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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타는지성인 Oct 31. 2022

초상화와 연어

이 년 전 오늘은 연어가 말도 없이 다른 집으로 계약하여 집을 옮긴 날이었다. 연어는 그즈음에 분명히 초상화가 나를 보고 비웃고 있었다고 말했다.

- 저 기분 나쁜 초상화를 빨리 없애고 싶어.

초상화는 원래의 그림으로 그려진 대로 틀림없이 그대로 있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며칠 전부터 분명히 초상화는 나를 보고 비웃고 있었다고 연어가 말했다.

하지만 이채는 초상화를 버릴 수 없었다.

- 비웃는다는 말이 납득이 되지 않아.

연어는 초상화를 버리지 않는다면, 내가 떠나겠다고 말했다. 고작 그 이유라고 생각했다. 이채는 분명히 초상화는 웃고 있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 허공을 응시하는 그림일 뿐이야.

연어는 여전히 초상화가 저렇게 비웃고 있으니 못 있겠다고 말했다. 연어가 집을 비운 사이에도 이채는 계속해서 초상화를 바라봤다. 먼지들이 햇살에 비치며 떠 다니는 동안, 작은 먼지를 코로 숨 쉬며 받아들이며 자신이 그렸던 초상화를 봤다.

한편으론 자신의 그림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기분이 나쁜가라는 혼잣말을 자신도 모르게 하면서 온종일 연어가 받았을 모욕감이라던지 환멸, 굴욕감 등을 생각했다.

누군가가 나를 비웃고 있는다면, 자신은 어떻게 할까라는 생각의 결론은 초상화 처분으로 이어졌다.      

결국 초상화를 버리는 것보다는, 중고거래 앱을 통한 나눔으로 정했다. 연어는 이채와 함께 반포한강공원으로 갔다. 초상화를 건네받을 장소였다. 반포한강공원에선 사람들이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도 사람들은 에너지가 넘치는 듯했다.

- 초상화를 들고 있으니 저는 찾기 쉽네요.

이채는 그를 찾을 수 없었지만 자신을 오이라고 소개하며 초상화를 들고 있기 때문에 쉽게 찾을 수 있었다고 말하는 자를 보았다.

- 잘 그렸네요. 웃는 것 같기도 하고.

- 아뇨. 허공을 보고 있는데요.

오이는 에이 이렇게 한 번 보세요라고 하더니 팔을 약간 기울였다. 이채는 햇빛에 비춰서 그림이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날 연어가 말했다.

- 나 집 계약했어. 내일부터 이사 준비해야 해.  

이채는 이렇게 불현듯 찾아오는 감정에 대해서 생각했다. 이채는 연어를 축하해줘야 할지 미워해야 할지 아니면 응원해야 하는지 모른 채로 한강을 걷기만 했다.

한참을 걸었고 어느덧 시간은 해가 하늘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이채는 헤어짐이라던지 이별이라던지 그런 것보다는 조용한 침묵을 떠올렸다.

이채는 연어에게 그동안 생각해 둔 말을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하며 말을 띄웠다.

- 감정이 한 템포씩 느리게 찾아오는 사람이 있어. 좋은 건 그 순간에 감정에 휩 쌓이진 않는다는 거지. 그런데 문제는 시간이 지나면 온종일 그 생각에 잠식돼.

아끼던 초상화를 버리고 나서도 나는 정말 초상화를 버린 걸까? 그 사람이 초상화를 아낄까? 연어가 받았을 감정이 어떤 것일까 해.  

- 버리게 해주고 싶었어

 - 응?

 - 그냥 저 초상화 말이야. 너 말처럼 한 템포 늦게 찾아오는 과거에 더 이상 잠식되지 말라고.

나도 언젠가는 떠날 것 알았잖아. 그냥 그게 오늘이었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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