀라울 정도로 줄어든 것이다. 노트에다 정체 불명의 나선 따위를 그릴 때가 있긴 했지만, 적어도 스마트폰을 보는 것보다는 나았다. 사각사각 종이를 스치는 펜의 감촉, 그리고 글자를 하나하나 새겨 나가는 실감이 정신을 아주 강하게 이끌어 갔다. 손으로 글씨를 쓴다는 것이 이렇게 즐거운 일이었구나, 새삼 생각했다. 


이것이 바로 아날로그의 힘이다. 그러니 우리 모두 가끔은 장문을 손으로 써 보는 것이 어떨까? 하고 여기서 결론을 내릴 수 있다면 참으로 편하겠지만, 안타깝게도 이 감성적인 시도는 하루만 하고 집어치웠다. 다 좋은데 너무 느렸던 것이다! 키보드를 두드리는 것을 조깅이라고 치면 손글씨는 거의 삼보일배에 가까웠다. 퍽 의미있고 근사한 일이긴 하지만 이건 정말 마음을 담을 필요가 있을 때나 곱씹을 만한 일이었다. 어차피 나 혼자 볼 작업물을 작성하는데 무슨 마음을 담겠는가? 결국 아날로그의 즐거움을 포기하고 다음날부터 빠르고 편한 타이핑으로 되돌아갔고, 여차하면 스마트폰 보는 습관도 되살났다. 어쩌면 이건 고칠 수 없는 습관일지도 모른다.


일 할 때도 이 모양이지만 잘 때도 상황이 그리 낫진 않다. 잘 때는 당연히 스마트폰을 충전해야 한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충전기가 딱 알맞게 머리맡에 있고, 나는 당연하다는 듯 자리에 누워서 충전중인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다 늦게 자게 된다. 게다가 자다 새벽에 깨어나서 스마트폰으로 아무 쓸데 없는 정보를 뒤적이는 것이 언제부턴가 습관이 되어 수면 사이클이 점점 박살나고 있다. 


작업중에 딴짓을 하는 것 정도는 ‘어휴, 나도 참 못 말려!’ 하고 웃어넘길 수 있지만 수면 부족은 피해가 훨씬 끔찍하다. 하루 종일 피곤하고, 글자가 눈에 안 들어오고, 괜찮은 아이디어도 잘 떠오르지 않는다. 그러다 결국은 졸고 일어나 잠을 깬다고 찬바람 부는 바깥으로 나가서 덜덜 떨면서 담배를 피우고 들어오는 것이다. 농담이 아니라 이것은 정말 일상을 파괴하는 행위다. 


그래서 얼마 전부터 잘 때는 스마트폰을 책상에 놓고 자기로 했다. 스마트폰을 잠자리로 끌어들이지 않고 정말 고독한 잠을 청하기로 한 것이다. 대단히 허전하긴 했지만, 이건 제법 효과가 있는 것처럼 보였다. 어쩌면 완벽한 해결이었을지도 모른다. 내게 잘 때 화이트노이즈를 듣는 습관이 없었다면. 나는 오래도록 앱으로 화이트노이즈를 틀고 자는 바람에 이것을 듣지 않으면 잘 시간이라는 실감이 나지 않게 되어 있었다. 결국 아이폰을 책상 위에 놓고, 대신에 같은 앱이 깔린 아이패드를 들고 왔다. 그리고 당연히, 아이폰으로 할 수 있는 짓은 아이패드로 더 시원스럽고 멋지게 효율적으로 마법처럼 더 잘 할 수 있다. 그리하여 자다 깨서 놀다 자는 버릇은 고치지 못했고, 나는 처참한 실패를 인정한 뒤,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다 머리맡에 놓고 자게 되었다.


대신에 다른 방향으로 접근하기 시작했다. Sleep Better라는 앱으로 수면 시간을 측정하기 시작한 것이다. 자겠다고 실행하고 스마트폰을 머리맡에 놓으면 진동을 감지해서 숙면도를 분석해주는 앱이다. 이 앱의 멋진 점은 자신이 어느 정도 깊이 잤는지 수치로 알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다. 사람이란 뜻밖에도 자신이 얼마나 피곤한지 금방 눈치채지 못하는 법이라 더 잤어야 했다는 사실을 수치로 확인하면 오늘은 꼭 일찍 자야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행동할 수 있다. 잠 은행에서 잠을 얼마나 대출했는지 기록해주는 가계부라고 할 수 있다. 잠 하나를 제대로 못 자서 얼마나 잤는지를 일상적으로 기록하는 날이 오다니, 어릴 때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지만...... 


아무튼 썩 훌륭한 앱이라 추천할 만하다. 다만 이 역시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주진 못했다. 진동을 잘 측정하기 위해 머리맡에 놓아야만 하고, 게다가 앱 실행 중에 딴짓을 한다고 기록이 중단되지도 않으니, 이건 마치 도둑놈 손이 닿는 곳에 금덩이를 놓는 것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심지어 이제는 

근무 시간에 딴짓을 하는 것처럼 재미난 기분으로 놀게 되었다. 원래 해야 할 일을 미뤄두고 하는 딴짓은 어째서 그렇게 즐거울까? 


첨단 디지털화의 문제점이란 바로 이런 것들이다. 편리할 뿐더러 현실 생활보다 재미있는 것들이 가득해서  잘 때조차 떼어놓기가 너무나 어렵다. 이게 몸에 배면 명백히 아날로그가 더 간편하고 깔끔할 순간에도 기기에 집착하게 된다.


최근에는 이런 일도 일어났다. 아이폰으로 운동 앱을 켜놓고 아이패드로 애니나 드라마를 틀어놓고 보면서 운동을 하곤 하는데, 운동을 할 때마다 뭘 볼지 결정을 못해서 한참을 헤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진지하게 앉아서 봐야 할 작품은 아까워서 보지 못하고, 그렇다고 아주 재미없는 작품은 재미가 없어서 또 싫다. 그래서 한 20분 내내 뭘 볼지 고민하고 앉아있는 것이다. 그 시간에 그냥 운동을 했으면 벌써 끝났을 게 아닌가? 요즘은 ‘이미 봤던 작품’을 보는 걸로 확정해서 그런 멍청한 고민은 하지 않게 되었지만, 요따위 기기들이 없다면 훨씬 심플하고 매끄러워질 부분이 분명 있구나 생각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스마트폰으로 실현된 디지털 라이프가 내 인생을 풍요롭게 만들어주고 있는 게 맞는 걸까? 답은 ‘대체로 풍요롭게 해주지만 그렇지 않은 부분도 존재한다’ 일 것이다. 그러니 도움이 되는 부분과 되지 않는 부분을 딱 잘라서 나누면 좋겠는데, 이미 이것들은 두뇌의 일부처럼 작동하고 있어서 ‘난 이 시간부터 이 시간까지는 절대 스마트 기기 안 써’ 하고 깔끔히 분리할 수 없게 되었다. ‘앞으로 한 시간 반 동안 전두엽은 쓰지 말아야지’ 할 수 없는 것처럼. 아마 이걸 완전히 컨트롤 할 수 있게 된다면 스마트한 디지털 생활에 완전히 적응했다고도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그건 그렇고 오늘은 잘 때 스마트폰을 침대에 놓되 주머니 같은 것에 처넣을까 생각중이다. 마음 같아선 나 자신을 주머니에 처넣고 재우고 싶지만, 침낭이 없으니 어쩔 수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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