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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 여름밤 아카시아 Jun 02. 2022

영원이라는 연락

해변을 걸으면 왠지 영원한 것 사이를 통과하는 기분이 든다.

작은 해변에 수영하는 사람은 늘  없거나 적었고 오늘은 커플로 보이는 일행만이 수영복을 입고 얕은 바다에 몸을 담그고 있었다. 그마저도 남자는 수영복을 입은 여자를 해변 위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해변에 이르러 사진을 찍는 사람들과 물놀이를 하는 사람들 외에 그곳에 오래 남아있는 사람은 늘 없었다. 조금 후에는 또다른  일행이  물속에 뛰어들었다. 바다에 닿은 몸이 내는 감탄, 멀리서 소리를 지르며 하는 말들이 연이어 내 귀에 들려왔다. 그 일상 속에 영원이 있었다.



멀리 푸른 수평선을 바라보고 있으면 세상을 보는데 조금 다른 반사각이 생기는 것 같았다. 사람들의 웃음소리, 이야기 소리, 파도 소리, 멀리 포클레인 소리 같은 것들이 내 귀로 휩쓸려오고 해변 위에 벗어놓은 신발 위엔 한낮의 빛이 한없이 쏟아졌다.

사람이 가진 모든 언어는 영원한 것 둘레를 맴돌다 사라지는 발자국 같다. 맑은 바닷물에 발을 담갔다가 모래 위로 올라와 한참 동안 몸을 데우는 동안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이어야 하고 어제까지 어떤 사람이었는지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그 무책임이 오히려 바다라는 자유로움에 자연스레 귀결되고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무슨 문제가 생기면  해변에 가곤 했다. 마치 푸른 바닷속에 회귀하는 일만이 나에게 남겨진 일처럼 바다 냄새를 맡고 싶은 열망이 몸의 언어가 되어 흥얼거려지곤 했다.  

해변에 가만히 앉아있으면 늘 그렇듯 당장 무엇이 해결되지는 않았지만 멀리 푸른 수평선 너머 영원한 것의 감각을 볼 수 있는 지각이 생겨났다. 그러한 희미한 지각이 생긴다는 것 만으로 내가 가진 눈앞의 모든 문제에 속지 않을 수 있는 결단이 생겼다.



모래 위에 발이 뜨거워지고 파도가 가까이 왔다 멀어지는 자연이라는 일련의  규칙 속에 단단하면서도 안전한 세상의 테두리를 본 것 같은 기분이 영원에 대한 나의 감각이었다. 내게서 아주 멀리 있는 일들과 눈앞에 순간순간 사라져 가는 인간의 언어를 나의 밖에 두고 수십 번의 파도가 들어오는 곳에  마음을 열어두는 일은 나 자신을 너머 흘러가는 듯한 일상과 자연이 겹쳐있는 곳에 서 있던 영원이라는 자리였다.



해변 위에서 어느 날 밤에 휘발되지 못한 꿈을 정성껏 말리고 있었다.

잠 속에 빠져 있는 꿈의 일들이 나의 다른 가능성처럼 바닷물속에서  물고기처럼 튀어올라 잠시 나의 시선을 움직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면 나는 사람들의 언어 밖에서 오랫동안 빛을 머금은 모래를 손안에 채웠다 놓았다 조용한 소리로 만든 감정들을 기도하듯 펼쳐놓고 천천히 돌아왔다.

뒤를 돌아오면 여전히 일상이 담겨 있던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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