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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운 Oct 05. 2024

소설과 달리기의 페이스

  10월에 쓸 소설 구상을 마쳤다. 농담과 멍을 함께 정리하다가, 농담을 빼고 멍으로 정리를 했다. 처음 구상은 농담으로 시작했지만, 갑자기 멍이 떠올랐다. 구상 중 멍은 점점 커져서 농담보다 더 중요한 소재가 되었고, 결국 중심이 되었다. 멍을 때리다가 멍을 선택한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는 생각을 하면 할수록 마음에 드는 상태다. 다만, 완전한 멍은 될 수 없을 거라는 걸 알고 있다. 그런데도 마음에 드는 상태를 떠올려본다. 어떤 것에도 신경을 쓰지 않는 자연상태, 움직이는 건 움직이고, 안 움직이는 건 안 움직이는 것을 보는 상태, 숨과 심박수가 거의 없는 상태, 숏츠와 도파민으로 얼룩졌던 눈과 뇌가 어디엔가 없어지는 상태.

인 기분.


 이렇게 구상을 하고 나면, 소설을 쓰기 시작해야 하는데 10월 소설은 이 전과는 달리 연료가 더 채워져야 할 것 같아서 시작을 하지 않고 있다. 중요한 하프마라톤도 있고, 몸이 다시 좋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계절이 변하면서 적응을 해야 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이럴수록, 여유와 멍을 가지는 소설 페이스 조절이 필요하다. 잠깐의 멈춤이 있어야 하는 이런 시기는 아무것도 아니다. 정말 아무것도 아니다.


 소설을 배워가면서 사람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 중 하나는 '하나'였다. 많은 소재들이 나오면 헷갈려한다는 것이다. 물론 처음에 소설을 쓸 때는 의도와 다르게 해석되는 것들이 재밌었다. 꿈 보다 해몽이라는 달콤함에 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의도를 알아보게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친절하게 의도를 내용에 넣는 것은 좋지 않다. 그건 내가 싫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의도를 하나만 넣는다면 읽는 사람이 파악하기 쉬워진다는 것을 최근에 알게 되었다. 이상한 일이다. 그전까지도 내가 써왔던 건 단순한 메시지 하나였는데. 아무튼 중요한 건 하나를 넣는 것이다. 


 중요한 것 하나는 마라톤이다. 어제는 마라톤대회가 2주도 남지 않아서 하프완주를 목표로 연습을 했다. 이틀 전 갑작스럽게 몸에 이상이 와서 아팠기 때문에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그래서 마음이 조급했다. 연습 전 후반에 지치면 천천히 조깅한다는 생각으로 완주나 하자하고 시작했다. 초반 페이스는 걱정과는 달리 괜찮았다. 평소 페이스보다 약간 빨랐고, 목표한 6:10의 페이스를 두고 달릴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효과를 느낄 때마다 연습의 힘을 믿게 된다. 10월 들어 날씨도 좋아져서 습함도 없었기 때문에 외부환경의 문제는 없었다. 문제가 있다면 내게 있을 것이다.


 15km까지는 괜찮았다. 이 전에 12, 13km를 달려서 그런지 어디서부터 힘든지도 알 수 있었다. 다만 16km를 넘어서면서 발목과 하체에 무리가 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서서히는 아니었고 갑자기 그랬다. 결국 16km에서 17km는 걷다 뛰다를 반복하며 17km에서 무리라는 생각에 그만두었다. 페이스는 6:30이었고, 시간은 1시간 53분이었다. 기록과 몸상태를 보면 하프마라톤 2시간 11분 이내를 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될 것 같은 기분이 들고, 하체의 부담으로 원래 뛰어야 할 길을 걸으니 기분이 좋진 않았다. 지금 겪은 실패를 발판으로 대회 때 기적으로 해낼 수만 있다면 어제의 포기가 값진 시간이 될 수 있을 텐데. 

현실은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클 것 같다.  


 이제 마음은 급해졌다. 이미 17km를 달렸기 때문에 대회 전까지 회복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다행인 건 달릴 수 있는 날이 아직 남아 있다. 하프 연습 실패를 복기해 보면 12km까지는 컨디션이 좋았다. 12km부터 15km까지는 무리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15km부터는 몸이 좋지 않았다. 당연히 대회 날엔 21km 기록을 목표로 달려야 한다. 2시간 11분 내로 들려면 6:10의 페이스를 유지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은 완주를 할 수 없는 몸인 것을 확인했다. 그러니까 완주라도 하려면, 초반엔 지금보다 조금 더 여유롭게 12km를, 그리고 여유롭게 17km를 달릴 수 있는 페이스 조절이 필요하다. 그 이후는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 19년 이후로 이렇게 긴 거리를 뛴 적은 처음이다. 연습을 하기 전 목표는 기록이었다. 하지만 포기를 하고 보니 내겐 기록보다는 완주가 중요하게 되었다.


 아쉽지만 어떻게 할 수가 없다는 것을 안다. 이번에 완주를 못 한다거나, 기록을 내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달리기를 멈출 건 아니다. 잠깐의 멈춤이라고 생각해야겠다. 여유와 멍으로 달리는 페이스 조절. 즉, 완주를 못 한다거나, 기록을 내지 못하더라도 된다. 그런 건 정말 아무것도 아니다. 정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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