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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타는지성인 Oct 18. 2021

성수대교와 꼬칼콘

“그거 무슨 뜻이야?”


나는 이 전에는 없던 지현의 문신에 대해 물었다. 언젠가부터 문신을 보면 그 뜻이 궁금해졌다. 그래서 물어볼 사이의 거리가 되면 문신에 대해서 묻게 되었다. 말하지 않는 사람도 있었고, 알려주는 사람도 있었다. 알려주지 않으면 그 문신이 마음에 들어서 했거나 아님 예뻐서 했겠지란 막연한 생각을 하며 넘기기도 했다.


“카르페디엠.”


카르페디엠을 듣자마자 현재를 잡아라고 했던 죽은 시인의 사회 영화를 떠올렸다. 그제야 카르페디엠이라는 글자가 또렷이 보였다. 평소의 지현을 떠올리면서 지현의 이름과 현재라는 어감이 비슷해서 팔에 카르페디엠을 새겼을까라는 생각도 들었고, 보기에 예뻐서 새긴 것 아닌가라는 질문을 하고 싶었다.

지현이 무슨 문신을 했던 중요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문신을 하기 전의 마음과 할 때의 아픔이 궁금했다. 결국 그런 마음 같은 것들을 묻기 전에 나는 원초적인 질문을 했다.


“존나 아팠지?”


이렇게 말하려고 한 건 아닌데 지현에겐 자꾸 편하게 말하게 된다. 편해서일까. 아니면 지현과 나는 이런 단어가 어울리는 사이일까란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응. 그런데 참을 만 해. 더 아픈 곳도 했어.”

“어디?”

“엉덩이.”

“거긴 뭘로 했는데.”

“엉덩인 비밀이야.”


나는 지현의 엉덩이 문신을 떠올렸다. 지현의 엉덩이를 떠올린 건 아니고 비밀이라고 한 엉덩이 문신을 떠올렸다. 궁금하긴 했지만 동시에 알고 싶진 않았다. 비밀을 알게 되면 그 관계는 이 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비밀은 누구나 있는 법이고 비밀은 비밀로 남기고 싶었다. 하지만 엉덩이엔 살이 많은데 왜 더 아플까란 궁금증이 생겼다. 살이 더 많으니까 아프겠지, 맨 살을 찌르는데 왜 안 아프겠어라고 넘겨짚었다. 시간이 지나면 알고 싶지 않아도 알게 될 것이다. 그때 알면 될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더 이상 말을 잇지 않고 밖을 봤다. 가끔씩 더위에 지쳐 보이는 한국사람들이 지나갔다. 그들은 가게에 들어왔지만 마음에 들지 않았는 지 이내 다시 밖으로 나갔다.


지현은 시를 썼다며 내게 보여주었다. 이틀 전 꿈에 나온 전 남자 친구가 나왔다더니 전 남자친구와 함께 갔던 동작대교, 마포대교, 성수대교, 한남대교와 그와 먹었던 자갈치, 포테토칩, 꼬깔콘, 새우깡, 감자깡이 나오는 산만한 시였다.


“좋은 시네.”


지현 역시 밖을 바라보며 내가 오기 전부터 쓴 시라고 했다. 시를 보고 나는 평소의 지현을 떠올렸다. 내가 알고 있는 지현과 내가 모르는 지현이는 얼마나 다를지 문득 궁금해졌다. 이내 내가 알고 있는 지현이 지현이 맞는 지 만약 다르다면 낯선 기분이 들 것 같았다. 지현의 시를 보고 나서 그런지 지금 이 가게를 나가면 한강이 있을 것 같고 편의점이 있을 것만 같았다. 한낮에 마신 맥주의 취기일지도 몰랐다. 그런데 한강 다리들과 과자들의 조합이라니 생각해 보니 시는 너무나도 내가 알고 있는 지현같다는 생각이 들어 안심이 되었다.


“여기 나온 과자들 다 J가 좋아한 거다.”

“나도 꼬깔콘이랑 새우깡 좋아하는데.”

“응. 사 먹어.”


지현이 나를 보고 씽긋 웃었다. 나도 따라 웃으며 알았다 서울 가면 사서 먹을게라고 했다.


“나는 3달 후에 죽을 거야.”


뜬금없는 말에 무슨 말이냐는 질문을 했고 지현은 있어 보이잖아라고 말했다. 그것도 시의 일부냐라고 했더니 지현은 그렇다고 했다. 너의 세계는 완벽하게 구축이 되어 있는 것 같아서 이해가 어렵다는 말을 했고, 지현은 그저 웃으며 담배를 피우고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나랑 있으니까 심심하진 않지?”


지현과의 시간은 심심하진 않지만 이곳은 따분하며 모든게 평화롭다고 말했고 지현은 우린 여행자니까라고 말했다. 그 말에 나는 이런 공포스러운 따분함에서 따분함만 사라져 공포만 남을까 봐 겁이 났다.


“그런데 왜 3달 후야?”

“J랑 헤어진 지 3달이 지나서. 3달.”


지현은 한 모금의 담배와 맥주를 하고 난 뒤 다시 시를 고치기 시작했다. 나는 그게 무슨 상관관계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지현에게 3달의 의미가 있어 보였다.


“아직 J랑 완전 못 헤어졌네”

“왜? 나 그날 J랑 바로 헤어졌어.”


나는 맥주 한 잔을 더 주문했고, 지현의 시를 떠올렸다. 카르페디엠을 몸에 새긴 지현, 3달 전에 J와 헤어진 지현, 그리고 과거를 생각하며 시를 쓰는 지현, 그리고 3달 뒤 죽을 거라는 지현. 아직도 J와 완전히 헤어지지 못한 지현. 무엇이 진짜 지현일까.


한강의 다리와 과자들, 문득 한강에서 먹었던 치킨이 생각났다. 서울 가면 그 집 치킨부터 먹어야겠다로 시작한 생각은 한강의 다리까지 이어졌다. 그러다 성수대교가 무너진 건지 아니면 다른 대교가 무너진 건지 헷갈렸다.


“성수대교가 무너진 거지?”

“응.”

“다른 다리는?”

“다른 다리는 괜찮아.”

“그럼 지금은? 성수대교 위험한 거 아니야?”

“지금은 괜찮아.”


지현은 바다가 보고 싶다고 했고 나는 바다가 보고 싶다는 말에 바다가 아른거렸다. 그럼 지금 바다를 보러 가자는 말을 했는데 나는 바보스럽게 그게 시 같다고 느껴졌고, 지금 상황도 혹시 시의 일부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시 하나 생각났는데 들어볼래?”

“응”


나는 바다가 보고 싶다는 지현의 말에 갑자기 떠오른 시를 말했다. 의식의 흐름대로 말한 뒤 나는 끝이라고 말했고 지현은 그 사이 계속해서 사람들이 지나가는 밖을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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