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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타는지성인 Jul 27. 2023

45억년의 시간을 여행하는 법

여자는 운이 좋게도 비행기 티켓을 싼 값에 구입할 수 있었다. 여자는 여행기간 동안 가고 싶었던 명소와 맛집을 통해 사람들을 만나며 즐거운 여행을 했다. 그러나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이 가까워질수록 갔던 명소와 맛집들은 줄어들었으므로 여자는 더욱 즐거운 여행거리나 추억을 남겨야 한다는 생각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 여자에게 한 남자가 다가왔다. 남자는 평범한 여행객의 복장이었고 한국사람이었다. 남자는 곧 자신을 소개를 하며 여자의 경계심을 풀어보려고 했다.

“안녕하세요. 여행 중이라면 하루 정도만 저랑 동행해 주시겠어요?”

여자는 한 때 여행지에서 만나는 로맨스를 상상한 적이 있었지만 남자의 외모는 여자의 로맨스를 채우기엔 부족했다. 그러나 남자의 헤어스타일과 복장을 봤을 때 여행을 많이 다니는 자유로운 사람인 듯한 느낌이 들어서 남자의 제안을 받아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어디를 가는지, 무엇을 하는지 말해주면요.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남자는 여기서 1시간 정도의 거리인 시골 별장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거기서 아무것도 할 일이 없을 거라고 말했다. 대신 잊지 못할 여행이 될 것이며, 오래도록 이 순간이 힘이 될 것이란 말도 했다. 여자는 그렇게 홀리듯, 남자를 따라서 택시를 탔다. 여자는 지금 내가 뭐 하는 거지? 미친거아니냐라는 생각을 했고, 친구에게 이상한 곳을 간다는 메시지를 보냈지만 한국은 새벽이므로 답변은 오지 않았다.

도착한 곳은 지평선이 보일 것 같은 넓은 평야였다. 그곳에 조그만 별장이 보였다. 가까이 걸어가니 별장은 생각보다 컸고 누울 수 있는 편한 의자도 있었다. 

“이 집을 빌렸는데 생각보다 크고 좋네요. 오늘 여기 앉아서 아무 말 없이 하늘만 계속해서 바라볼 겁니다.” 

“아무것도 안 하고 앉아서 하늘만 봐요?”

“네. 궁금한 거 있으면 지금 다 물어보세요. 저기 의자에 앉은 이후엔 아무 말도 안 하고 앉아있을 거니까요.”

여자는 수많은 질문들이 떠올랐다. 너는 누구냐, 언제까지 볼 거냐, 숙소는 가게 해줄 거냐, 아무것도 안 먹을 거냐, 그리고 이걸 왜 나한테 제안하는 거냐. 여자는 여행의 마지막에서 알 수 없는 기분을 느꼈다. 남자는 해가 되지 않을 것 같았고, 왠지 여기에 오는 것이 이 여행에 퍼즐 마지막을 맞추는 것만 같았다.

남자와 여자는 나란히 앉아서 하늘을 봤다. 날이 적당히 따뜻했고 적당히 시원하고,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온통 낯선 환경에 신경 쓰느라 긴장했던 몸이 긴장이 풀리자 졸리기 시작했고, 여자는 잠깐 잠이 들었다. 얼마나 잤을까, 잠이 깨자마자 여자는 남자를 봤는데 남자는 여전히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 걸까, 여자는 더 궁금해졌다. 여자는 하늘을 계속 바라봤다. 해가 지고 노을이 생겼고, 서서히 어두워지면서 달이 뜨고 별이 보였다.     


알 수 없는 별들이 각각의 자태로 빛나는 밤, 45억 년의 시간 동안 여자는 눈물을 흘렸다.     


있잖아. 나는 예전부터 항상 궁금했어. 하늘을 가만히 몇 시간째 바라볼 수 있을까. 구름이 저렇게 빨랐던가. 하루에 얼마나 많은 횟수로 태양은 구름에 가려질까. 해가 지는 순간이 이렇게 길었던가? 달이 뜨고 별이 보이는 시간은 얼마나 긴 시간일까. 별이 이렇게 많았었나? 

오늘 하루 긴 시간을 아무 말 없이 하늘을 보면서 나도 천천히 사라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아까 하늘이 어두워질 때 내가 알고 있었고, 봐왔던 것들이 사라져 가면서, 기억하고 싶었어. 내가 사라지면 어떤 사람들이 나를 기억해 줄까라는 생각이. 그리고 이런 황홀한 순간을 다시 경험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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