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되기 위한 시간의 틈
20대 초반의 나는 해가 들어오지 않은 공장 안에서 하루 종일 방진복을 입고 LCD 모니터를 포장하거나 시력이 저하될 것 같은 불빛아래서 검사를 했다. 모니터 화면 속의 이물질을 검사하는 일은 껌껌한 실내 속에서 이루어졌다. 하지만 그 일은 보수가 꽤 괜찮았고 앉아서 하는 일이라 그 이상의 신체적인 불편은 없었다.
가끔 이러다 LCD 화면을 닦는 알코올 솜에 취하는 건 아닐까 라는 자조적인 생각을 했었다.
껌껌한 새벽에 엘리베이터를 누르는 버튼은 차가웠다. 가족이 잠든 아파트를 그 누구보다 먼저 빠져나와 동탄에 있는 회사 셔틀에 오르는 동안 나는 황무지처럼 늘어진 평야에 시선을 두며 점점 밝아오는 하늘을 기대감 없이 보곤 했다. 내가 그곳에 다니기 시작한 것은 목돈을 벌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회사는 바빴고 하루밖에 안되었던 휴일에는 잠 자기에 바빴다. 다시 평일이 되면 새벽에 나갔고 집으로 돌아올 때에는 다시 황무지 같은 평야를 가로질러 오는 것을 반복했다. 가끔 저녁 무렵이면 까마귀 떼가 이리저리 평야 위에 먹을 것을 찾으러 무리 지어 한꺼번에 날아왔다.
그때의 나는 해가 보고 싶었다. 하루 중 내가 해를 볼 수 있는 시간은 점심시간, 식당으로 가는 길에서 아주 짧은 빛만을 쐴 수가 있었다. 마스크와 방진복을 입고 일하는 실내는 창문이 없이 지어진 특수한 건물이었다. 외부의 먼지를 털기 위해 일터로 들어가기 전에는 하나의 벽처럼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에어룸이 있었다. 밖의 시선이 완전히 차단된 그곳은 젊은 우리에게 하나의 감옥 같은 것이었는지 모른다. 나는 풍경이 보고 싶었고 햇빛이 쐬고 싶었다. 마침내 이 목전의 생활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욕구가 들었다. 문득, 내가 너무 당연한 권리를 스스로 요구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때때로 지속되던 생활이 서글퍼져 왔다.
공장에서 만난 친구가 있었다. 휴일이면 종종 만나 걸을 수 있는 곳이라면 함께 걸었다. 나는 그 친구와 서울에 올라가기로 했다. 그 친구 역시 그 생활이 점점 숨 막히다고 했다. 그때 처음으로 내가 원하는 것에 대해서 집중하며 생각했다. 공장일을 그만두고 서울에 올라갔을 때에 친구와 함께 대학로 근처 고시원에서 살았다. 처음 보는 고시원은 많이 좁았으며 남녀가 같은 층을 쓰고 있었기 때문에 샤워실도 같이 쓰는 곳이었다. 그때는 고시원이 일본 스타일인 걸까 하며 친절한 사장님과 사모님을 보고 지냈지만 아침에 샤워를 끝내고 일인용 샤워실 문을 열고 나갈 때마다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남자애 일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며 서울 고시원 문화에 적응하기 힘들었다. 가끔 새벽에 밥이 없다며 고시원 사장님 앞에서 짐승처럼 화를 내는 직업이 연극 배우였었던 한 남자를 보면서는 서울 사람은 알다가도 모를 도시에 떠다니는 섬 같았다.
내가 살던 고시원은 마로니에 공원과 가까웠고 새로 얻게 된 아르바이트를 했던 곳과도 가까웠다. 나는 출근하기 전 거의 매일 마로니에 공원에 앉아 비둘기 모이를 주는 아주머니를 구경하면서 벤치에 앉아 햇빛을 쐬는 시간을 좋아했다. 친구는 길고 하얀 손을 공중에 들어 폴라로이드 사진으로 구름과 미술관과 나를 찍었다. 나는 나에게 주어진 당연한 것들을 죄책감 없이 누렸다. 당연한 것에 대해서 누군가의 허락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그때 처음 깨달은 듯이 말이다. 잠시 집의 형편을 잊고 나만의 생계만 생각하며 누릴 수 있는 순수한 자유를 통해서 제대로 된 나에 대해 말하고 생각하고 내가 경계 짓던 밖에서 더 넓은 감정을 껴안을 줄 아는 여유를 시도해 나갔다.
나는 오후에 두 시간이고 세 시간이고 마음껏 해를 쐬었다. 한여름에는 근처 낙산 공원에 올라 정자에 누워 눈앞의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것을 보다 잠이 들거나 좀 더 어두워지면 성벽 근처 전망이 잘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작아진 집들 속에 하나둘 켜지는 불빛들을 감상했다. 멀리 내려다 보이는 골목 사이에서 일어나는 각자의 생활과 삶이라는 것은 어떤 것일까 하며 익숙하면서도 낯선 집들을 상상하는 일을 좋아했다. 그 불빛들이 한편으로 떠나온 나의 집을 생각나게 하기도 했다.
어른이라는 것은 그런 게 아니었을까. 모든 자유를 전적으로 허용할 수 있게 하는 감정을 나에게 먼저 만들어주는 일 말이다. 자유라고 불리는 그 감정의 시간들을 누군가의 시선이나 외부의식 속에서 찾지 않고 오롯하게 나에게 귀속된 정체성안에서 허용하게 될 줄 아는 것이 그동안의 나에게 중요한 숙제였다라는 것을 깨달았다. 서울에 지내는 동안 곧 나의 이 긴 방학이 끝나리란 걸 알고 있었지만 그 시간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범위의 모든 질문들을 던지고 돌아온 나는 이곳에 천천히 도착하는 그때의 대답들을 듣고 있는 중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