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당에서 언니 오빠들을 만났다. 주일학교에 다니는 동안 나에게는 한참 어른 같기만 했던 고등학교 언니 오빠들과 성당에서 함께 공부를 하고 미사를 보고 밥을 먹는 공동체 생활을 했다.
엄마가 학교 근처에서 미용실을 했었다. 내가 미용실 딸이라는 사실은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머리가 자주 바뀐다는 것이었다. 한여름이었고 엄마의 심경변화로 나의 머리는 긴 머리에서 커트가 되었다. 그리고 그 머리마저 엄마에게는 덥게 느껴졌는지 곱슬이 추가되었다. 날이 갈수록 어쩐 일인지 파마가 풀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머리가 거대해지는 느낌이었지만 나는 그대로 여름방학 주일학교에 나갔다. 성당 사무실에는 언니 오빠들이 모여있었다. 파마머리를 한 꼬마 아이가 들어서는 것을 보고 언니 오빠들은 갑자기 이 귀엽게 생긴 애는 누구냐며 웅성거렸다.
그 시절 나는 성당에 나가면서 내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용량 이상의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방학이 되면 성당에는 언니 오빠들이 친구의 친구들과 친구의 친척들을 이끌며 놀러 왔고 나는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배추 인형 같다는 소리를 들었다. 배추라는 단어가 고귀하게 들리지는 않았다. 어느 누군가 나를 그렇게 부르기 시작한 것이 나를 못생긴 인형 같다는 해석 같았지만 내가 그들 사이에서 불려지고 있다는 것이 기분이 좋았다.
신은 내게 항상 두 가지를 주신다. 마치 함께 먹어야 효력이 있는 영양제처럼 말이다.
빛과 어둠, 사람들이 나를 향해 애정을 보여주는 것이 신이 나를 향해 증명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수줍고 내성적인 아이의 내면에 익숙지 않던 빛을 서서히 몰고 와 내가 충분히 사랑받을 수 있는 사람임을 증명하는 것, 그때마다 세상에게 보살핌을 받고 있다는 아주 따뜻한 느낌이 내 안에서 간지럽게 일어났다.
어둠은 사랑 뒤에 오는 것이었다. 사람들의 사랑에는 어린 내가 모르고 있던 마음의 한정량이 있었다. 나에 대해 애정을 주던 사람이 다음날에 차가운 태도를 보였다. 그것은 어린아이에게 마음의 상처가 되었지만 언제부턴가 내가 간직하고 있던 상처였다. 누군가 나를 좋아하기 시작하면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사랑의 끝이 다가오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성인이 되어서도 사람의 마음을 쉽게 믿을 수 없었다. 내 안에 새겨진 감정의 인과관계들을 극복하는 일은 어려운 나 자신으로부터의 헤어남이었다. 그럼에도 나를 지켜봐 주는 사람들이 어디선가 나타났다. 나를 사랑해주고 있는 사람들을 통해 신은 나의 내면을 바라보게 했다.
나에게 아주 작은 능력이 있다면 그것은 나에 대해 애정을 주는 사람을 알아보는 일이었다. 처음 겪게 된 사회생활 속에서, 내면의 문제로 곤란한 때에,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을 때 나는 나를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의 보이지 않는 마음에 의지했다. 꼭 실질적인 도움이 아니더라도 그들의 나를 향한 선한 명랑함 들은 세상 안에서 흔들리던 나를 조금씩 부축해 주었다.
지친 몸을 이끌고 터덜터덜 집으로 퇴근하던 날이었다. 아무도 모르게 내 안으로 침잠해 들어가려는 나를 붙잡고 조용히 내면이 울리는 말 한마디를 건네준 사람을 기억한다. 심심한 말이었지만 위로가 아니라서 각별했다. 그녀의 명랑한 말투는 한참 동안 신발을 보고 걷던 나의 무거운 고개를 들게 만들었다. 그녀는 밤하늘의 초승달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나는 저런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에요... "하고 천진난만하게 웃었다. 그 표정을 들여다보고 그 이야기를 듣고 있으려니까 아주 먼 데서 밀려오는 희귀한 감동이 꿈틀거렸다. 신이 있던 곳 내가 세상을 살면서 잠시 잃어버린 모든 인연이 태어난 곳, 그녀가 가리킨 달은 나에게 일상을 살면서 잊힌 모든 기억들을 소환해냈다. 그것은 속세의 일로 서글퍼져 있던 나를 빠져나오게 하는 이 세상 밖의 절경이었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내 옆에서 함께 걷고 있기에 나는 그 낯선 도시 한가운데서 안심할 수 있었다.
어디에서건 내가 있는 낯선 공간 속에서 그들이 이끌어주는 은근한 애정의 말들과 눈빛으로 내가 모르던 신이 남기고 간 것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너무 밝아 이 세상것이 아닌 것만 같았던 그 이름... 명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