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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 여름밤 아카시아 Apr 20. 2023

마음 한 곳에 있던 나는

                

누군가를 심하게 미워하고 있을 때에는 어딘지 몸이 아프다.

내 안의  최하위의 내가 현실을 이끌어가고 있을 때에는 누군가를 증오하고 용납할 수 없는 실수들을 보며 화해될 수 없는 관계 안에서 계속 나만의 견고하고 뚫을 수 없는 성을 쌓아간다.

마침내 성은 완성되었지만 내가 그곳에 살 수 없는 몸이 된 것처럼 어딘가 아프고 한동안 사라졌던 통증들이 재발한다. 

삶이란 미묘한 아름다움들로 가득한 자취들인데 그곳에 나는 어떤 마음을 용납하기 어려워 어찌하여 나의 몸에 이 가난들을 만들었을까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이 길들여진 관념 속에서 쉽게 빠져나오지는 못한다.

       


엄마와 소품가게에 들러 우연히도 내가 고르던 물건과 엄마가 사고 싶은 물건이 같다는 것을 알았다.

제주도에는 곳곳에 감성소품점이 많은데 자동차정비를 하는 동안 시간이 남아 들른 곳이었다. 

엄마와 내가 함께 본 물건은 여러 가지 모양의 종이었다. 

손가락으로 두드린 풍경소리가 은은하게 공기 중으로 퍼져나갔다. 

종소리를 들으니 눈앞에 고즈넉한 삶이, 편안한 삶을 연상하게 하는 푸른 초원이 연상되었다.

종소리에 퍼지듯, 꾹꾹 눌러온 삶의 이야기들이 나오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곧 엄마는 우리가 어떻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두런두런 이야기하였다.

엄마는 풍경소리를 들으며 한가한 시골생활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나와 같은 꿈을 그리며 살아가고 있는 엄마의 꿈이

낯선 이곳으로  고래가 되어 흘러들었다.      


우리는 푸른색 돌고래가 헤엄치는 듯한 모양의 풍경을 골랐다.

바람이 불어야겠지. 이 아름다운 삶을 비추고 있는 마음을 계속해서 잊지 않고 들으려면 따뜻하면서 시원한 포근함을 지닌 바람이  불어주기도 하면서.... 점점 작은 소망들이 덧붙여지고 있었다.

     

미움을 중화시키는 힘들이 있다. 어지러운 시차 위에 서 있던 내가, 잠에서 깬 삶의 기지개소리에 다시금 결단하는 힘을 갖게 하는 것들은 내가 살아갈 미래의 아주 넓은 공간에서부터  찾아오는 소리없는 꿈들이다. 


마음 한편에 아직, 누군가를 하루종일 끈기 있게 미워했던 마음이, 버려진듯 남아있었다.   

밖으로 나가면  더 사랑해야 할 그리운 것들이 나를 향해 헤엄쳐 올 것이었다. 

이 순간에  나는 나의 삶이 넓어서 단지 미움만을 포옹할 수 없다는 것을 깜빡하였다.


마음 깊은 곳으로 푸른색 고래가 지나간 듯 흰 물결이 눈앞에 일어났다. 

마음안에 떠돈 수많은 발자국 모두 휩쓸려간 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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