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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차콜 Oct 28. 2024

첫 만남

Out of the blue

  불과 몇 년 전, 나는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이었다. 출퇴근길 1호선과 2호선을 신도림역에서 환승하는 지옥철을 타며 사회인으로 살아가던 나날들. 똑같은 풍경, 똑같은 패턴, 똑같은 나날들의 반복. 오랜 취준생활을 마침내 정산하고 직장인이 되었을 때 느꼈던 벅참과 감사함은 너무나도 똑같이 반복되는 삶 속에서 금세 지루함으로  변질될 것만 같았다. 조금이라도 그 속도를 늦추기 위해 반복되는 삶 속 소소한 행복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출근길, 합정역에서 하차하여 계단을 올라가자마자 풍겨오는 오뎅국과 김밥 냄새에 행복해했다. 그 덕에 매일 아침 3-4천 원씩 쓰는 건 기본이었지만 말이다. 점심시간엔 회사 근처의 맛집과 카페를 찾아다니며 친한 동료들과 소소한 추억을 쌓기도 했다. 회사가 합정에 있어서 근처에 예쁜 카페와 디저트집, 맛집이 많아 다행이었다. 퇴근길엔 우리 동네 최고의 디저트집에 꼭 들르곤 했는데, 붕어빵 다섯 마리를 천 원에 살 수 있는 곳이었다. 바람이 차가워지는 날이 시작되면 매 달 최소 만 원씩 이곳에 썼던 것 같다. 집으로 터벅터벅 걸어가는 길에 한 마리를 냠냠 해치우면 얼마나 행복하던지.


 이렇게 무수한 하루가 쌓이다 보니 특이한 능력도 생겼다. 눈에 익은 풍경 속 낯섦이 더 잘 포착되었고, 무질서 속 질서가 있는 요상한 세상을 발견하기도 했다. 마치 숨은 그림 찾기처럼 어제와 달라진 오늘의 풍경이 더 잘 보였다. 바쁜 출퇴근 지하철 속 어지러이 부딪히며 다니는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도 질서가 존재하는 것도 알게 되었다. 점점 그 나름의 규칙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속에서 나도 나만의 질서랄까 패턴을 정립하게 되었다. 어느 칸에 타서 어떤 문으로 내려야 바로 계단으로 향하는지, 지하철 칸에 타자마자 어디에 서 있으면 제일 압박이 덜 한지 등등. 의외로 사람들이 폰을 하고 있을 때 보다 책을 읽고 있을 때 날 치지 않는다는 것도 파악하게 되었다. 그 덕에 출퇴근 길에 책을 참 많이도 읽었더랬다.


  그러나 아무리 익숙한 생활 패턴 속에서 즐거움을 찾으려 해도 익숙함 속 묻어 나오는 지루함은 야속하게도 금세 찾아왔다. 코로나로 인한 재택근무 때문이었다. 집에만 박혀 재택근무를 하던 날들이 점점 길어질수록 소소한 변화를 찾으며 (그나마) 즐거움을 누리던 순간들이 거의 사라져 버렸다. 퇴근길 우리 동네로 들어올 때 나던 물냄새와 짙은 풀내음도(집 근처에 개울가가 있었다), 계절마다 바뀌던 꽃과 나무들의 모습도 알 기회가 없었다. 심지어 오래된 아파트였어서 층간 소음도 심했다. 윗 집 꼬마 아이가 강아지와 함께 부엌에서 안방으로 뛰어다니는 동선을 다 파악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야근을 해도 집에서 야근을 하다 보니 삶의 경계가 사라져 퇴근이라는 단어가 가져다주는 해방감과 행복이 덜 느껴지곤 했다. 코로나로 외부 활동이 제한되며 스트레스를 풀 방법도 없고, 휴식공간으로서의 집의 역할이 점점 줄어들며 자연스럽게 코로나 블루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삶의 무기력함과 우울함에 갇혀가게 되었다. 언제 끝날지 모르겠는 코로나로 인한 불안과 이렇게 집-회사-집-회사 만 반복되는 삶만 살다 죽을 것 같은 끔찍하고 슬픈 생각에 압도되며 우울감은 더 깊이 번져갔다.

 

  그 시기에 그나마 우울감을 버틸 수 있었던 건, 결혼식 준비덕이었다. 우울하고 지루한 생활 중, 결혼식이라는 내 생에 가장 큰 이벤트를 준비하며 즐거움과 행복함을 종종 느낄 수 있었으니까. 코로나로 아쉬운 점도 분명 있었지만, 불필요한 인간관계를 정리할 수 있는 아주 좋은 핑계이기도 해서 결혼식을 준비하며 스트레스를 덜 받기도 했다. 이 시기에 처음으로 코로나가 다 나쁜 영향만 주는 건 아니구나, 모든 것은 장단점이 있구나 느끼기도 했던 것 같다. 덕분에 스트레스 없이 가장 가까운 지인들만 초대하여 너무 재밌는 결혼식을 했고, 오랜 기간 손꼽아 기다리던 신혼여행을 떠날 수 있었다. 이때를 얼마나 기다렸던가!! 결혼식을 끝냈다는 것에 대한 (최장기프로젝트를 끝낸 것과 같은 기분) 후련함과 개운함, 신혼여행을 위해 매일 야근했던 몇 주를 잊게 하는 장기휴가에 대한 설렘으로 너무 행복한 신혼여행이었다.


  신혼여행의 둘째 날, 비양도가 보이는 숙소에서 바닷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었다. 캄캄한 하늘 아래 들리는 잔잔한 물결소리에 행복감과 평화로움에 젖어있었다. 너무 행복하면 그 행복이 끝날까 봐 두려워진다더니.. 정말 너무 행복했었던 것 같다. 갑자기 밑도 끝도 없이 이 행복한 여행도 끝이 있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으니까. 신혼여행이 끝나고 돌아가야 할 일상이 떠오르며 또다시 반복되는 집-회사의 패턴 속에 빠져들어야 한다는 사실에 가슴이 답답해지며 한없이 우울해지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이런 하루하루를 살아가며 나의 삶을 채워간다는 느낌보다 소모한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 서글프고 씁쓸했다. 행복해야 할 신혼여행에서 이런 우울한 고민을 남편에게 털어놓는 것이 좋을까 고민이 됐다. 그러나 이걸 해결하지 못하면 남은 신혼여행 기간 동안 홀로 그 고민을 간직한 채 답답하게 보낼 것 같기도 해 (그리고 분명 티가 날 것이므로), 남편에게 그동안 홀로 느꼈던 우울감과 막연한 두려움에 대해 솔직하게 털어놨다. 그리고 남편에게서 생각도 못한 제안을 받게 되었다.

 

  일에서 자아실현에 대한 욕구와 삶에 대한 의욕과 재미를 찾기 힘들면 취미 생활을 가져보라는 제안이었다. 취미생활을 통해 내가 해보고 싶은 것을 해보고, 억제되어 있던 욕망과 욕구를 해소시켜 보라는 것이었다. 정말 와닿는 충고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도대체 이 답답함을 어떻게 해결할 수가 있을까, 정확히 무엇이 문제일까, 해결할 방법은 있을까, 명확하지 않았었는데, 남편의 제안이 그 답답함을 뻥 뚫어주었던 것이다. 내가 찾지 못한 이유와 해결책을 남편이 정확히 찾아준 것이었다. 그 말을 듣고 처음으로 진지하게 취미생활에 대한 고민을 해보았던 것 같다. 여태껏 앞만 보고 달리느라 취미라 할 게 딱히 없는 지루한 삶을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남편의 말에 진지하게 어떤 취미생활을 시작할까 고민하고 있는데, 물끄러미 나를 바라만 보던 남편이 조심스레 입을 떼었다. 대학생 시절부터 나를 지켜보며 나랑 잘 어울릴 것 같은 일이 떠올랐었고, 이 일과 내가 정말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을 쭉 했었다는 것이다. 처음 듣는 남편의 이야기에 호기심이 일었고, 남편의 대답은 정말 예상도 못한 것이었다.


바로 그림책 만들기였다.

 

  처음엔 전혀 예상도 못한 단어라 황당하고 신기했다. 남편은 날 제일 잘 아는 사람 중 하나이기에, 또 그가 내민 단어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았기 때문에 더욱 놀랐다. 그림책? 그림책은 어릴 적에 읽고 손도 안 대본 것 같은데..? 당황스러움과 의아함이 흩어져버린 뒤엔 호기심이 발동했다. 날 나보다 더 잘 아는 남편이 추천해 준 것이라 그런지 뭔가 엄청 끌리기도 했다. 그동안 창작활동에 대한 욕구가 있었던 터라 그와 잘 부합할 것 같았고, 무엇보다 너무 재밌을 것 같았다. 평생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을 해 본 적이 없어서 더욱 도전해보고 싶기도 했다. 지금처럼 내 삶이 안정적이고 평화로운 적이 없었으니까, 지금이야말로 새로운 도전을 시도해 보기 제일 적합할 것 같았다. 점점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이 강해지기 시작했다. 남편과의 대화 후 신기할 정도로 마음이 후련했다. 꽤 오랜 기간 끈적하게 붙어있던 답답함과 우울감이 깨끗이 씻겨나간 것 같았다. 성인이 된 이후 이렇게까지 순수한 호기심으로, 또 재미있을 것 같아 하고 싶은 마음이 든 적이 없었기에 내 마음에 설렘이라는 씨앗을 심어준 그림책이 운명과도 같이 느껴졌다.


  정말 행복만 가득했던 신혼여행이 끝난 다음 날, 눈이 일찍 떠져 거실 소파에 앉아 폰을 켰다. 신혼여행 사진을 올리기 위해 인스타그램을 열었다. 친구의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보며 사진 넘기기를 누르다가 광고가 중간에 떴다. 에잇하고 광고를 넘기려다 텍스트를 읽었고 정말 깜짝 놀랐다. 늘 나오던 패션브랜드, 가구브랜드 광고가 아닌, 그림책 수업 광고가 뜨는 것이 아닌가! 폰이 정말 우리의 대화를 다 듣고 있던 것인지.. 남편과 대화만 했지 폰으로는 한 번도 관련된 검색을 하지 않았었는데... 너무 소름이 돋았다. 이미 눈에 콩깍지가 씌어져 버린 난, 이 알고리즘의 장난이 마치 내 운명이라고 느껴졌다. 그림책을 당장 시작하라는 신의 계시 같았다. 지체 없이 첫 번째로 뜬 그 그림책 수업 광고에 바로 상담 신청을 눌러버렸다. 그리고 그다음 주 토요일, 강남에 있는 어떤 오피스텔에서 그림책 만들기 기초 수업에 대한 상담을 받고 수업료를 지불했다. 그때 선생님께 ‘저는 회사 다니고 있어서 이거 취미로만 할 거예요. 그냥 가볍게 할 생각이에요’라고 말을 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내 일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고, 직장인이라는 신분이 좋았고, 안정적인 수입이 더 중요했다. 그래서 이렇게 평생 살 줄 알았다. 확신에 찬 상태로 선생님께 이 말을 건네었던 그 순간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그런데 그림책이 지금까지 날 지탱해 주는 일이 될 줄이야…

인생 참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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