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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타는지성인 Mar 17. 2024

너무 소란한 마음


도어락의 비밀번호는 기억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손가락이 움직였다.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떨어지는 신발. 나는 너의 신발을 들고 다시 신발장에 놓는다. 왜 신발이 떨어지도록 보관해 둘까? 너는.

“왔어? 저기 정리해 놨으니까 가져가.”

여전히 소설을 쓰고 있는 모습이 한심해 보였다. 몇 년째 잡고 있어도 안된다면 다른 길을 알아봐도 좋지 않을까. 

“간다. 소설은 다 쓰면 보내줘.”

나는 그 모습을 뒤로 내 물건을 들고 너의 집을 나왔다. 완성될 때마다 너에게서 받은 소설은 그 이후로 오지 않았다. 그러니까 그게 너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그 해 겨울, 글쓰기 단톡방에선 공모전에서 네가 합격한 소식이 들렸다. 내 이름이 혹시라도 없을까 봐 수상소감을 봤다. 내 이름이 마지막 6번째에 있는 것을 보고 든 첫 번째 감정은 서운함이었다. 그래도 첫 번째여야 하지 않나. 서운한 기분이 팍 생겼다. 남자친구이자 소설과외수업강사였던 내가 마지막이라니. 나는 마지막에 내 이름을 지웠다 썼다 했을 너를 떠올렸다. 안 봐도 뻔하지.


글쓰기 단톡방에서는 이런 것들이 있는지 모를 것이다. 모르니까 자기들끼리 경사 났다고 축하나 하고 있지. 거기다가 너의 수상소감에 있는 이름들이 거슬리기까지 했다. 나는 일부러 메시지들을 읽지 않은 채, 평소엔 걷지도 않는 겨울거리를 걸었다. 옷을 더 껴 입고 왔어야 했다. 칼바람에 자동적으로 눈물이 떨어지며 정처 없이 동네를 걸었다. 정말 한심한 건 그때의 네가 아니라 그때의 나였다.


해연의 축하파티는 토요일로 정해졌다. 빠지면 안 될 분위기였다. 보고 싶진 않은데. 그래도 한 때 응원했던 사이였는데 가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들이 이상하게 볼 것 같았다. 아니 신경이나 쓸까.

우리가 자주 가던 동네에서 우리만의 공간을 빌려 축하파티를 열었다. 현수막에는 현대문학공모전 은상 수상 이해연으로 크게 걸려 있었다. 급조한 디자인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저렇게 걸 거면 디자인이나 신경 쓰지.


나는 시끄러운 분위기 속에서 혼자 와인을 마셨다. 예전에는 이런 자리엔 꼭 붙어 있었는데 지금은 최대한 멀리 떨어져 대각선에서 좋아하는 너를 본다. 축하해라는 한 마디를 보내는 게 이렇게 힘들다니. 사귈 동안 이 소심이라는 문제를 의식하지 못했는데 이제야 이해가 갔다. 나는 정말 소심 그 자체라는 걸.

글쓰기 단톡방에 친구들과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걸 빼면 우리는 평소와 같았다. 무슨 글이 좋은 글이냐 어떤 글을 써야 하냐 이제는 이해연작가님에게 글쓰기를 배우면 문제없다는 말들이 내내 우리의 파티공간을 채웠다. 나한테 배운 건 기억도 벌써 기억도 안 나는 거야?라는 생각에 나는 최대한으로 치졸해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결국 그 자리를 먼저 나왔어야 했다. 한동안은 글을 쓰지 않을 것 같았다.


그 날 이후 3일 내내 같은 꿈을 꾸었다. 꿈의 내용은 비슷했지만 해연이 나타나 문 안으로 사라졌는데 문을 열면 매 번 다른 형체가 나타나서 기억해라는 말을 남긴 채 사라졌다. 무엇을 암시하는 것인지 아니면 무의식 속의 무언가가 해연으로 꿈에서 나타나는 것인지 몰랐기 때문에 나는 더욱 꿈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해연에게 전화가 왔을 때 나는 유통기한이 지난 김을 분리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싸다고 생각해서 대량으로 구매한 김은 어느덧 유통기한이 지나 있었다. 시간이 나면 해야지. 그 다짐도 벌써 1달이 지난 상태였다. 나는 전화 통화버튼을 슬라이드 하고나서  나도 모르게 김을 음식물쓰레기봉투가 아닌 김 용기를 모아둔 재활용봉투에 넣고 있었다.

"이번주 토요일 시간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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