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is like a wheel
세상을 살아갈수록, 그리고 경험이 쌓일수록, 세상의 이치를 조금씩 깨닫게 된다. 그중 하나는, 세상 모든 일이 단 하나의 방향으로만 흐르진 않는다는 것이다. 인생은 기쁜 일만 가득할 수도, 나쁜 일만 계속될 수도 없다.
예전엔 좋은 일이 생기면 한껏 들떴고, 나쁜 일이 닥치면 깊이 가라앉아버렸다. 그 기복이 참으로 컸다. 반면, 요즘은 웬만한 일에는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아 나쁜 일이 생겼구나.'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끝내버리는 것 경우가 잦아졌다. 나쁜 일도 결국 지나간다는 걸, 언젠간 끝난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커리어를 위한 여정은 신랄한 피드백 속에서 잠시 주춤하고 있었던 반면, 미국에서의 생활은 되려 풍요로워지고 있었다. 다양한 친구를 사귀게 된 것이다. 그 덕분에 그 시기를 마냥 우울하지 않게, 나름 즐겁게 보낼 수 있었다.
원래 나는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이라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을 그다지 즐기지 않는 편이다. 낯선 사람들이 많은 자리에서는 쉬이 지치고, 관계를 형성하는 과정에서도 에너지를 많이 소모한다. 엘리베이터 앞에 기다리는 사람이 있으면 굳이 계단을 타고 내려갈 때도 있었다.
그러나 외로움을 벗어나기 위해선, 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성적인 성향을 조금 억누르고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 한인 모임에도 나가보고, 외국인들로 가득한 모임에도 참여하며 사람들과 어울리려 노력했다.
여러 모임을 전전하며 친구를 찾아다니던 중, 우연히 나와 또래인 친구를 사귀게 되었다. 남자친구를 만나러 잠깐 미국으로 들어와 있던 친구였다. 그 친구는 참 신기했다. 내 주변에는 절대 존재하지 않았던, 한 번도 본 적 없는 유형의 사람이었다. 그 친구를 보면 음.. 뭐랄까? 골든 리트리버가 떠오르곤 했다. 사람을 좋아하고, 호기심도 많고, 무엇보다 정말 쉽게 타인에게 다가갔다. 그런 그 친구가 처음엔 부담스러웠지만, 동시에 나와 너무도 달라 재밌었고 신선하고 신기했다.
고맙게도 그 친구도 나를 좋게 생각해 주었던 것 같다. 자신이 미국에 놀러 와 사귄 친구들을 나에게 소개해 주고 싶어 했고, 만남을 주선해주고 싶어 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그리 많은 친구를 미국에서 만들었다는 것도 신기했는데, 그런 친구들로 모임을 주최하는 방식이 무엇보다 놀랍고 신선했다. 갑작스레 함께 놀자는 연락이 와서 가보면, 대부분 처음 보는 사람들이 함께 있었다. 처음엔 그런 식의 hang out 방식이 당황스럽고 황당했다. 하지만 그 친구의 의도가 너무도 순수하고 투명하다는 걸 알기에 기분이 언짢지는 않았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같이 놀면 좋을 것 같아. 다들 너무 좋은걸? 좋은 사람과 좋은 사람이 만나면 좋잖아!"
라는 의도가, 그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진 것이다.
여러 번의 초대에 응할수록 당황스러움과 황당함은 점점 신선한 즐거움으로 변하게 되었다. 가끔은 '오늘은 어떤 사람을 만날까?' 하는 호기심과 기대감마저 생겼다. 그렇게 좋은 만남과 시간이 쌓여갈수록, 나를 순수하게 좋은 마음으로 이끌어주는 그 친구에게, 내가 하지 못했던 기회를 만들어주는 그 친구가 내 옆에 있다는 상황에 감사함을 느끼게 되었다. 그 덕분에 나도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었고, 금상첨화로 좋은 인연도 많이 만들게 되었으니 말이다.
나의 귀인은 그런 번개모임 자리 중 한 곳에서 만나게 되었다.
푸르른 여름, 골든 레트리버 같은 친구가 집으로 초대를 해주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의 귀인과 난 만나게 되었다.
그분은 미술을 하는 분이었다. 내게 그림을 그리는 인맥이 생긴 것이다. 마침 그림에 대한 고민이 깊어진 지금, 그 존재가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림책을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밝히진 않았다. 당시 나는 자신감이 부족했고, 백수라는 타이틀로 자존감도 낮아져 있었기 때문이다. 타인에게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말을 하기가 싫었고 알리고 싶지도 않았다. 그 당시의 난 나를 베일 속에 꼭꼭 숨겨두려 했다.
그 이후로 우연한 기회로 그분을 한 번 더 만날 수 있었다. 좋은 친구들과 맛있는 부대찌개, 그리고 달콤한 와인 덕분에 정말 행복한 시간을 보냈던 날이었다. 타지에서 만난 네 명의 또래 친구들은 그날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깊은 대화를 하며 서로에 대해 많은 것을 알아가게 되었고, 나도 처음으로 내가 그림책을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털어놓았다. 나의 귀인은 내가 그림책을 만든다는 사실에 많은 관심을 가졌고, 진심으로 응원해주고 싶어 했다. 그날, 우린 서로 공통점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비슷한 아픔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며 빠르게 가까워졌다.
둘이서만 만나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나는 처음으로 그림책을 시작하게 된 계기와 지금까지의 과정, 그리고 내가 그린 그림들을 보여주었다. 그동안 받은 피드백과 그림을 그리며 느낀 고민과 답답함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남편이 아닌 타인에게 처음으로 털어놓는 이야기들이었다.
사실 그동안 내가 가진 고민을 타인에게 털어놓지 않았던 건, 그들이 나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결국 버텨내고 아파하고 해결해야 할 것은 나뿐임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오랜 기간 남편 외에 다른 사람들에겐 이런 고민을 털어놓지 않았다. 혼자 참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이런 고민을 털어놓다 보니 마음이 점점 가벼워지는 게 느껴졌다. 마음 한 곳이 후련했다. 몰랐지만, 나는 이 무거움을 무척이나 털어놓고 싶었고, 이 공허함을 공감받고 싶었나 보다.
나의 귀인은 내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주었다. 내가 지금 가진 고민을 이미 다 겪어본 사람이라 그런지, 내 마음을 너무 잘 이해해 주었다. 공감만으로도 위로가 되었다. 점점 마음이 가벼워지자 용기도 나기 시작했다. 이 기회에 궁금했던 것들도 마구 물어보기 시작했다.
수많은 나의 질문에 그분은 아주 간단명료하게 답을 주었다. 예를 들면,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그림은 어린아이가 그린 듯 가벼운 그림체였는데, 완성도가 높다는 평을 받았었다. 그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무시하는 느낌으로 이해가 가지 않은 것이 아니라, 정말로 '완성도'라는 것에 대한 개념을 몰라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동안 내가 들은 피드백을 조합해 봤을 때, 완성도, 즉 밀도가 높으려면 색도 많이 들어가야 했고, 여려 겹의 레이어가 쌓여 그림이 단단해 보여야 했다. 하지만 이 분의 그림체는 채색도 없이 선 위주로 된 그림이었으며, 흰 도화지의 색이 더 많이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완성도가 높다는 건 내가 이해하는 완성도라는 개념이 틀리다는 것인데 이걸 어디서 어떻게 알아내야 할지 답답한 참이었다.
그때 그분의 답은 내가 전혀 생각지도 못한 부분을 집어주었다.
"그림 안에서 시선이 벗어나지 않잖아."라는 답이었다. 완성도도 다양한 방식으로 높일 수 있다는 의미였다.
그림 안에 시선을 가둔다는 개념 자체를 몰랐기 때문에 그 말에 큰 충격을 받았다.
그분은 그 그림에 시선이 어떻게 가둬지는지, 그것을 위해 글과 그림의 구성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그림의 표현을 어떻게 한 것인지를 하나씩 뜯어서 설명을 해주었다. 그 설명을 듣고 나니, 갑자기 눈이 틔인 기분이었다.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기분을 느꼈다. 정말 기뻤다. 답답한 마음이 가셨다. 그림을 기초부터 제대로 공부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날의 대화가 나에게만 감동을 준 건 아니었다 보다.
나의 상황을 알게 된 후, 잠시 고민을 하더니 먼저 그림 스터디를 해보지 않겠냐 제안을 주신 것이다. 본인도 포트폴리오 작업을 위해 시간을 가질 계획이었고, 나도 그림 연습이 필요하니 주에 한 번씩 만나 그림을 그리는 시간을 가져보자는 제의였다. 스터디를 통해 윈윈을 해보자는 것이었다.
솔직히 나는 윈윈보다는 내가 얻는 것이 더 많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걱정이 되었다. 정말 괜찮으시겠냐며 몇 번을 되물었고, 그분은 흔들림 없이 "괜찮아!"라며 함께해 보자고 했다.
그렇게 한 해의 시작과 함께 우리의 그림 스터디가 시작되었다.
해가 뜬 시간에 만나, 해가 진 캄캄한 저녁에 헤어지는 나날이 차곡차곡 쌓여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