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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운 Jan 07. 2021

부패하지 않는 꿈
영화 <위대한 개츠비>

지금보다 어리고 쉽게 상처 받던 시절 아버지는 나에게 충고를 한마디 해주셨는데, 나는 아직도 그 충고를 마음속 깊이 되새기고 있다. 

“누구든 남을 비판하고 싶을 때면 언제나 이 점을 명심하여라.” 

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세상 사람이 다 너처럼 유리한 입장에 놓여 있지는 않다는 것을 말이다.”   (민음사)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는 많은 출판사에서 번역을 했다. 이 소설은 세계 1차 대전 이후 미국의 모습을 가장 잘 보여준다. 읽는 사람들에게 저마다 개츠비가 왜 위대한지에 대해서 의문을 가지게 하는 제목으로도 유명하고 출판사별로 읽을 정도로 매니아층을 남기는 소설이기도 하다. 특히 무라카미하루키의 친구가 되려면 이 책을 세 번은 읽어야 하기 때문에 한국에서 인기 많은 하루키아저씨의 말에 따라서 자연히 읽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 (상실의 시대에서 나오는 대화)

왜 위대한 개츠비일까라는 의문도 중요하지만 영화가 시작되면 1920년대 미국인이 가진 돈의 화려함 뒤에 그들이 가장 원하는 그리움은 어떤 것이 있을지가 궁금해지기도 한다. 무엇보다 소설을 영화화하여 많은 볼거리를 제공함에 있어서 고평가 받아야 이유이기도 하다.



영화를 말하기 전에 늘 이전처럼 하고 싶은 말을 관련지어서 해야겠다. 작년 한 해를 돌아보면 코로나로 인해 실물경제는 죽어 갔지만, 부동산과 주식이 정말 미친 듯이 올랐다. 말미에는 비트코인도 올랐다. 그래서 안 오른 게 없다고 할 정도로 돈의 가치에 비해 투자처의 가치가 높아졌다.

코스피는 2020년 3월 1400대로 떨어져서 사람들에게 공포를 주었고, 나는 그때 대공황이 오는 게 아니냐 라는 불안감에 대부분 손절을 했다. 그때 들어간 사람들, 또는 버텼던 사람들, 그리고 추가 매수한 사람들은 합당한 보상을 받았을 거라 생각한다. 

이 후로 코스피는 떨어질 줄 모르고 상승하고 있었다. 뭐든 어설프게 아는 게 위험하다. 데드 캣이라는 또 주식 용어를 주워듣고는 1400~1500 왔다 갔다 하다가 다시 1400 이하로 떨어질 거다라는 말에 현혹되어 지수가 내리면 오르는 etf인버스에 관심을 가졌다. 그 시기에 결국 해서는 안 될 etf인버스 x2를 물 타면서 결국엔 적지 않은 돈을 또 날리게 되었다. 그때가 아마 코스피 2200~2300사이었을 거다. 결국 작년 코스피가 떨어질 때 손절한 주식과 인버스를 사서 손절한 2 연타를 맞게 되며 어떻게든 만회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래도 나중엔 정신 차리고 코스피 2200~2400 사이 단타와 가치투자를 하려고 애쓰기도 했다. 뭐 정부 정책에 따라 대세인 친환경 그린 뉴딜 주도 들어가 보고, 이름 있는 주식도 들어갔으며, 미국 주식 우량주인 테슬라 외 몇 가지 주식 등으로 손해를 일부 메웠다. 그래도 손해를 메꾸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다. 아직도 정신 못차린 건 지 지금은 바이오와 단기 테마주에 물려 있는 상태다. 

어쨌든 2021년 1월 현재 코스피는 3000이 되었다. 믿을 수 없는 지수지만 여전히 대한민국의 실물경제는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 그럼 이 3000을 어떻게 설명할지는 후에 역사가 평가할 것이라 생각한다. 지금은 지금의 상황에 맞게 시장에 따라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섣부른 예상 같은 것으로 시장에 대처하지 않기로 했다. 지난 한 해의 뼈저리게 느낀 교훈이었다. 




시대는 다른 것 같지만 사람들의 욕구는 100년 전이나 1000년 전이나 다를 게 없다. 특히 1900년 초반의 인간과 지금의 인간이 무엇이 다르냐고 말하면 나는 그저 스마트폰의 차이뿐이라고 말하고 싶다. 1920년대의 미국은 엄청난 경제성장과 더불어 졸부가 많아진 시대였다. 그러니까 개츠비 같은 인물은 그런 시대를 상징할 수 있는 인물처럼 여겨진다. 누구나 부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아닐 것이다. 똑같이 투자를 한다고 해서, 똑같이 직장을 다닌다고 해서, 사업을 한다고 해서 부자가 될 수는 없으니깐  말이다. 물론 부자의 정의는 다르겠지만 개츠비는 당시 부자 중의 부자로 표현된다. 경제적 자유를 이룬 한 인물이 어떻게 셀럽의 역할을 하는지도 잘 보여준다

마치 오늘날의 유명 크리에이터, 유튜버 등과 비슷하다.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넘어간 지금의 시대는 샐럽의 역할이 소통창구를 만든다. 사람들은 저마다 각자의 생각을 표현하며 크리에이터의 콘텐츠를 소비한다. 그들의 손가락 끝으로 집에서 아주 편하게 말이다.

그래서 그때와 지금의 차이는 스마트폰의 유무라는 생각이 들었다.

피츠제럴드는 당시 미국 동부의 화려함을 보여주었는데, 이 작품은 소설에서 상상할 수 있는 화려한 색깔을 보여주는 잘 만든 영화다. 때로는 책으로 느낄 수 있는 상상력을 영화가 망쳐놓기도 하지만, 책의 상상력을 있는 그대로 또는 더욱더 잘 살릴 수 있는 역할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는 이 점에서 완벽히 소설을 살렸다고 볼 수 있었다.

누구나 셀럽을 궁금해한다. 우리가 유명 유튜버의 컨텐츠를 즐기는 것처럼, 당시 많은 사람들은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취하고 즐기기 위해 인맥을 쌓기 위해 파티에 참여한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전면에서 나서서 그 파티를 주도하는 파티와는 다른 느낌의 파티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닉처럼 그런 파티를 즐기는 것만으로 부족한 사람들이 있다. 이런 파티를 만드는 사람이 누군지에 대한 의문, 그는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에 대한 의문을 남기는 사람. 그런 의문을 가진 자에게 개츠비는 친절히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다.

완벽한 미소를 가진 주인공의 등장이었다.

사실 개츠비가 그런 파티를 여는 건 모두 계산된 행동이었다. 돈이 많든 적든 나이가 적든 많든 남자가 좋아하는 여자 앞에선 언제든 작아지는 모양이다. 위대한 개츠비 스토리상 그가 가장 긴장하는 모습과 부자연스러웠던 행동을 보임으로써 그가 얼마나 그녀를 좋아했는지, 아니면 멋있는 모습만 보이길 원했는지를 알 수 있는 장면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책에서도 그런 긴장감과 어색함을 표현함에 있어 재미있고 숨 막히면서 흥미 있었던 부분이었는데, 영화에서도 특히 어울리지 않는 긴장감을 표현하여 재밌는 장면이 되었다. 재밌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 전까지 여유 있는 완벽한 미소를 보여준 그가 맞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어색하게 굴었다는 점이었다. 결국 숨 막히게 어색했던 공기는 결국 달콤한 로맨스로 연결이 된다.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있겠지만 결국 개츠비는 자신의 한계를 톰에게 느끼고 만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아무리 유명해도 결국 자라온 환경이나 학벌 등으로 인해 한계에 닿는다. 그리고 시간에 대한 한계가 있다. 비록 원빈일지라도 또 수 많은 돈을 가져온다고 해도 시간을 돌릴 수 없으며 지나버린 사람의 감정을 살 수는 없다. 

물론 개츠비도 이 점을 잘 알아서인지 아니면 자신의 단점(출신)을 장점(돈, 진심)으로 커버하는 전략을 쓴 건지 몰라도 데이지를 톰으로부터 벗어나게 하기 위한 자충수를 두게 된다. 데이지를 톰에게서 벗어나게 하고 데이지가 자신을 선택할거라 믿었기 때문이었다. 예전과는 다른 모습 그리고 그때 없었던 돈과 여유까지 갖췄으니 말이다. 이건 어떻게 보면 엄청난 착각과도 같다. 돈과 유명세가 자만심을 가지게 할지는 몰라도 한 인간의 감정을 움직이기에는 많은 것들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사실 데이지가 톰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해도 사랑한 적이 한 번도 없었을까. 아니 그러기가 힘들 것이다. 그건 데이지가 아니고는 모르는 일이다. 개츠비의 입장에선 그렇게 되어야 했고, 그랬어야 하는 소망뿐이었음을 잔인하게 보여주는 일이었다.

결국 개츠비는 자신을 알아주지도 않는 여자를 위해 또 한 번 무리를 하다가 결국 생을 마감하게 된다. 그렇게 화려했던 파티에 참여 한 사람들 중 아무도 그가 죽은 뒤에 오지 않는다. 그가 사랑했던 데이지조차도 현실을 선택하며 개츠비를 외면한다. 

이야기는 이렇게 비극적으로 끝이 난다. 이 모든 일에 놓여진 일들에 개츠비가 선택했던 것들로 바뀐 것들이 많았다. 개츠비가 부자가 된 일, 과거의 연인을 잊지 못해 다시 데이지를 찾은 일, 데이지에게 성공한 자신의 모습을 보여준 일, 이 모든 것에는 야심이 있었다. 그리고 데이지는 과거의 연인을 다시 보게 되었다. 개츠비의 죽음은 어떻게 해석을 할 수 있을까. 개츠비는 과연 그녀 없이는 완벽해질 수 없었을까. 

톰이나 데이지도 지나 간 시간을 뒤로 현재 사랑을 선택했기 때문에 그 누구도 비난을 할 수 없을 것이다. 개츠비가 더욱 바라지 않을 것이다.

마지막 엔딩을 말하는 닉은 절망적으로 개츠비를 이렇게 기억한다.


GATSBY


"THE GRE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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