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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운 Jul 16. 2023

엘리베이터 여행


1.     

엘리베이터여행이라고 들어본 적이 있어? 뭐 특별한 건 아니고 아니 특별하지? 상상이 만든 것을 실제로 구현한 것이니까? 엘리베이터에 층수를 누르기만 하면 되는 거야. 방법은 간단해 특수용 옷을 입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들어가서 원하는 층수를 누르는 거야.

-세상을 바꿀 E.T-      


세상은 빠르게 변했고 10초 내외 광고들은 사람들의 삶의 모든 곳에 침투했다. 문 앞을 나서면서 아날로그적 향수가 느껴지는 전단지가 밑으로 떨어졌다. 나는 틀림없이 퇴근 후엔 집으로 들어가면서 아침에 떨어진 전단지를 주울 것이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 디스플레이에서 나오는 광고를 보게 되고, 지하철을 기다릴 때 스크린 광고를 보게 된다, 지하철에 카드를 찍을 때 나오는 광고음은 익숙하다. 지하철을 기다릴 때 지루함을 조금이나마 없애 줄 홀로그램형 체험 광고들로 포인트를 쌓는다. 그렇다. 지금의 광고들은 모두 포인트가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모두가 1분이라도 그냥 보내는 것이 없었다. 사람들은 지루함을 싫어했고, 포인트는 필요했다. 광고는 사람들의 니즈에 맞게 발전해 왔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원하는 수요는 계속해서 증가했다. 공급은 늘 부족했다. 사람들은 늘 포인트에 대한 갈증을 느껴야 했다. 광고회사들은 알고 있었다는 듯 그 상황을 100% 이용했다. 엘리베이터 여행이 세상에 나왔다. 줄여서 E.T. 아주 짧게도 임팩트 있게 기억이 남지 않나? 네이밍이 기가 막힌 것 같았다. 스티븐스필버그의 이티를 알고 있는 8090세대에게도, 지금 한참 사회의 주요층 0010세대에게도 이제 막 성인이 된 2030 세대들에게도 말이다. 생각해 보면 모든 세대에게 잊히지 않을 기획 하나로 단숨에 매출을 올려서 또 한 번 성장한 셈이다. 후기를 보면 VR과는 다른 느낌이다, 땅에 딛는 또 하나의 현실을 마주한 것 같다는 말이 많았다. 후기는 포스팅할 사람을 구해서 원고료를 준다. 원고료를 받은 사람은 굳이 단점을 쓸 필요가 없다. 신제품에 놀라는 척, 새로운 척, 진심이 섞인 정보를 잘 풀어주면 된다. E.T는 채용시장도 늘렸다. 실업률이 증가하고 있는 이때, E.T로 인해 늘어나는 취업률로 국가차원에서 더욱 발전시켰다. 관련 주식은 몇 배나 오르고, 관련 회사들도 많이 생기기 시작했다. 나는 이 현상을 일찍이 경험했다. IT가 유행했을 때, 우후죽순 생겼던 IT회사들이 거품이 빠지자마자 망한 게 코로나가 끝난 2022년이었으니까. 그러거나 말거나 E.T엔 많은 사람들이 지원을 했고, 그리고 그들은 합격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가상의 공간에서 일을 했지만 그럼에도 늘 인력은 부족하다는 기사가 나왔다. 직접 E.T에 접속하여 고객과 함께 산책을 한다던가, 가이드를 한다던가라는 식의 단순하고도 복잡한 이 일은 사교성이 좋거나 관련 테마에 잡다한 지식이 필요로 했기 때문에, 사람을 대하는 성격만 좋다면 문제없이 일을 할 수가 있었다. 나는 문득, 현실이 이곳인지 그곳이 현실인지 구분이 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어차피 나와는 상관없을 일이라 생각했다. 내가 하는 일은 그저 고리타분한 서류를 작성하고 서류를 잘 보내고 잘 받는 일이니까 말이다.      

얼마 전까지 취직이 안된다고 한탄하던 그가 E.T 회사에 취직을 했다는 연락이 왔고 그는 나를 점심시간을 활용해서 만나고자 했다.

“여기가 그 회사야? 생각보다 나랑 가까운데 있었네.”

진석은 유니폼을 입고 있었는데 유니폼이 꽤 어울렸다. 진석을 만난 진 적어도 1년은 넘은 듯했지만 언제 만나도 익숙한 동생이었다.

“형, 이렇게 보니까 좋네요.”

나는 진석이 그 일을 맘에 들어하는지 궁금했다. 현실과 그곳에서의 현실, 현실에서의 가상현실, 뭐 이런 것, 그러나 묻지 않았다. 그걸 묻기에는 진석은 취직으로 괴로워했기 때문이다.

“응 진석아, 일 할만해? 어려운 건 없고?”

그동안 아무 일도 못한 채로 시간을 보냈으니, 지금 이 시간은 그저 즐거울 뿐이다라고 진석이 말했다. 나는 그 뒤로 아무것도 묻지 못할 것 같았다. 진석은 E.T를 한 번 체험해 보라며 무료이용권을 한 장 주었다. 

“형 사실은 이런 거 영업이긴 해요. 저는 아는 사람도 없고 영업소질도 아니잖아요. 괜히 미안하네요. 그래도 한 번 체험하러 오세요. 이거 50만 원은 넘는 티켓이거든요.”

나는 미안해하는 진석이에게 전혀 그럴 필요 없다, 오히려 내가 도울 일이 있으면 최대한 도와주겠다는 말로 대신했다. 그리고 이번 주는 시간이 없어서 힘드니 다음 주에 놀러 가겠다고 말했다.     


2.

E.T는 들어서자마자 다른 세상 같았다. 가장 인기 있는 테마는 15세기 르네상스였는데 사람들을 압도하는 예술작품 때문인 듯했다. 나는 분위기에 홀렸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광고로 인해서 E.T의 인식이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았는데도 건물을 들어온 것만으로도 마음을 바꾼 것이었다. 관리비 같은 게 엄청 들겠다는 혼잣말을 모르게 할 정도로 몰입했다는 것도 인정해야겠다.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해서 나는 더 나아갔다. 진석이 준 무료티켓은 3가지를 갈 수 있는 티켓이었다. 하루에 다 쓸 필요는 없었다는 안내를 받았고 나는 그 점이 맘에 들었다. 그러나 다른 사람에게 양도는 불가능하단 말을 들었을 때, 2번이 더 와야 한다는 것에 대해 생각을 했다. 반드시 와야 하는 것도 아닌데도 말이다. 그만큼 거부감과 체험하고 싶은 공존이 동시에 생기는 모순을 느껴야 했다.

나는 15세기의 르네상스를 골랐다. 미술사는 모르는 분야지만 르네상스 관련이나 미술 전시를 갈 때면 르네상스의 정신이 인간 철학사와 맞아떨어진다는 점에서 흥미를 가졌다. 사진이 나올 후기 미술은 어땠는가. 그때부터 미술은 사진처럼 정확한 사물의 표현이 아니라 스스로의 의미를 찾기 위해 미술 그 자체가 되었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현대미술?

엘리베이터는 3층이 자동적으로 눌러졌다. 3층이 되고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겁탈당하는 가니메데스>가 상상도 못 할 크기로 우뚝 서 있었다. 나는 그 압도감에 한동안 바라보고 있었다. 그동안 압도감 있는 스케일의 미술전시를 봐왔지만 이번에 본 건 소름이 돋을 정도로 아찔한 느낌을 주었다. 제우스는 자신의 술을 따라 줄 존재를 인간세계에서 찾고 있었다. 그중 적임자는 가니메데스였다. 왜일까? 제우스가 탐 낼만한 꽃미남이라서? 가장 옆에 두고 싶을 정도로 맘에 들어서? 어쨌든 하루아침에 아들을 잃은 그들의 부모는 신을 원망해야 할지도 모른 채, 슬퍼했을 것이다. 신들은 슬퍼하는 부모에게 그들은 말과 포도나무를 주었는데, 부모의 입장에서 그런 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었다. 나는 그래서 신이 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제우스가 납치한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인간으로 선택할 수 있는 자살?, 아님 대항? 그것도 아니라면 가니메데스처럼 그저 신이 내린 운명이라 생각하고 살아가는 것? 나는 그런 삶을 살고 싶을 것 같진 않았다. 그러나 자살을 할 용기는 더더욱 없었다.     

“이 쪽으로 오시겠어요?”

또 하나의 문이 열렸다. 주변의 조명이 꺼지고 깜깜해졌다. 별자리가 보였다. 별자리가 촘촘하게 이어졌다. 둥글게 이어진 12개의 별자리는 점성학을 발전시켰다. 나는 왠지 내 운명이 궁금해졌다. 가이드가 말했다. 

“르네상스가 찬란했던 것만은 아닙니다. 저길 보시죠.”

그곳에는 끔찍한 광경이 펼쳐졌다. 사람들은 전쟁과 흑사병, 정치분쟁등으로 고통받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예술이 탄생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중엔 내가 있었다. 저들의 고통과는 다른 정신적 쾌감만을 위한 이 프로그램. 아마도 반대의 면을 보여주는 것은 E, T가 의도적으로 넣은 장치일 것이다. 그러나 그 순간은 짧았다. 아마도 우리는 이 것까지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았다.

“더 걸어가 볼까요?”

나는 15세기의 로마를 걸으면서, 될 수 있는 한 좋지 않은 것을 외면하고 15세기의 화려함을 담고 싶었다. 지나간 역사이기에, 찬란한 것만 보고 싶기에, 그런 생각을 가이드는 당연하다고 말했다. 고객이 원하는 대로 맞춰준다는 말과 함께. 

그러기엔 이곳은 왠지 불편했다. 마음 한편에서 외면하고 싶은 장면들을 돌아보게 만들었다. 어째서인지는 몰랐다. 흑사병을 보면 달라질 게 있을까? 전쟁을 보면 달라질 게 있을까? 나는 그런 고민 끝에 르네상스를 발전시킨 15세기의 인본중심의 미술작품이란 곳으로 서둘러 발을 돌렸다. 작품은 모두 살아있는 듯한 강렬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작품이 워낙 대규모의 크기다 보니 디테일한 구성이 눈에 들어왔다. 알 수 없는 경외감, 느낌 표현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그림이지만 눈동자에 압도되어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눈동자는 분명 타오르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계속 머릿속에 빛이 없는 곳이 맴돌았다. 빛이 없는 곳에서는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전쟁으로 많은 사람이 죽었다. 가이드는 문제의식은 가질 수 있으나, 빛이 없는 곳으로는 가지 말라고 한다. 나는 가이드가 난처할 거라는 걸 알면서도 어떻게 되는지 물었다.

“어떻게 되는지는 저도 모릅니다. 한 번도 가진 않았거든요. 매뉴얼에도 없는 것은 저희도 알 수 없습니다.”

일어난 역사다, 바꿀 수 없는 역사, 내가 그들의 미술품에 압도된 것만큼 나는 그들의 역사에 압도당하고 있었다. 내가 보고 싶은 것은 어쩌면 그 반대편의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인간들의 욕심과 배신과 정복, 저항, 분개일 것만 같았다. 나는 가이드가 미처 손을 쓰기 전에 빛이 없는 곳을 향해 뛰어 들어갔다. 그 순간 세상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약간의 충격을 받았다.    


3.

나는 엘리베이터 안인 현실로 돌아왔다. 엘리베이터는 그 이후로 3시간 정도 수리를 해야 한다고 했다. 나의 돌발행동으로 인해 시스템이 오류가 나면서 나를 아웃시켰다는 설명을 했다. E, T는 만에 하나 폐소공포증이 있는 고객을 위해서도 하나의 장치를 심었다. 그건 엘리베이터의 투명화였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심리적인 안정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앉아서 조금 전의 상황을 복기했다. 르네상스의 화려함을 거부한 것일까? 그저 전쟁을 가리려는 E.T의 의도를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일까. 이건 나의 삶의 태도에서도 중요한 역할이었다. 나는 커피를 먹는다. 하지만 먼 이국에서 커피를 생산하는 소년을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옷과 신발을 산다. 하지만 먼 이국에서 옷과 신발을 생산하는 소년을 생각하지는 않는다. 나는 단순히 그 순간의 충동으로 정의로워 보이고 싶었던 것 같다. 나는 광고의 포인트를 모아 왔다. 이곳을 나가게 되면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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