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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타는지성인 Oct 13. 2021

잘 지내나요

        

너와의 약속이 있던 날은 며칠간 내렸었던 비 없는 맑은 하루였다. 그 날은 매 번 습관처럼 향하던 지하철 말고 조금 더 일찍 버스를 타러 갔다. 버스노선을 모르는 나는 버스를 기다리며 약속 장소로 향하는 버스를 찾느라 손놀림이 분주했고, 이 내 버스는 한 대씩 지나갔다. 곧이어 오는 버스에 앉고 나서 익숙한 것처럼 너와의 지난 번 카톡을 돌아봤다.

잘 지내나요?

뜬금 없이 받은 카톡에 나는 멍하게도 대답을 뭐라 해야 할지 몰랐었다. 잘 지내냐니 뭐라고 해야 할까라고 한동안 바라봤었다. 너와의 카톡을 조금 올리니 없던 한동안 대화가 없어 끊겨 있었고 더 올리니 없는 이야기도 만들어서 보내던 내가 낯설게 있었다.

잘 지내냐는 안부에 나도 사실 궁금했었다. 잘 만나던 연애를 관두고, 회사도 관둔 채로 어떤게 잘 지내는지는 모르겠지만 잘 지내고 있다라는 인사와 함께 안부를 물었다. 삶에 있어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관두었지만 그래도 살아는 있으니 잘 지낸다는 답을 건넨 순간 정말 잘 지내고 있다는 착각도 들었다. 그리고 몇 번의 카톡이 오갔었고, 문득 만나서 잘 지냄을 확인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너 시간이 되는 아무 날이나 보자라는 말을 했었다.

그러자 회사가 바쁘니 시간을 좀 달라라는 말을 했으나 나는 회사도 바쁜데 내가 생각이 난건가라는 생각을 하며 밀린 집안 일을 하기 시작했었다.

청소를 하면서 아무 생각 없었는데 다시 잘 지내나요라는 말이 떠올랐다. 청소를 하는게 잘 지내는건가 그렇지 청소를 하니까 잘 지내는거지라며 불과 몇 분전 지저분 했던 책상과 방바닥을 보며 잘 지낸다는 말을 다시 떠올리게 되었다. 그 날 이후로 아무 일 없이 하루가 지났고, 자주 가는 편의점에도 아무 일 없이 지났고, 마트에서 장을 보는데도 아무 일 없었다. 아무 일없는 저녁이 지속되었고, 배가 고프면 밥을 먹고 졸리면 잠깐 낮잠을 잤다.

백수의 하루는 길었다. 12시가 되면 배가 고팠고, 밥을 먹고 잠깐 외출을 하고 카페를 가서 책을 봤다. 책을 보다가 뜬금 없이 창을 바라보는데 이건 잘 지내는건가 싶어 너에게 다시 카톡을 했었다.

잘 지내지 못했어

그런데 사실은 얼만큼 지내야 잘 지내는 건지 한동안 생각하다가 보내지 않았던 것 같다. 아마 지난 너와의 시간을 돌아보면 저 끝에서 여기까지의 기억이 선명한데 잘 지내지 못했어라는 카톡을 보낸 지 보내 지 않았던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기록이 없으면 기억이 사라지는 시대에서 내가 선택한 것은 약속이었다. 버스를 타고 가는 내내 버스의 미세한 진동과 사람들의 통화 소리, 흔들거리는 차 안, 창 밖에서 느껴지는 햇볕의 따뜻함으로 나도 모르게 잘 지내냐는 말에 잘 지낸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약속장소인 라멘집은 그 날 따라 사람이 없어서 한산했다. 먼저 도착해 있을게요라는 카톡이 온 줄 모르고 가게에 들어가니 너는 예전과 변함없는 모습을 한 채로 미리 앉아 있었다.

나는 오랜 시간 지났던 공백을 잊은 채 공간에 있었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며 지난 시간과 현재가 비슷했던 라멘의 맛과 반복되는 소멸의 과정처럼 지나간 시간을 보았고 동시에 현재 흘러가는 시간을 안타까워하며 잠깐이라도 붙잡고 싶었다.

-요즘 뭐하면서 지내는데 잘 지내지 못해요?

그 순간 잘 지낸다고 하지 않았나라는 생각도 들었는데 동시에 잘 지내지 못한다는 괜한 말을 했구나라는 생각도 들어 얼굴이 잠깐 화끈거렸다. 나이가 들면 융통성이라던지, 능글함으로 잘 굴러 갈 줄 알았는데 역시나 관계의 어려움을 느꼈다.

- 그렇게 말했었나? 나 잘 지내는데 뭔가 그렇게 말하고 싶었나보다. 요즘 좋아 시간도 많고 글은 계속 쓰고 있지?

- 네 그럼요 오빠는요? 소설 계속 써요?

- 응 꾸준히는 하고 있는데 이번에 안되면 끝내려고.

- 이번에 안되면 끝낸다 이런 말하면 되던데 그래도 꾸준하네요.

사실 그 꾸준함이란 내게 있어서 가장 취약점이었다. 쓴다고 쓰던 단편소설은 겨우 5장, 6장 그렇게 겨우 쓰고 나면 할 얘기가 떨어져서 결국 분량을 채우기 위해 늘리는 시간이 길었다.

그런 소설은 겨우 그런 글이었다. 겨우 읽다가 지칠만한 글들의 나열이었다.

이번엔 꾸준함과 잘 살고 있음이 중복되어서 꾸준히 살고 있음으로 변하는 순간이 되었다.

나는 꾸준히 살고는 있음.

- 회사는 어때?

- 똑같아요. 매일 반복. 야근.

- 다행이다. 사람이 다들 좋나보네.

직장과 삶의 고충을 공유하던 어느날 갑자기 너는 퇴사를 하고 사이버대를 등록했다고 했던 때, 대표가 술집을 가서 영수증처리의 곤란을 겪었던 것과, 몸과 마음이 먼 장거리연애의 고충과, 너 좋아라고 했다가 오빠 우리는..이라는 잊지 못할 순간의 표정과 목소리가 여전히 지금도 맴돌고 있는 것 같았다.

- 똑같아요 나이 때문에 참는거지. 아직도 여차하면 사직서 내려구요.

 처음엔 잘 지내냐는 말에 잘 지내고 있는 줄 알았는데 생각해보니 괜찮은게 하나도 없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직서 얘기가 나오자 백수인 지금의 상태가 떠올랐고 사실은.. 이라고 말을 시작해서 좋지 않아로 끝맺음 하려다가 백수도 나쁘진 않아라는 말을 했다.

이게 거짓말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진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나쁘진 않아라는 말이 좋다도 아니고 그렇다고 나쁘다는 아니니깐.

- 소설을 쓰다보니까 자꾸 곱씹게 되는 것 같아. 말 한마디도 요즘은 소중해 사람을 잘 안 만나거든 예전엔 대화를 하면 곧 사라지거나 의미 없었는데 요즘엔 자꾸 기억나

무슨 현상인지 모르겠는데 잘 지내냐고 묻는데 문득 내가 잘 살고 있는지 나도 궁금한거야

그래서 잘 지내는지 안 지내는지 모르겠는데 오랜만에 나 보니까 어때 잘 지내 보여?

- 오빠는 변화가 없네요.

변화가 없다는 말을 오랫동안 듣고 있다. 생각해왔던 것들과 행동의 사이 조금 덜 들뜨고 바로 가라 앉을 수 있게 기분을 지켜왔다.

살다보면 정말 아무 것도 아닐 때 가 있다. 아무 것도 아니다라는 말을 곱씹다보면 정말 큰 일이라도 아무 것도 아니기도 해진다. 그렇게 힘들었던 순간과 모든 불행이 쏟아질 때면 내가 가장 불행한 사람이라고 생각이 들 때도 있겠지만, 모든 것은 지나가기 마련이고, 그 일은 곧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

- 너도 예전이랑 똑같네 살이 좀 빠졌나?

- 요즘 아파서 잘 못 먹었어요.

그럼 잘 못 지낸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잠깐 내 어린시절을 돌아보면 그렇지도 않았다. 어린시절로 돌아가고 싶다고는 했지만 당시 내 일기를 보면 늘 몸살이나 몸이 좋지 않다라는 내용이 많았다. 그럴땐 일기를 보면서 이렇게 아팠는데도 잘 살아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나는 뜬금 없게 느껴졌겠지만 나도 아팠는데 죽지 않고 잘 살고 있으니 잘 지내고 있다라는 말을 했다.

- 잘 지내나요란 말이 그렇게 인상 깊었어요?

- 아니 그것보단

아니를 먼저 말했던 것은 아마 상대의 의견에 동의는 하지만 일단 반박을 하기 위해 시작한 무의식적인 습관이었다. 아니 그것보단 오랜만에 만나니 좋았어? 오랜만에 옛 생각도 나고 좋네 갑자기 일이야 연락도 하고 무슨 좋은 일있어? 뭐가 어울릴지 한참을 머릿 속에서 델리트와 입력을 거듭하다가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았다.


벌써 4년전쯤인가 아무 말이나 만들어서 했던 시절, 나는 퇴근을 하던 길에 문득 햄버거가 먹고 싶다고 카톡을 보냈다. 그러자 너는 그때 자기가 잘 아는 버거킹이 있다면서 농담을 건넸고 그럼 잘 아는 버거킹 소개 좀 해달라고 했다. 철산역에서 불과 3분정도 거리에 있던 버거킹의 알바생은 분주해보였다. 지금처럼 키오스크가 있던 시절도 아니여서 모든 주문은 어색하게 알바생에게 보내는 암호같은 신호처럼 보내는 목소리로 긴장을 하며 가장 기본인 와퍼세트 2개를 시켰다.

그때는 좀 더 자연스럽게 주문할 수 없을까라는 고민을 했었는데 요즘은 키오스크가 있어서 편했다.

- 그게 벌써 4년이나 됐다

- 그러면 오빠도 그 때 20대였네요

- 그런데 너도 벌써 30대

한 없이 진지할때도 있었지만 그냥 이런 유치함속의 가벼움이 좋았다. 나는 상대가 나와 무거운 얘기를 하다가 상대가 다른 상대와의 가벼움을 얘기할 때면 한 없이 먼 거리가 느껴졌고, 그런 가벼움을 가지지 못하는 관계에 대해서 부러움을 감춘적이 많았다.

- 아직 만 29세에요

- 진짜 30살만 되면 다 그러더라 내가 보기엔 32살까진 어려

- 오빠도 어려요.

- 어리다고는 할 수 없지

- 맞아요

- 오랜만에 봐서 어색할 줄 알았는데 이 시간 이후론 잘 지낼 것 같다.

실제로 그런 기분이 들었다. 바늘에 실을 잘 넣은 기분, 그리고 그 바늘로 옷을 꼬맬 시간. 그 말이 너에게서 먼저 나와서 좋았다.

- 오빠

- 응?

- 행복하자구요

- 무슨 일 있었던 건 아니지?

- 그럴리가요. 저도 잘 지내요.

왜인진 모르지만 자꾸 너한테만큼은 나를 털어 놓는다. 이래도 되는 거리의 관계일까 싶어서 두렵긴 한데 털어 놓다가 놓다가 어느정도는 막다가 놓는다. 반복하니 내가 어떤 표정일지 모른채로 있었다.

- 아 이런 표정이었구나

- 응?

- 저요. 저도 오빠한테 말했을 때 이런 표정이었을 거 같아요.

- 심각했지?

- 조금요 저만큼은 아니었겠지만.

- 맞아 사실 좀 못났었어.

거리에는 지나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 많은 사람들 틈에서 오늘도 잘 지낼 것 같은 사람들이었다. 분명 아닌 사람도 있을 것인데 그 순간만큼은 그랬다. 잘 지내냐는 말은 잘 지낸다라는 말로 잘 지내고 있음을 인사하게 만든다.

- 다음에 또 봐 맛있는거 먹자

- 연락 좀 하세요 어떻게 연락 한 번 없어요     

생각해보면 그동안 잘 지내왔던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초여름의 날씨, 신선하고 적당한 바람으로 계절이 만드는 사람의 마음은 한 낮의 작은 불평을 잊게 만든다. 언제 그랫냐는 듯. 작은 바람에도 어떤 감사함의 숭고함. 그런 작은 것들이 모이는 순간은 늘 아름답다. 해가 길어져 아직도 하늘엔 해가 있었고,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우울함과 행복이 교차하였다.

이제는 돌아 갈 수 없겠지라는 생각도 들었고, 돌아갈 마음도 없었지만 아무래도 돌아간다면 언제가 좋을지 고민했었다.

지금 이 순간 가장 행복했었던 때를 생각하라면 잘 모르겠다 아마도 쉽지 않을 것이다. 쉽지 않기 때문에 행복한 순간을 떠올리려 할 때 행복한 순간을 찾는 순간이 행복한 순간이 아닐까 싶었다. 행복한 순간에 불행한 순간이 더 쉽다면 아마 잘 지내지 못한 것일 수도 있으니까라면서 길을 걸었다.

쓰던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오래전부터 쓰고 싶었던 장면, 쓰고 싶었던 이야기가 다시 펼쳐지고 있다.

소설의 시작은 눈으로 가득한 계절에 잘 지내나요 라고 입김이 선명하게 그려지는 묘사로 시작될지도 모른다. 아마 그 장면은 러브레터라는 영화장면이 아니냐라는 생각을 하지만 일단 써내려가기로 했다.      

아 그리고 우리가 행복할때까지 행복하기까지 잘 지내자. 다음에는 잘 지내냐는 물음에 잘 지낸다라고 말을 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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