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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련 Oct 23. 2023

'보고 싶어요' 말고 정말로 보고 싶다!

동료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맛집 이야기가 나온다. 최상급의 표현과 함께 한 식당을 추천받는다. 나는 바로 휴대폰을 들고 네이버 지도 어플에 들어간다. 해당 식당을 검색하고 '가보고 싶어' 리스트에 저장한다. 그 식당은 이제 지도 속 여느 식당들과 다르다. 그 위치에 분홍색 별이 생겼다.


친구에게 영화를 추천받는다. 올해 본 영화 중 가장 좋았다거나, 내가 좋아할 것 같다는 이야기와 함께다. 곧장 왓챠피디아 어플에 들어가서 그 영화를 검색하곤 '보고 싶어요'를 누른다. 그 영화는 내 '보고 싶어요' 리스트에 들어온다. 이제 영화 제목과 함께 책갈피 아이콘이 뜬다.


며칠 전에 동료가 마음이 힘들 때면 간다는 풍광 좋은 절을 추천받고 늘 그렇듯 지도에 들어갔다가 문득 전국 팔도를 빼곡히 채우고 있는 분홍색 별이 새삼스레 눈에 띄었다. 리스트를 보니 가보고 싶은 장소가 어느덧 314곳이나 된다. 생각난 김에 보고 싶은 영화 리스트에도 들어가 본다. 무려 553편의 영화가 저장되어 있다.


이상하게 그렇게 저장을 하고 나면, 진짜 간 것도 아니고 진짜 본 것도 아닌데 괜히 언젠가 갈 거라는 생각에 마음이 편해지곤 했다. 휴가 때나 시간이 날 때 혹은 마침 근처에 있을 때면 실제로 '가보고 싶어' 리스트를 참고한다. 마찬가지로 뭔가 영화를 한 편 보고 싶은데 딱히 생각나는 작품이 없을 때면 '보고 싶어요' 리스트를 들추어 봤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그런 일은 사실 일 년에 몇 차례 되지 않았다.


그러니까 어쩌면 평생, 내가 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속도는 늘 진짜 뭔가를 할 수 있는 속도보다 빠를 것이다. 시간은 유한하고, 아무래도 하고 싶다는 마음만을 갖는 건 언제나 훨씬 쉬우니까. 그건 당연한 거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앞으로를 생각하면 괜히 마음이 급해진다. 세상에는 아직 내가 가지 못한 곳이, 먹지 못한 것이, 보지 못한 게 너무나 많다고!


아마도 영영 그 리스트들을 다 지울 수는 없을 테지만, 그래도 아직은 텍스트로만 존재하는 장소가 맛과 향과 공기를 품고 좋은 기억을 주는 곳이 되기를, 그 영화들이 내게 정말로 멋진 세계를 보여주기를, 무엇보다 내가 그걸 따라잡을 여유가 조금은 더 생기기를, 바쁜 한 주의 끝에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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