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이왕 가는 거 제일 힘든 한라산 관음사코스를 올라가고자 마음먹었다. 그런데 웬지 혼자 추진하게 되면 계획만 세우고는 하지 않을 것 같다는 강한 예감이 들었다. 누군가와 함께 해야 했다. 하지만 내 얼마 없는 지인들은 모두 거절했다. 한 번 아니다고 한 이상, 마음을 돌리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것을 안다. 무슨 수로 한라산에 가게 할 수 있을까. 등산에 마음이 없는 사람에게 동네 뒷산도 약속을 잡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제주도는 더욱 그렇다. 굳이 너랑 제주도에?, 굳이 제주도에서 한라산을? 굳이 그것도 겨울에? 이건 돈을 준다고 해도 생각해볼 만한 계획인 건 분명했다. 나라도 가기 싫을 겨울 한라산 계획은 원래 알던 사람들이 아니라 어플 모임을 만들며 시작되었다.
모임 어플 특성상 메인 주제로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가입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이 없는 사람들이 가입하는 건 분명 아닐 거라 생각했다. 모임명은 한 달 내로 한라산 가기였다. 모임을 소개하는 글에는 한라산을 간 이후론 모임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예상외로 많은 사람들이 가입을 했고, 그중 몇 명은 구체적인 한라산 등산 계획을 물었다. 나는 그때마다 정확한 건 아직 정해지지 않았지만 확실하게 간다는 보장이 있는 사람들만 추려서 갈 것이라 했다. 그 이후 서둘러 등산 날짜를 투표해야 했다. 사람들의 마음이 식어버릴까 봐, 사라질 열정이 두려웠다. 또한 그냥 가입만 하는 사람들이지 실제로 가지 않을 것 같은 슬픈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마지막으로 남은 인원은 총 3명이었다. 우리는 서로 얼굴도 모른 채 제주공항에서 어색하게 인사를 나누고 게이트를 지나 렌트카로 게하를 갔다. 한라산 전용 게하라 그런지 조용했다. 게하에서 등산장비를 빌려주는 것에 편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날 밤 오티에서는 관음사코스의 위험성과 성판악코스의 편함을 비교하며 마지막까지 참여자의 마음을 시험했다. 우리는 잠시 흔들리기도 했지만 이왕 가는 거라는 말로 관음사코스를 협의했었다. 그렇게 제주도의 첫날은 다음 날 등산을 고려하여 일찍 잤다. 같은 방을 쓰는 사람들이 조용히 코를 골길 바라면서.
다음 날 아침 일찍부터 등산을 시작해야 했었다. 사람들이 등산을 왜 하는지 모르겠지만 아마 나랑 같은 이유였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한라산을 오르고 있었다. 둘은 나보다 저 멀리 가고 있었다. 정말 오고 싶었던 마음을 두 발로 증명하는 것처럼. 사실 그때 내가 후회하고 있었던 것은 전 날 오티에서 아이젠이 필요하지 않다는 말을 믿었다는 것이다. 나는 등산화만으로 겨울 설산을 미끄러지며 올라갔다. 지금 생각하면 모두 아이젠을 끼고 오르는데 나 혼자 아이젠 없는 등산화였다. 미끄러질 때마다 주변은 나를 걱정했고 그때마다 아이젠을 원하고 그를 원망했다. 관음사 코스는 지정된 시간까지 어느 지점 코스에 도달해야 한다. 또한 도달해도 날씨가 안 좋으면 더 이상 갈 수가 없다. 다행히 날이 좋았고 우리는 커트라인 시간보다 한참 전이라 여유 있게 사진도 찍고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앉아서 음식을 먹고 있었는데 정말 부러운 모습이었다. 그때는 정말 컵라면 한 젓가락 아니 컵라면 국물이 절실했었다. 배고픔은 고통 그 이상의 영역인 듯하다. 우리는 희망을 찾아갔다. 희망은 진달래대피소에 있었다. 그곳엔 우리가 먹을 수 있는 컵라면이 있으니까.
성판악코스로 내려오는 길은 지겹고 길었다. 우리는 올라갈 때와는 달리 말없이 이 길이 끝나길 바랬다. 아니 적어도 나는 그랬다. 올라갈 때 위험했고, 컵라면이 절실했고, 얼어붙은 백록담을 보면서 그토록 바랬던 한라산 정상을 현실로 마주했었다. 사람들은 실패를 두려워한다. 이해한다. 실패의 책임을 져야 하는 건 결국 내가 짊어지게 되니까. 한라산을 내려올 때 여기까지 온 과정들을 돌이켜 보게 되었다. 결국 성공한 건 한라산을 갔다가 온 것이었다. 아니 여기서 쓰러지면 실패할 등산이었다. 또한 이 과정 중에 내가 모르거나 넘어갔던 실패와 이겨내었던 수많은 성공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결국 모든 걸 이겨 냈으니까 성공한 것이었고 나는 겨울 한라산 등산을 오르는 데 있어 실패도 있었지만 성공도 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나는 한라산을 오른 이후에도 여전히 실패와 성공을 저울질하며 살아가고 있다. 가끔은 겁 없이 한라산 모임을 추진했을 때가 그립다. 우리는 더 나아질 수 있는데도 우리가 되지 못 한채 남겨질 때가 많다. 무언가를 하고 싶거나, 막막할 때 손을 내밀면 잡아 줄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너와 내가 우리라고 말할 수 있는 일들로 가득 하면 좋을 것 같다. 그래서 나 혼자면 감히 하기 힘든 일, 그리고 싫은 일들이 우리가 되서 실패 했으면 좋겠다. 나의 실패보다 더 어렵고 힘든 일을 통해 우리가 실패해도 되는 것들을 원 없이 하면 재밌을 것 같다. 그것도 아주 많이 실패하고 싶은 사람이 되고 싶다. 우리라는 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