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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련 Mar 20. 2023

시간을 건너 전하고 싶은 마음

영화 <애프터썬>을 보고

지금까지의 모든 기억을 가지고 다시 태어난다면? 회귀물이 대세다. 수지가 “이번 생엔 내가 왕비야”를 외치고 송중기가 재벌집 막내아들로 다시 태어난다. 웹소설이나 웹툰에서 유독 사랑받아온 설정이 점차 전방위 콘텐츠로 넘어오고 있다. 더 이상 그 세계의 규칙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하지 않아도, ‘회귀’라는 단어 하나면 이해되는 장르가 되었다.


회귀라는 설정은 분명 인간의 세속적 욕망을 자극한다. 가진 돈 다 끌어 모아 개발 전 강남 땅을 사야지, 비트코인을 사야지, 애플 주식을 사야지, 과거 한 때 저평가되던 것의 미래 가치를 알고 있다는 사실은 그 어떤 지식보다 큰 힘이 될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사람들이 진심으로 회귀를 바라게 만드는 순간은 그런 욕망 보다도 어쩌면 감정적인 미련일지도 모른다. 하지 못한 복수를 위해서든, 그때 미처 하지 못한 말을 하기 위해서든, 지금 알고 있는 그 이야기의 결말을 그때 먼저 알았더라면, 많은 것이 다를 수 있었겠다는 마음.


며칠 전 영화 <애프터썬>을 극장에서 재관람했다. 같은 영화를 영화관에서 두 번이나 본 적이 있었던가? 나중에 ott에 올라오면 한 번 더 봐야겠다는 생각을 할 순 있지만 다시 극장에 가야겠다는 마음이 드는 영화는 흔치 않다. 유독 영화가 다 소화되지 않았다는 기분이 들었다. 영화관에 앉아서 영화의 러닝타임을 온전히 한 호흡으로 다시 봐야 할 것 같다는 강한 열망이 들었다.


영화의 플롯은 단순하다. 어린 소피가 아빠와 튀르키예 여행을 한다. 그러나 중간중간 짧게 나오는 다른 질감의 장면들은 많은 것을 암시한다. 아마도 그 여행은 아빠 캘럼과의 마지막 여행인 듯하다. 그때 찍은 영상들의 파편을 돌려 보며 성인이 된 소피는 그때의 아빠를 기억하고 또 기억한다. 그리고 알 수 없는 공간 속에서 성인이 된 소피는 그 시절의 아빠를 세게 안아준다.


보통 영화는 아무 정보 없이 봐야 한다는 강경한 반 스포일러 파의 입장을 취하고 있지만, <애프터썬>은 예외였다. 영화를 주위에 추천하고 다니며 이 이야기를 함께 했다. 뭔가 큰 사건이나 반전이 나오길 기대하지 말고, 그 순간에 집중하라는. 처음 관람할 때의 나는 계속해서 뒤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건가 긴장하며 보느라, 화면 속 인물의 감정을 충분히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두 번 보니, 소피와 비슷한 체험을 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 여름 튀르키예를 한 번 같이 겪고, 나중에 전체 맥락 속에서 그 여행을 다시 봤다. 캘럼이 그때 어떤 마음이었는지, 그럼에도 소피에게 어떤 기억을 주고 싶어 했는지… 다시 보니 캘럼의 쓸쓸한 표정 같은 게 유독 눈에 밟히고, 계속해서 그 시절을 돌아보고 그 시절의 아빠를 다시 만나고 싶어 하는 소피의 간절한 마음이 닿는다. 무엇보다 서로에게 시차를 가지고 전해진 사랑이 보인다.


회귀에의 열망은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으로 완성된다. 성인이 된 소피가 계속해서 과거의 기억들을 돌아보며 카메라 뒤 아빠의 표정 같은 걸 강하게 그리워하지만, 소피도 우리도 지금 이 기억을 가지고 과거 어느 시절로 돌아갈 수는 없다.


아무리 애써도 시간을 돌릴 수 없고, 지금을 다시 살 수 없다면, 드라마 같은 엔딩이 없다는 사실을 슬퍼했던  지난 글과 비슷한 결론을 내게 된다. 지금 이 순간이 전체 인생의 어느 지점에 있는지는 영영 알 수 없다. 스치듯 지나가버린 사람들과 기회들, 어떤 결과를 낳을지 모를 작은 선택들 모두 어쩔 수 없다. 그렇다면 혼란과 오해와 겉핥기 같은 인생을 받아들이고 사는 수밖에 없는 지도 모른다. 결국 모두 서로의 현재는 알 수 없고, 누구에게나 지금은 늘 낯설다는 그 공평함 하나로. 그럼에도 오가는 마음의 시차를 줄이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치열하게 고민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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