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One and Only Choice
꿈이 있다.
흩날리는 눈송이처럼 요동치며 소란스레 지냈던 나날을 뒤로하고 그늘진 고요한 곳에 소복이 쌓이고 싶다.
나의 존재를 온전히 안아주는 곳에 한 겹 두 겹 내려앉아 굳세게 얼어붙고 싶다.
어떤 스침과 충격에도 흔들리지도 깨지지도 않고 싶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쌓여온 경험들이 더욱 단단히 엉겨 붙어 고유한 빛을 내는 사람이 되고 싶다.
어릴 땐 스무 살이 되면 자연스레 내가 원하는 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른 나이에 정착지를 찾기엔 시야도 좁았고 기회도 적었다.
그나마의 길 속에서 나의 길을 만들어 나갔지만 진정 이것을 원하는가라는 물음에는 답하지 못했다.
정착하고 싶은 일을 찾지 못해 이곳저곳 방황하다 이제야 정착하고 싶은 일을 찾았다.
계획하고 예상하던 것과는 다른, 너무나도 늦었다고 생각한 시기였다.
왜 이제야 나를 찾아왔는지 원망스러웠다. 어렵게 나에게 날아온 이 자그마한 씨앗은 처음엔 좌절과 후회의 빛과 거름 속에서 자라났다.
그러나 곧 더 늦어진 날에 꿈을 맞이하는 사람도 있다는 걸, 더 나아가 그 꿈을 마주치지도 못하는 사람도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얼마나 어리석은 원망과 좌절이었는지 부끄러웠다. 감사함도 벅차올랐다.
오늘보다 오래된 날들은 없다는 걸 잊고 있었다.
따스한 햇빛이 차오르는 곳으로 씨앗을 옮겼다.
앞으로 잘 가꾸어 주겠다고 약속했다.
벅찬 기쁨과 설렘과는 달리 씨앗은 오랜 기간 싹을 틔우지 않았다.
물을 너무 자주 주었는지, 햇빛이 너무 센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조금씩 기다림에 지칠 때 즈음, 연둣빛 새싹이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잔잔한 바람이 부는 곳에, 너무 햇빛이 세지 않은 곳에 화분을 둔 이후였다.
그러나 새싹을 마주한 기쁨은 잠시, 그 이상 자라지 않은 채 시들었다 원래대로 돌아왔다를 반복하는 새싹 때문에 애가 타고 지쳐갔다.
다른 식물을 들여 정성을 다해주었다. 기쁘게도 그 식물은 내가 보살핌을 준 만큼 보답하듯 쑥쑥 성장했다.
비교가 되었다. 어느새 감사함이 자리하던 곳엔 당연함과 기대감이 대신하고 있었다.
더 이상 자라나지 않는구나, 나에게 맞지 않은 씨앗이었구나 처음으로 포기를 떠올렸을 때, 처음 싹이 올라왔을 때의 사진을 꺼내보았다.
그리고 알아챘다. 처음보다 새싹이 아주 조금은 자라났음을. 조금 더 짙은 푸르름을 담고 있음을.
단지 기대한 것보다 너무도 작고 미세한 변화였기에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분명하게 일어났던 변화를 눈을 가린 채 알아주지 못헀다.
그동안 내 정성이 부족한 것일까 자괴감에 자책을 했다가도 내 마음만큼 따라주지 않은 새싹을 원망하기도 했다.
맞지 않는 거름을 주었던 것일까, 이게 다 성장한 것인 걸까, 불안해하기도 했다.
새싹이 시들 때마다 덜컥 가슴이 내려앉기도 했다.
내 방이 아닌 다른 곳으로 보내주어야 할까 씁쓸해지기도, 초연해지기도 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그저 속도가 늦을 뿐이었다. 분명 자라나고 있었다는 걸, 뒤돌아 본 그제야 알게 되었다.
단순하게 생각했던 시작과 달리, 그림책은 나의 삶이 되어 버렸다.
그림책을 만들기 위해 그림을 시작하고 이야기를 만들어 가며 나도 성장해 갔다.
너무도 깊숙이 스며들었기에 이젠 그림책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 나 자신이 상상조차 되질 않는다.
사실 누군가는 왜 이리 오버해서 오래 질질 끌까 생각할 수도 있다.
스스로도 그런 생각을 종종 한다. 남들은 쭉쭉 그림을 그려내고,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여러 번 도전하는 것을 거침없이 잘만 하는데 나는 왜 그게 안 되는 것일까? 그림을 그려내는 것 자체가,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 자체가 왜 이리도 어렵고 힘든 것일까? 왜 이리도 오래 걸리는 것일까?
그림책을 만든다는 과정 자체는 너무도 단순한데, 왜 이리 나는 삶 자체가 흔들려가며 그 과정을 밟아가는 것일까. 굳이 한 걸음걸음에 무게를 더해 꾹꾹 눌러 밟아가는 것일까.
처음이기에 그런 것 같다.
경영학과를 나온 내가 그림을 그린다는 것도 처음이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도전을 하는 것도 처음이다.
플랜 B도 없이 절벽 끝에 서서 아슬아슬하게 도전을 이어가야 하는 상황도 처음이다.
타지에서 이리 오래 살아보는 것도 처음이고, 그 처음에 또 처음이 더해지는 것도 처음이다.
처음이라 모든 것을 다 직접 부딪히게 되고, 더욱 그 고통이 생생하게 느껴지며 상처가 깊이 새겨지는 것 같다.
처음이기에 전혀 만나보지 못한 나를 마주하게 되고, 낯선 나에게 적응해야 하는 과정을 거쳐야만 했다.
그냥 하던 거 하면 되지 않을까, 왜 사서 고생을 해야 할까 현타가 올 때도 정말 많았다.
그럴 때마다 포기보다는 처음 겪은 이 처음을 더 제대로 부딪혀서 해내고 싶어졌다.
언젠간 또 마주하게 될 처음의 순간들을 조금은 덜 힘들게 보내고 싶기 때문이다.
최선을 다했다는 말을 할 수 있을 만큼 끝까지 최선을 다해 노력해보고 싶다.
실패를 하더라도 제대로 실패해보고 싶다.
어디까지가 나의 한계일지 밀어붙여보고 확인하고 싶다.
그런 기회로 처음의 처음을 살아가고 싶다.
그렇게 제대로 부딪혀서 언젠간 맞이할 또 다른 처음의 순간을 지금보단 덜 아프게, 더 효율적으로 보내고 싶다.
그림책 작가는 나에게 단순히 직업이 아닌, 내 삶이 되어버렸다.
캐릭터에 나의 이야기를 담아내며 상처가 치유되기도 했고,
하고 싶은 메시지를 하나의 이야기에 담아내는 과정에서 행복함에 안겨보기도 했다.
아무리 힘들고 괴로워도 포기할까 고민도 하지 않는 강한 내 모습이 마음에 들었고,
진정 이걸 해내고 싶어 하는 도전하고 부딪히는 용기 있는 나 자신이 기특했다.
그렇기에 아무리 오래 걸리더라도, 언젠간 내 꿈을 현실로 만들고 싶다.
한 단어 한 단어 꾹꾹 눌러 담아 매일 기록하다 보면 언젠간 하나의 책이 완성될 것이다.
매일 사랑을 주고 정성을 다하다 보면, 새싹이 언젠간 눈에 띄게 자라나 꽃을 피울 것이다.
나의 속도대로 차근차근 걸어 나가보려 한다.
포기라는 선택지가 없는 내 첫 번째 처음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지는 그저 앞으로 나아가는 것뿐이다.
이 글을 마지막으로 저의 첫 번째 브런치북의 막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저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고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너무 감사드립니다.
15주 동안 매주 글을 발행하며 정말 다양한 감정이 들었습니다.
힘들었던 시기를 다시 떠올려 마주하며 그 감정이 고스란히 떠올라 아프기도 했고,
그런 힘든 시기를 잘 버텨온 과거의 나에게 감사함을 느끼기도 했고,
잊고 있던 기억들과 감정을 끄집어내어 더욱 의욕이 불타오르기도 했습니다.
저의 그림책 작가가 되기 위한 여정은 아직도 ing입니다.
앞으로도 많은 장벽에 부딪히고 아파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저 앞으로 꿋꿋이 나아갈 예정입니다.
꾸준히 앞으로 나아가다 보면 언젠가는 꼭 여러분께 그림책 작가가 되었다고 말씀드릴 때가 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앞으로 또 다른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