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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련 Dec 24. 2023

<나의 첫 심부름> 속 수상한 어른들

수상하고 따뜻한

'밥친구'는 필요한데 드라마도 영화도 예능도 유튜브도 보고 싶지 않은 날이 있다. 그럴 때면 넷플릭스 <나의 첫 심부름>을 본다. <나의 첫 심부름>은 생애 첫 심부름을 나선 어린이들의 여정을 보여주는 오래 된 일본 예능으로, 크게 감정 소모할 일 없고 러닝타임이 십여분이라 밥 먹으며 보기 딱 좋다. (물론 감정 소모가 필요 없다고 말한 것 치고는 거의 매 회차 눈물을 또륵 흘리곤 하는데, 그건 대부분 감동이나 기쁨의 눈물이니 문제 없다.)


이 예능에서 내가 특히나 좋아하는 점은, 리얼리티이지만 제작진의 개입이 가득하다는 점이다. 아이가 생애 첫 심부름이라는 미션을 성공할 것인 아닌가는 애초에 이들의 관심 대상이 아니다. 아이는 어떻게든 성공해야만 한다. 생애 첫 심부름은 좋은 기억이 되어야 한다.  아이가 헤매고 있으면 웬 수상한 어른이 어색하게 등장해 기꺼이 길잡이가 되어준다.


최근에 나를 눈물짓게 한 건 자동차 헤드라이트였다. 아이의 심부름이 예상했던 시간보다 길어졌다. 창고에 들어가 양배추를 가져오면 되는 거였는데 아이는 그 옆 밭에서 제 몸통만한 양배추를 따느라 한 시간을 보냈다. 아이는 어쨌거나 양배추를 손에 넣었으나, 집에 돌아오는 길에 해가 져버렸다. 큰 길에서 집까지 가려면 가로등 하나 없는 어두운 길을 지나야 한다. 무서울법한데 아이는 씩씩한 표정으로 한 손에 양배추를 한 손에 가방을 들고 걷는다. 그 때 아주 어색하게도 길 뒤에 뜬금 없이 자동차 한 대가 서고 헤드라이트 불빛이 켜진다. 자동차 불빛이 아이가 집까지 가는 길을 환하게 밝혀준다. 무척이나 수상하지만 그것이 너를 위해 준비한 불빛이라는 건 아이만 모르면 됐다. (*시즌1 에피소드3)


심부름을 무사히 마친 아이들은 모든 걸 혼자 해낸 줄 알고 들뜬 얼굴로 엄마 아빠에게 자랑을 늘어놓지만, 길을 떠난 아이가 다시 집으로 돌아오기까지의 걸음 걸음에는 제작진들과 마을 주민의 관심과 배려가 스며있다는 걸 우리는 안다.


잘 준비된 휴머니즘, 사랑만 듬뿍 넣은 <트루먼 쇼>다. 이런 식의 개연성 없음은 언제든 환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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