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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ㄱㅣㅇㅓㄱ Apr 22. 2018

4, 월은 잔인한 달

[07_수필]

작년 10월 안산에서는 <나는 안산에 산다> 라는 슬로건으로 안산 마을 박람회를 했다. 이날 행사에서는 ‘세월호 이후의 공동체’에 대한 주제도 있어서 세월호 유가족 분들도 많이 참여를 했다. 유가족들은 야외부스에서 기억물품 만들기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나도 이날 그 프로그램에 참여해 기억인형을 만들고 있었다. 인형을 만들다 갑자기 어디선가 날카로운 말이 들렸다.
 
“지겹다. 그만하고 지옥에나 가버려”
 
나는 순식간에 날아온 말을 듣고 놀라 표정이 굳어졌다. 분명 질량이 없는 말인데도 나는 그 말을 듣고 그대로 땅바닥으로 가라앉는 것 같았다. 그 이후에 몇 번의 고성이 들렸지만 가라앉은 이후 모든 소리가 뭉개져서 들렸다. 정신을 차리고 주변의 유가족들을 살폈다. 국가의 방기로 사랑하는 아이를 바다에 묻어버린 희생자 부모들의 표정은 오히려 담담했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말들을 맞아왔던 것일까.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지 4년이 지났다. 그동안 정권도 바뀌었다. 유족과 시민들이 함께 힘을 모아 여러 의미 있는 작업들을 했다.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2기가 출범했고, 전국에 세월호 기억공간이 생겼다. 안산시는 단원고 학생들이 어린 시절 소풍 장소로 자주 오던 안산 화랑유원지를 추모공원으로 만들기로 약속했다. 많은 이들의 노력과 결과에도 불구하고 다른 한쪽에선 ‘지겹다’, ‘그만해라’라는 말을 던지는 사람들이 있다.
 
제주에서 열린 세월호 4주기 추모행사 때도 안타까운 일이 있었다. 제주에 살고 있는 세월호 생존자가 무대로 나와 발언을 하고 있었는데 객석에 앉아 있던 어떤 시민이 “생존자는 얘기 그만하라”고 소리 지른 것이다. 옆에 있던 다른 시민들이 제지하고 날카로운 말에 노출된 생존자를 위로했지만 그는 결국 울면서 추모행사장을 떠났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에 탔던 사람들 중 304명이 죽었고 172명이 살았다. 죽은 이들의 직계 가족 수는 304명의 몇 배 이상이고, 이들과 추억을 공유했던 친구들과 지인들은 훨씬 많다. 세월호 참사에서 살아남은 172명의 사람들은 그 끔찍한 기억과 여전히 싸우고 있다. 죽은 자의 가족, 친구들, 그리고 살아남은 사람들. 이들은 공통적으로 국가가 놓아버린 여전히 믿을 수 없는 죽음을 끌어안고 있다.
 
버림받은 생(生)을 위해 투사가 될 수밖에 없는 이들이 생겼다. 억울한 죽음을 기억해달라고, 진실을 밝혀 달라고. 그래서 다음에 이런 참사가 또 발생하지 않게 해 달라는 상식적인 요구를 하기 위해 충분히 애도할 시간도 갖지 못한 채 존재의 대부분을 쏟아 붓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책임자는 처벌받지 않았고 진상규명은 되지 않았다. 그리고 ‘지겹다’, ‘그만해라’ 라는 뾰족한 말들을 저항할 틈도 없이 온몸으로 맞고 있다. 잔인한 말과 말들로 굳은살이 생겼을 시간들. 그 말들의 첫 시작이었던 4년 전 4월. 더 이상 생채기가 생기지 않고 새 살이 돋아나기 전까지 4월은 상처의 명분을 제공한 잔인한 달이다.
 
글쓴이- 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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