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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타는지성인 Apr 18. 2022

1+1=?


어둠이 익숙해진 새벽, 자욱한 안개를 가로 지르면 마치 우리를 기다리고 있듯 두 남녀의 연극은 시작된다. 배우의 이름은 나와 있지 않은 그리 유명하진 않은 공연.

그다지 성공하지 못한, 그렇다고 실패한 배우는 아닌 그들의 연극은 어쩌면 우리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두 주인공은 누구를 위해서도 아닌 자신들만을 위해 새벽을 무대로 삼아 연극을 시작한다.


“저는 성장형 인간인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는 새벽하늘을 손가락으로 크게 저으며 말했다. 아주 천천히 움직이는 손짓은 밤하늘의 총총하게 있을 것만 같은 별을 그리는 듯 하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녀는 별을 사랑했다. 어린 시절 별을 사랑해서 부모님을 졸라 구입한 망원경은 그녀의 밤을 누구보다 풍족하게 만들어주었다. 그 중 그녀는 오리온 자리를 좋아했다. 그 중 유난히 밝게 빛나는 두 별이었다. 하나는 붉은 빛을 띠는 베텔게우스였고 그 별은 아빠의 별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푸른 빛을 띠는 리겔은 엄마의 별이라고 엄마에게 말했다. 그녀를 보는 부모님은 딸이 가지는 별의 관심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여겼다. 그녀의 별은 뭐냐고 물었을 때 그녀는 밤하늘에서 가장 빛나는 별인 시리우스라고 말했다. 그녀의 이런 과거의 기억을 몰랐을 남자가 별자리에 대해서 말하려는 순간 여자가 먼저 말했다.


“원했던 키가 아니었던가요?”


그는 여전히 촘촘히 빛이 새겨진 새벽 하늘의 별을 보며 말했다.  


“170은 넘겼으니까 이 정도면 된 거 같아요. 네. 충분하죠. 대한민국 남자 평균키 174cm 해가 지날수록 평균 신장은 높아지고 있지만 그래도 제 키보단 아직 평균은 한 참 낮은걸요. 말이 길어지는 것 같지만 사실은 아주 조금은 키가 조금 더 커지길 바랬던 적은 있습니다.”


어쩐지 그가 슬픈 표정이 된 것 같다고 느껴진 그녀는 짓궂은 농담을 했나 싶어서 조금은 무안함을 느끼는 것 같았다.


“농담이에요. 발끈하시긴. 저는 키가 너무 큰 사람보단 평균보다 적당한 키가 좋더라구요.”


여자는 남자가 별에 대해서 말할거란 걸 알고 있었다. 별에 대해서 대화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이었다. 살랑이는 바람과, 새벽의 습도, 그리고 충분히 감성적인 시간, 약간 졸린 듯 하지만 긴장감이 공존했다. 그리고 둘만의 온기까지 더 할 나위 없이 별을 얘기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가 다시 말을 잇기 위해 목기침을 하며 목을 풀었다. 그녀는 이제 그가 무슨 말을 할지 기다렸다.


“지구에선 이미 많은 시간이 지난 과거의 별이 보이는거라고 하던데 어쩌면 인간관계도 모두 마찬가지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구에서 보는 별처럼, 각자의 많은 시간을 보낸 인간과 인간이 만나는 일이 우주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꽤 멋있는 일 아닌가요.”


그는 계속해서 자신의 말을 이어갔다.


“저기 멀리 떨어져 있는 별은 우주에서도 얼마나 먼 곳일까요. 궁금해요. 저기서 지금 저희를 본다면 완전한 먼지처럼 보이지도 않을 것 같은데 저 별은 얼마나 크고 빛날까 싶어요.”


그녀는 그의 말에 작은 의문심이 아닌 약간의 불만을 가지는 것처럼 보였다.


“온전히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서 그 사람의 과거를 안다고 모두 이해할 수 있을까요? 아마 개인의 경험으로 판단하게 될텐데.”


“별을 오랜만에 오랫동안 봐서 조금 들떴어요. 당연히 아니죠. 과거의 시간을 온전히 받아들일 준비가 된겁니다. 희노애락 모든 감정, 행복했을 때, 화났을 때, 슬펐을 때, 기뻤을 때를 기억해주고, 보관해주고, 손 잡아주고 함께 걸어가는겁니다. 그러면 더 의미가 생길 것 같아요. 그렇게 지구와 꽤 오랜시간을 동행해왔거든요.”


불현 듯 둘의 주위에는 45억년이란 억겁의 시간이 감싸는 듯 해보였다. 그렇게 유한했던 시간은 무한한 시간에게 자리를 내주었고, 무한에 쌓인 그와 그녀는 아주 천천히 눈동자를 깜빡이고 숨을 천천히 쉴 수 밖에 없었다.


“시간이 멈춘걸까요?”


그녀는 알 수 없는 상황을 본 것 같아서 그에게 물었다. 처음을 맞이하는 순간에는 설렘과 불안함이 공존함을 느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의 경험을 감각 하나 하나가 뚜렷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녀의 부모님이 사고로 돌아가시던 날, 그녀는 방에서 한동안 나오지 못했다. 그리고 망원경을 볼 용기도 나지 않았다. 지구의 모든 불행이 자기 자신에게 집중된 듯한 생각을 들었다. 이런 불행에 헤어나지 못한 채 무의미한 시간이 지났다. 시간이 흘러 그녀의 집에 망원경은 볼 수 없었다. 망원경을 볼 용기가 없어서 그녀가 직접 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한동안 그녀는 베텔게우스와 리겔을 생각을 하며 버텼다. 그건 곧 아빠와 엄마였다. 그녀는 고등학생을 지나 대학생이 되었다. 천문학자의 꿈을 가졌던 그녀는 천문학과가 아닌 수학과를 택했다. 그녀는 이후 우주를 기웃거렸고 그 결과 부전공은 천문학을 택했다. 마치 운명처럼 다시 천문학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그녀의 과거를 보게 되었다. 무한한 슬픔이 느껴졌고, 그 슬픔을 잘 이겨낸 그녀가 대견스럽다고 느꼈다.    

그는 살아오면서 알게 된 슬픔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존재한다고 믿었다. 그 중 그가 생각하는 슬픔이란 가능성에 대한 믿음이었고 점차 희박해지는 가능성에 대한 슬픔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선명하게 사라지는 것들은 그에게 대개 소중한 것들이었다. 불가항력적인 이별의 순간들, 그가 선택한 이별의 순간들이 가능성에 대한 슬픔이었다. 슬픔은 될 수 있으면 빠르게 잊혀져야 했다. 슬픈걸 슬프다고 하기 전에 처리 해야 할 일들이 있었다. 그리고 해야 할 일을 만들어서 했던 그에게 슬픔은 곧 사치였다. 그는 그녀가 잘 이겨낸 슬픔을 생각했다. 어쩌면 이 찰나의 순간에도 계속해서 가능성을 위해서 부딪혀야 하기 때문에 가능성이 희박해 보이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제 고민들이었어요. 주로 슬픔에 대한 것들었네요. 갑자기 궁금한게 생겼는데 이대로 시간이 멈춘다면, 우리는 어떤 감정에서 무한한 시간을 보낼지 궁금해졌어요.”


“고민이 어졌다니 다행이네요. 저는 지금 감정이라면 좋을 것 같은데요. 오랜만에”


“좋다니 다행입니다. 덕분에 저도 그래요.”


해가 뜨기 시작했다. 하늘이 검붉어지면서 환해지기 시작하면서. 그는 밤을 새면서 술을 마셨던 지난 날을 떠올리며 새삼 이 상황들이 낭만적이라고 생각하는 듯, 해를 보며 새로운 하루를 떠올렸다. 그리고 곧 그녀에게 질문을 한다.


“지금 우리의 이 시간이 만약 연극이라면 관객들은 어떻게 볼까요?”


“음.. 지루할 것 같은데요. 연극을 많이 본 건 아닌데 보통 연극은 총이 나오고 쏴죽이고 그러지 않나요?”


“무슨 연극인진 모르겠지만 과격한 연극 같네요.. 그에 비해 우린 별얘기나 하고 있으니 아마도 졸고 있겠죠?”   

 

“그럴지도요.”     

1+1= 의미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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