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불타는지성인 Aug 21. 2023

M의 세상

주머니 속의 동전을 닳듯이 만지는 것 세혁의 오랜 습관이었다.    

  

- 500원짜리 만지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져?     


한낮 35도를 기록한 날씨와는 달리 새벽은 버틸만했다. 2018년 이후 최대 폭염이라는 뉴스와는 달리 사람들은 생각보다 버틸만하다는 말을 많이 했다. 그런 말들을 듣고 더운 건 더운 거다라고 한 사람은 세혁보다 2년 먼저 입사한 선배인 민철의 말이었다. 그래서 최초의 M1을 개발한 연구원이기도 했다.     


- 요즘 몇 시간도 주무시지 못하는 것 같네요.     

- 걱정이 많아. 너 상처도, M1도 잡을 수 있을지, 그나저나 상처는 조금 괜찮아진 것 같은데 조금씩 움직여봐.     

- 안 그래도 화장실은 이제 혼자 가기 시작했어요.      


세혁이 어떤 정체 모를 괴인의 칼에 찔린 이후 주변에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구급대원이 금방 출동할 수 있었다. 세혁은 곧바로 의식을 잃었다. 시간이 지나서 세혁이 눈을 떴을 때 세혁은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다행히 급소를 비껴갔기 때문에 살아날 수 있었다고 했다. 뒤늦게 밝혀진 사실은 흉기로 세혁을 공격한 건 다름 아닌 M1이었다고 한다. 세상 밖에 M1이 발표되던 날, M1은 세상을 보다 발전할 수 있는 역할을 할 것이라 말했다. 프로젝트는 M1으로 시작해서 M8까지 구상한다고 했다.     

M1은 처음부터 실패할 수밖에 없는 모델이었다고 민철은 말했다. 처음 감정을 느끼는 로봇인 M1이 만들어졌을 때 아주 기본적인 감정에 반응을 하는 것으로 설정이 되었다. 이를테면 상대방이 가하는 행동이 곧 감정의 기준이었다. 충격이 가해지면 고통으로 인식했다. 또한 누군가 보상을 해줄 땐 행복이고 누군가 아파하거나, 죽는다면 슬픔이라는 감정이 작용했다고 했다.       


- 단순하지만 그럴듯했었어요. 그때 M1은 슬퍼 보였거든요.     


세혁이 느낀 M1의 첫인상이었다. 가장 기본적인 감정인 고통, 행복, 슬픔을 느낄 수 있는 인공지능에 대한 첫인상이었다.     


- M1이 너를 찌르면서 고통을 공감했다는 거야?     


- 네 선배, 그런데 M2는 어때요? 그런 게 없다고 하던데 M1보다 M2은 업그레이드되지는 않았나 보네요.    

 

- 로봇의 업그레이드가 뭐라고 생각해?     


- 인간을 대체할 수 있는 무한한 생명의 로봇이라던가, 언젠가 인간을 뛰어넘는 존재로 발전된다거나 스스로를 업그레이드하여 결국 인류를 뛰어넘는 로봇이 인간을 정복하는 것이 아닐까요?     


여름 새벽은 어느 새벽보다 조용한 듯했다. 세혁은 이어서 말했다.    

 

- 아니면 현재 수준에서 인간보다 더 인간 같아지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민철은 웃으며 말했다.     


- M1보다 M2가 더 복잡했다면 인간다웠겠지만, 우리는 인간을 만드는 회사가 아니야. 너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 일 말이야. 사명감으로 일 해.      

그래서 감상에 취하면 안 돼. 우리도 철저히 이성적이고 계산적이어야 해. 우리가 감성적이게 되면 이 로봇은 로봇이 아니게 돼. 그건 인간이야. 인간의 이성으로만 만들어진 감성적인 로봇.     


세혁은 다시 M1을 생각해야 했다.      


- M2에 피가 도는 건 그것 때문인 건가요?     


M2의 몸에 피가 들어가야 했던 이유는 철저한 사용자 중심으로 생각한 결과였다. 적어도 M2와 함께 하는 인간은 오랜 시간 동안 로봇이 아닌 동반자여야 한다는 점, 그리고 M2의 피부에 해당하는 겉이 파손을 당했을 때 이 존재 역시 당신과 다를 것 없는 인간과 비슷한 점을 지속적으로 상기시켜야 했던 것이었다.     


- 안타까웠어.     


- 인간보다 더 인간처럼 될까 봐요?     


- 아니 본질은 그게 아닌데 자꾸만 흉내만 내는 것 같아서.     


- 사람들은 우리의 생각은 다르니깐요.     


민철은 M1과 피를 주입한 M2를 생각하는 듯했지만, 말을 더 이상 잇지 않았다. M2와 사용자의 관계는 대부분 M2가 사용자를 보조하는 형태가 된다. 간혹 사용자가 M2를 보조할 때도 있었다. 이것이 M1과 M2의 프로그래밍 차이였다. 사용자와의 관계에 따라 스스로 학습하면서 관계를 새롭게 정의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문제가 생기기도 했다. M2의 이상이 발견되기 시작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 이만 간다. 푹 쉬고 있어.     


민철은 세혁의 어깨에 손을 얹고 인사를 건넸다.     


- 무리하지는 마요. 빨리 복귀할게요.     


*     

그날 이후 M1이 자살을 했다. 민철 선배와 모든 연구원을 비롯해서 충격에 빠졌다. 슬픔이 철저히 계산되어 자살로 계산된 M1의 행동은 그전까지의 데이터에도 없는 행동을 보여주었기 때문이었다.

인간의 자살과는 다른 형태였다. 어떤 마음과 마음이 닿았을 때 결과로 나타나는 자살은, 복잡한 인간과는 달리 단순했다. 이후 연구소는 M1에게 더 이상 슬픔의 감정을 제공하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찬성과 반대의 목소리가 팽팽했다고 했다.

민철선배 역시 반대의 입장이었다. 인간이 살면서 느끼는 감정에 슬픔이야말로 삶의 원동력을 만든다는 것에 있었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며 슬픔이란 감정을 생각했다.


 *

취직을 준비하면서 로봇의 세상을 상상하며 웹툰을 그렸다. 내용은 로봇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인간이었고, 인간인 줄 알았는데 로봇이었다는 반전의 내용을 담은 단편 웹툰이었다.

인기는 없었고 일부 댓글에는 너무 흔한 클리셰 덩어리의 로봇이야기가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다. 그리고 실제로 10년 전 그렸던 웹툰의 내용으로 현실을 마주하니 한동안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웹툰의 주인공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 언젠가는 다시 웹툰을 그리는 것도 한동안 은퇴계획에 넣었다고 말했다. 그럴 때마다 민철선배가 장난치며 특유의 놀리는 듯한 억양으로 꾸짖듯 말했다.     


- 너 보안유지서약서 다시 읽어야겠다.     


그리고는 이어서 말했다.   

  

- 너는 이 일에서 희망적인 걸 보는구나?     


- 생각보다는 비관적인 건 아닌 것 같은데요.    

 

- 그 생각이 바뀌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전 18화 45억년의 시간을 여행하는 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