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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타는지성인 Sep 12. 2023

광장


9월이지만 한 낮은 여름의 한 낮 보다 더 힘들다고 생각했다. 타지에서 이틀 동안 같은 옷을 입고 같은 거리를 돌아다니며 답이 없는 숙제를 해결해야 했던 나는, 과정 따위는 회사에선 중요하지 않다는 걸 알고 있는 나는, 어떻게든 결과를 만들어야 한다는 좌절하는 마음을 힘없는 팔뚝으로 힘껏 멱살을 잡고 걸어 다녔다. 그러나 무너지는 건 내 마음이었고, 나는 그 마음을 천천히 들여다보면서 힘들 때마다 카페에서 휴식을 취해야 했다. 그리고 나는 현실을 잊고 싶어서 책을 펼쳤다. 전자책을 켜는 일은 종이책을 펼치는 것보다 간단해서, 나는 1초 만에 책의 세계로 빠질 수 있었다. 이렇게 일에 파묻히는 시간이 되면 나는 영혼이 파괴되는 느낌을 받는데 이 영혼이 파괴되면 한동안 글이 써지지 않는다. 그걸 오늘로 또 느꼈다. 내가 쓰고 싶은 글감은 여름과 xx인데 아무래도 여름에 많은 일이 있었기 때문에 여름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천천히 그리고 빠르게 글을 쓰다가 여름을 여름이라 쓰다가 xx엔 뭐를 쓰려고 했더라 하다가 복수 상처 실패 노래 등등을 붙였는데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서 주인공 남자가 이별을 한 날 거북이 두 마리를 사서 집에 갔는데 거북이 두 마리가 잘 놀고 있다는 글을 쓰다가 아무래도 이번에는 아닌 것 같다 생각해서 장독대에 김치를 묻는 듯 묻어두기로 했다. 언젠가 다시 영혼이 채워지면 숙성된 이 이별을 한 남자가 거북이 두 마리를 산 글을 다시 쓸 수 있지 않을까.      


영혼을 회복하는 과정은 간단하다. 일에서 멀어지고, 좀 더 좋은 영화를, 영상을, 노래를, 사람들과의 대화를 하면 채워진다. 그러면 다시 글이 써지게 되는데, 문제는 현재 이 상황에서 글을 쓰기에는 너무나 많은 영혼이 무너졌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이럴 때는 글을 무작정 쓰기보다는 책을 읽고 천천히 기다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힘들게 돌아다니던 그곳엔 분수광장이 있었다. 나는 카페보단 그곳을 자주 가서 한낮의 더위에도 나무의 그늘 아래에서 멍하니 분수가 나오는 것을 봤다. 회사에 내놓을 답은 없었지만, 과정에서 나는 최선을 다하면 다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결과적으로는 그나마 잘되었다는 위안을 받는 결과로 이번의 프로젝트를 마무리하게 되었다. 아무런 답이 안 보일 때 광장의 리드미컬한 분수가 어떤 세계보다 좋았던 순간이 되었던 9월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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