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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타는지성인 Apr 19. 2024

보고 싶어요



그 해 겨울, 한 해를 버티지 못할 거라 했던 병원의 말과는 달리 아버지는 계속해서 건강을 찾아가고 있었다. 나는 내 어린 시절을 아버지의 사업에 따라 우리 가족은 오사카에서 도쿄로 다시 도쿄에서 오사카로 옮겨 다니는 생활을 했다. 오사카와 도쿄 중 우리는 오사카에 더 오래 있었으므로, 나는 내 정신적 고향은 오사카라 여겼다. 

나는 부산에서, 오사카에 있는 아버지의 소식을 어머니로부터 듣는다. 오사카를 떠나 부산의 생활은 큰 결심이었다. 바다 건너, 네 할아버지가 살았던 곳이 있단다. 그곳은 너와는 다를지 몰라도 네 피가 흐를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단다.라는 말을 언젠가 할머니에게 들었을지 모른다. 나는 그 말을 하루는 기억했고, 이틀은 잊고 지내며 오사카의 생활을 정리해가고 있었다.


부산에서 만난 아내는, 한글을 가르치는 한국어교사였다. 할아버지는 집에서 한글을 쓰면서 내게 기본적인 자음과 모음을 알려주곤 했다. 나는 그 기억이 선명하여 지금의 아내를 만났지만, 아내와는 결국 이혼을 했다. 


부산에 온 이후로 어머니는 종종 할머니와 함께 부산에 오곤 했지만 아버지는 한 번도 부산에 오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옛날 이곳에서 살았다고 했다. 처음 부산에 도착했을 때, 김해공항에서 들렸던 한국어가 익숙하게 들렸다.

어서 오십시오. 여기는 부산입니다.

나는 할아버지에게 한글을 배운 적이 있으므로, 어설프게라도 방금 들은 말을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서 오시시오. 여기는 부산이니다.


한글을 쓰다가 실험을 하던 용기를 놓쳐 깨졌다. 실수로 닿은 피부에 즉시 중성제를 부었지만 피부는 타 들어갔다. 그날 저녁 오사카에 있는 어머니로부터 연락이 왔다. 이제 아버지를 떠나보낼 준비를 해야 한다고. 나는 서둘러 오사카행 비행기를 예약했다.


새 해가 되면서 우리 가족은, 그리고 아버지에게 한 해를 잘 보내왔으니 이번 연도에도 잘 보낼 수 있을 거라는 말과 모두가 건강하자는 말을 했던 적이 있었다. 아버지는 할아버지와는 다르게 한글을 쓰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쓰던 말들, 글들은 비밀이었고, 나는 할아버지와의 비밀시간을 즐겼던 것 같다.


안녕하세요.

곤니찌와.

보고 싶어요.

아이타이.

사랑해요.

아이씨떼루.

잘 자요.

오야스미나사이.


아버지는 끝내 할아버지가 살았던 부산에 오고 싶어 하지 않았다. 나는 그게 늘 궁금했지만, 물어보지 않았다. 궁금해하지 않아야 하는 것. 아버지가 평생 동안 지켜오던 일이었다.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을 끝내 알지 못한 채로 돌아가신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마지막으로 아버지를 보고 싶다란 말을 남기며 돌아가셨다고 했다. 아버지는 아버지를 보고 싶었던 것 같다. 나는 아버지의 유골함을 들고 어머니와 함께 부산으로 갈 준비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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