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이 있다.
그는 스스로를 의미 부여자라 칭한다.
모든 것이라고 칭하지만 보이는 사물 하나하를 칭하기보다는 자신과 매일 함께 하는 무언가에게 의미를 부여한다는 뜻이다.
자신의 안경, 시계, 핸드폰, 가방, 펜, 신발 등 그 모두에 의미가 있다.
함께 하는 것들에게 그 사람은 오늘도 말한다.
“잘 부탁해.”
#2.
예로 안경은 친구와 같이 이탈리아를 놀러 갔을 때 사서 이탈리아의 좋은 추억을 담고 있는 내 두 번째 눈.
시계는 대학교를 졸업하며 본인이 아르바이트하며 모은 돈으로 마련한 평생의 동반자.
가방은 전철 한 정거장을 어쩔 수 없이 타야 하는 상황에서 선물 받은 치킨을 넣어 사람들에게 최소한의 예의를 지켜준 대상.
오늘의 신발은 그 사람이 23번째로 마련한 또 하나의 친구.
그런 그가 평생의 동반자로 생각하던 시계를 잃어버린다.
#3.
시계는 정확히 오늘 13:37분과 17:23분 사이에 사라졌다.
그 사람은 생각한다.
‘어딘가에 잘 있어야 할 텐데.. 이미 누가 시계를 가져갔으면 어쩌지?’
그러면서 기억을 더듬어본다.
시계로 마지막 시간을 확인한 게 13:37분.
지금이 17:24분이다.
오른손잡이이면서 오른쪽에 시계를 차는 그가 시계를 풀 때에는
손목의 무게를 조금이라도 덜고 시계의 흔들림과 ‘틱톡’ 소리조차 느껴지지 않아야 할 정밀한 집중도 높은 미술 작업을 할 때,
그리고 밥을 먹을 때, 과자봉투에 손을 넣을 때이다.
그 사람은 바로 14시경 먹은 과자가 그 시계를 잃어버리게 한 범인임을 문득 생각 해난다.
#4.
안타깝게도 아까 과자를 먹었던 자리에 시계는 없다.
그도 그럴 것이 모두가 함께 공용으로 사용하는 휴게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 사람은 누군가 자신의 시계를 주워서 로비 안내소에 맡겼을 것이라고 믿고 안내소로 향한다.
#5.
방심했다.
그 사람의 동반자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20대 노력의 결과물 중 하나가 사라질 수 있다는 조바심에 마음 한편이 먹먹해진 그 사람은 생각한다.
‘내가 너무 의미 부여를 해서 이 시계를 잃어버리는 게 너무 겁이 나는 건가?’
#6.
벌써 18시.
퇴근시간이 되었다.
정시 퇴근 지정일인 오늘이라 퇴근을 할 수밖에 없었던 그 사람은 앞으로 의미 부여를 조금 덜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으면서도 잃어버린 시계를 언젠가 찾을 수 있으리라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퇴근 후 시원한 무알콜 캔맥주를 따며 낮에 먹었던 것과 같은 과자를 먹어본다.
집에서는 시계를 차지 않기에 별다른 느낌이 없다.
오히려 맥주와 먹으니 맛있다고 할까.
종교가 없는 그 사람은 잠자리에 들기 전 특정할 수 없는 대상에게 그래도 내일은 꼭 시계를 발견하게 해 달라는 기도를 한 뒤 잠을 청한다.
#7.
같은 자리에 매일 앉은 지 일주일째인데도 평생의 동반자로 여겼던 시계는 나타나지 않았다.
오늘은 그 상황을 재현해 보고자 그 자리에서 과자를 먹어보기로 한다.
‘오른쪽에 물건을 두는 곳이 없어 오른쪽 주머니에 넣었을 거다. 주머니에 넣으면서 빠졌고 여기 근처에..’
벤치 뒷면 오른쪽 바닥으로 시선을 향하자 포스트잇과 함께 놓인 시계가 인사한다.
“안녕?”
그 사람은 그 사람의 물건임을 확인하고자 시계 뒷면을 본다.
평소에 자기 것에 일부러 조그마한 흠집을 내놓은 그였기 때문이다.
시계 뒷면 왼쪽 아래에 새겨둔 스크래치를 발견.
#8.
포스트잇 아래에는 쪽지가 있었다.
“이 시계 주인을 직접 찾아드리고 싶었습니다. 우연히 시계를 발견했으나 안내소에 갔더니 저희는 책임지지 못할 분실물은 맡아두지 않습니다.라고 하더군요.”
의미부여자는 생각한다.
‘안내소에 맡겨진 분실물이 있는지 물어볼 게 아니라, 정확하게 분실물을 맡기려던 사람이 있었냐고 물었어야 했구나.’
친절이 줄어든 세상에서 갈 곳을 잃은 “어떤 시계를 발견했다고 맡기려고 한 사람은 있었습니다.”라는 단순한 안내소 직원의 한 마디의 부재로 상호 연결다리를 만들지 못했으리라.
그리고는 이어서 읽어본다.
“그래서 어차피 2주 동안 파견을 왔던 저는 이 자리를 지켜봤습니다. 이 자리는 유독 다른 사람이 앉지 않는 자리였습니다. 이에 저는 모험을 합니다. 이걸 가져가는 당신이 시계의 주인이라면 가져가신 뒤 아래의 번호로 연락을 한 번 주시고, 아니시라면 부디 본래 주인을 기다리는 그 시계를 다시 제자리에 놓아주세요.”
세상에는 아직 따뜻한 사람이 많다.
의미부여자는 의미를 덜 부여하려 했음에도 자신을 다시 찾아와 준 시계를 보고 사물 또한 존중하고 사랑받음이 마땅함을 다시금 생각하면서 적혀있던 번호로 연락한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