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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 여름밤 아카시아 Feb 28. 2022

동물과 친구가 되어준다는 것은

콩이의 첫인상은 슬픈 눈을 가진 아이였다. 그냥 보고 있어도 막 슬퍼지는 그런 길고양이 었다.

빌라에서는 길고양이 퇴치 운동이 한창이었다. 그리고 나는 부모와 형제를 잃은 이 아깽이를 그 난 속에서 데리고 와 키우게 되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고양이가 잘 달라붙는 상 이었다. 뭐 그런 기운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주위에 있다. 개가 유독 잘 따르는 사람이 있고 고양이가 유독 잘 따르는 사람이 있고  나는 그중에서 후자였다.


어렸을 적 외할머니댁에 갔을 때 보행기를 태운 나를 보고 새끼 고양이들이 한꺼번에 몰려왔어도 내가 무서워하지 않았다고 한다. 신기한 듯 까르르 웃으면서 고양이에 대한 두려움이 처음부터 내게는 없었다고 했다.  


빌라에 살 때는 길고양이들과 늘 친구가 되었는데 그중 유독 잘 따르는 삼색 고양이가 있었다. 평소처럼 동네 공원 정자에서 만난 고양이에게 먹이를 주고 함께 동네 산책을 가던 중에 고양이가 어떤 결심이 섰는지 갑자기 빠른 걸음으로 앞장서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우리 집 근처 빌라 문 앞에 멈추고는 빙글빙글 돌며 꼬리를 들었다. 그리고는 나를 한참 보는 듯하더니 지하로 훌쩍 뛰어내려 가 버렸다. 저 신호는 어떤 것이지 하며 고양이의 마음을 헤아리면서 따라가 보았다. 그러자 지하에 내려간 고양이가 골똘히 무엇인가를 올려다 보고 있었다. 위에는 박스 하나가 놓여 있었다. 이윽고 고양이는 훌쩍 뛰어올라 박스 안으로 들어갔다. 박스 속에는 얼마 전 낳은 새끼들이 있었다. 


며칠 뒤 내가 그곳에 갔을 때에는 새끼들이 모두 사라진 뒤였다. 그 새 사람 손을 탄 걸까... 하고 낭패감으로 고양이를 찾아 나섰는데 동네 골목에서 마주친 고양이는 내 예상과는 다르게  전혀 슬퍼 보이지가 않았다. 고양이는 나의 걱정을 알아챘는지 또다시 나를 데리고 모르는 골목들  사이 빌라 지하로 데리고 갔다. 역시나 지하에는 아무도 사용하지 않은 빈 박스가 있었고 그 박스에 고양이가 들어가자 새끼들이 일제히 우는 소리가 들렸다. 박스 속으로 손을 집어넣어 보니 새끼들의 온기가  따스했다. 며칠 사이 새끼들을 이주하고 그 비밀을 내게 알려준 것 같아 왠지 고마웠다. 고양이와 친구가 될 수 있다는 느낌이 뭔지 나는 그때에 알았다.


이사를 하게 되면서 그 고양이와 영영 헤어지게 되었다. 생각보다 그동안 그 고양이라는 존재가 내 삶에 주는 영향력이 컸었는지 한동안 고양이를 잊기 힘들어질 때쯤  콩이가 나타났다. 

콩이는 커가면서 나의 성격을 그대로 흡수해버렸다. 길냥이처럼 함께 산책을 가기도 하는데 애교가 전혀 없어 옆에 있는 사람이 고양이에게 애교를 부려야 한다. 콩이와 나의 시간은 벌써 오년 차에 들어섰지만, 있는 듯 없는 듯 서로에게 꼭 필요한 존재가 되었다. 가끔 사냥 욕구가 생기는지 날아가는 새를 잡거나 새끼 쥐를 잡고 때로는 텃밭에서 시키지도 않는 보초를 서는데 그곳이 뱀이 출현하는 곳이라서다. 비록 고양이가 아니라 소 같지만 위기에 강하며 사명감만은 확실하다. 무엇보다 내가 평소에 싫어하는 사람과 말을 나누는 상황이 생기면 갑자기 나타나 잔소리를 해준다. 너무 시끄러워 대화를 중단할 정도이니 콩이는 누구보다 나를 잘 알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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