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회를 앞두고 반 분위기는 운동회에 쏠려 있었다. 칠판에는 운동회 D-1로 쓰여 있었다.
반장은 키도 크고 힘도 셌다. 팔씨름, 허벅지 싸움, 닭싸움과 같은 몸으로 하는 건 뭐든 잘했다. 그리고 공부도 잘했다. 무엇보다 반 아이들에게 인기가 좋았다. 가끔 햄버거를 돌리기도 했는데, 반장이랑 친한 애들은 두 개도 받았다.
“얘들아 오 반 이기고 일등 하자.”
반장은 칠판에 종목들을 적고 출전할 아이들 이름을 쓰기 시작했다. 특히 닭싸움이 인기였다. 남자아이들이 서로 손을 들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쓰인 이름은 자신의 이름인 이태진이었다.
그 외 콩주머니 넣기나 투호, 긴 줄넘기, 제기차기, 승부차기, 계주에 한 명씩 자리를 채웠다. 사실 명단의 절반을 채워 갈 지점부터 유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관심이 가지 않았다. 나는 몸이 약했다. 그래서 저기 어느 종목에도 낄 수 없었다. 나는 창가 쪽을 보며 어젯밤 하늘을 날았던 것을 떠올렸다. 어쩌면 내가 하늘을 나는 것을 보여주면 저런 애들이나 하는 건 아무것도 아닐 텐데.
“쟤네 유치하지 않아?”
갑작스러운 귓속말에 조금 놀랐다. 채해정이었다. 채해정은 착해서 좋았다. 착하다는 건 나를 곤란하게 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준비물이 뭔지 알려주었고, 가끔 모르는 것도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채해정은 대부분의 시간을 여자들과 함께했다. 그래도 하루에 한 번은 대화하곤 했다. 그러면 나는 그 짧은 순간의 느낌이 좋았다. 집으로 가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오늘도 말을 걸어주었으니 분명 집으로 가는 길이 가벼울 것 같았다. 오늘 엄마한테 짜증 내지 말아야지. 밥 다 먹어야지. 일찍 자야지 라고 다짐했다. 나도 착한 아들이 되어야겠다.
“응. 조금 유치한 것 같아.”
나는 채해정처럼 귓속말로 동의했다. 나는 채해정의 다음 말이 궁금했다.
“얘들아. 송희준이 너희 유치하대.”
그 순간 소리치는 채해정에 의해 칠판에 집중하던 아이들이 나를 봤다. 곧이어 이태진도 고개를 돌렸고 나와 눈이 마주쳤다. 수업 종소리가 울렸다. 나는 채해정에게 배신감을 느꼈다. 이렇게 한 이유가 궁금했다.
“송충이. 수업 끝나고 보자.”
친구들의 별명은 각기 다르다. 다른 만큼 튀는 별명은 더 쉽게 집중이 되었다. 성이 특이하다거나, 몸이 약하거나, 인기가 없거나, 잘 씻지 않는다거나.
나는 이 중 세 가지를 가지고 있었고, 그로 인해 내 존재감은 별명인 송충이로 굳어졌다. 운동장에서 봄과 여름 사이가 될 때면, 어김 없이 잎이 떨어졌고 그 잎엔 작은 애벌레들이 기어다녔다. 송충이는 일부 장난기 있는 남자아이들이 괴롭히기 위해서 쓰였다. 나는 송충이가 기어다니는 것도 싫었다.
“으..응”
나는 알 수 없는 기분을 느꼈다. 나에게 그렇게 잘해주던 모습과는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왜 그런 거야 하고 묻고 싶었다. 수업중에, 나는 종이에 질문을 적었다. 채해정은 내 물음에도 못 본 체했다. 나는 보고도 못 본 척하는 채해정의 태도에 짜증이 났다. 급기야 채해정은 책상을 넘어오지 말라는 무언의 손짓을 했다. 나는 순간적으로 일어서며 채해정이란 이름을 크게 불렀다. 선생님이 내 이름을 부르며 수업 중에 왜 그러냐며 뒤로 가서 서 있으라고 했다. 나는 뒤로 나갔다. 곧이어 아이들이 송충이라 하며 서로 깔깔하며 웃는 것을 봤다.
*
기분이 좋지 않을 땐 구름을 만지곤 했다. 처음 공중에 뜬 이후부터 줄곧 나는 하늘을 나는 자세를 고민했다. 먼저 하늘을 날으는 모습을 그렸다. 슈퍼맨처럼 한쪽 팔만 뻗을지, 아니면 두 팔을 뻗을지, 그것도 아니면 두 팔을 비행기처럼 백 팔십 도로 펼지, 전투기처럼 사십 오도로 펼지. 그리고 나니 역시 전투기는 멋있고 빨랐다. 그리고 미사일도 가지고 있다. 나는 전투기처럼 사십 오도를 유지했다. 더 빠르게 날고 싶었다. 하지만 나를 향하는 바람에 눈이 아프다는 사실을 알았다.
칠판엔 예각과 둔각을 구분하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전투기의 후퇴 각보다 작은 예각이었다. 나는 교실의 뒤에서 아이들의 뒷모습을 봤다. 이태진이 손을 들며 예각이라 말했다. 선생님은 칭찬했고, 아이들은 반장을 봤다. 채해정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 모습이 더 유치해 보였다.
나는 몸이 약했고,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아팠다. 물론 지금도 아파서 병원에 자주 가고 있다. 아마 내 또래 기준으로 나보다 병원이나 한의원을 가 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병원에 가면 다른 아이들보다 주사를 잘 맞을 수 있다. 아무리 쓴 약도 잘 먹을 수 있다. 약을 먹은 후엔 사탕을 먹는 건 유치한 일이다. 그래서 그런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다.
내가 하늘을 나는 능력이 생긴 것은 병원에서 주사를 많이 맞아서 그런 게 아닐까라고 의심했다. 병원에 가려면 아파야 하는데 최근에 아팠던 게 언제였더라? 그러고 보니 아파서 병원을 간 지도 오래되었다. 하늘을 날 수 있을 때부터 아프지 않았던 것 같은데. 그런 생각을 하던 중 선생님이 내 앞에서 이름을 불렀다. 한참을 불렀는데 반응이 없니라 말했고, 아이들은 웃고 있었다. 오늘따라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옥상에서 바라본 하늘 위는 무한해 보였다. 가늠할 수 없는 크기의 하늘은 나는 내가 날 수 있다는 사실을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었다. 혹시나 꿈은 아닐까란 생각에 다시 옥상에 올라갔다. 옥상 문은 닫혀 있었다. 옥상을 여는 방법이라면 알고 있었다.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느꼈다. 하늘은 난 게 아니라 상상이라면? 분명 나는 날았는데. 나는 그때처럼 누워 무한히 펼쳐져 있는 하늘을 봤다. 그러나 이 전처럼 하늘을 향해 몸이 뜨지 않았다. 이럴 리가 없는데. 전투기처럼 팔을 뻗고 날았던 건? 맞바람에 눈이 아팠던 건?
수업이 끝나고 이태진이 다가와서 “너 왜 유치하다 했냐. 유치하다고 한 거 맞아?”라고 했다. 나는 채해정을 가리키며 “얘가 먼저 그랬어.”라고 했다. 그러자 채해정이 “내가 언제?”라고 했다. 발뺌하는 채해정의 모습에 다시 한번 채해정에게 배신감을 느꼈다. 이제 채해정과 두 번 다시 말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사과해.”
정말 그거면 끝인가 싶었다. 그리고 이태진은 한 마디를 더 붙였다.
“그리고 우리 반 지면 네 책임이야.”
그게 왜 내 책임이냐고 묻고 싶었지만, 이기면 끝날 문제인 것 같아서 알겠다고 했다. 이태진은 뭐든 잘하니까. 그런데 나처럼 이태진은 하늘을 날 순 없지라 생각했다. 이태진은 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공책을 봤다. 왜 그런거야라고 물은 글에는 채해정이 쓴 답글이 있었다.
너도 유치하다고 생각했잖아.
억울했다. 채해정은 왜 그렇게 생각했을까. 오해라고 해야 했다. 아이들이 무엇을 하든 나는 아무 생각도 없었다. 그저 하늘을 날았던 것과 채해정이 말을 걸어줘서 기분이 좋았을 뿐이었다. 지금까지 내게 잘해준 채해정을 생각하면 다른 사람이 된 것만 같았다. 쉬는 시간이라 채해정은 다른 여자아이들과 있었다. 그 안으로 들어가서 말할 순 없었다. 오기였을까. 나는 다시 메모했다.
네가 유치하다고 해서 유치하다 했어.
다음 시간 채해정은 나를 보고 말했다.
“너는 네 생각도 없이 따라 한 거라고? 앞으로 말 걸지마.”
나는 그 말 한마디에 아무것도 아니게 된 그 순간에 어디론가 도망치고 싶었다. 곰곰이 생각하면 채해정을 따라 한 것은 아니다. 나도 유치하다고 생각했으니까. 이대로 채해정과 멀어지고 싶지 않았다. 채해정에게 비밀을 말해야겠다. 내가 하늘을 날 수 있다는 걸 알면 아이들이 인정할 것 같았다.
채해정의 친절함은 내게 특별했다. 무엇보다 나는 그것이 친구가 되는 첫걸음이었기 때문에 포기할 순 없었다.
*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생겼다. 예상과는 달리 채해정은 내가 날 수 있다는 걸 이태진에게 알렸고, 이태진은 “그게 정말이야?”라고, 물었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이는 내게 “정말이지?”라고, 다시 한번 더 물었다. 나는 그 말은 사실이라 거짓말은 아니라고 했다. 한 편으론 아이들이 가질 수 없는 능력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러면 보여줘 봐. 하늘 나는 거.” 그 말 뒤 이태진은 아이들과 웃었고, 채해정은 몰래 웃는 것처럼 보였다. “거짓말이면, 알지?”란 말에 나는 거짓말이 아니었기 때문에 당당하게 대답했다.
하교 시간, 나는 운동장에서 가장 높은 놀이시설인 정글짐에 올라섰다. 이태진과 채해정이 있었다. 아이들 몇몇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저 둘만 있으면 아이들에게 내가 하늘을 날 수 있다는 건 금세 알려질 거니까. 표정을 보니 믿지 않는 표정이 느껴졌고, 순간 나도 날 수 있을지 초조해졌다. 혹시 날지 못한다면 어쩌지. 거짓말쟁이가 되는 건가. 라고. 그리고 두 번 다시 내 말을 믿지 않겠지 라고.
지금보다 더 어렸을 때, 두 명의 두 살 위인 형들과 수영장에 간 적이 있었다. 형들은 나보다 조금 더 키가 컸고, 그래서 한 등급 높은 수영장을 갈 수 있었다. 처음엔 내 키에 맞춰서 놀았다. 내 무릎까지 오는 수영장에선 형들은 시시했을 것이다. 충분히 놀았다고 생각한 건지 형들은 “희준아 여기서 혼자 놀고 있어 형들은 저기서 놀고 있을게.”라고 했고 나는 “응 형아.”라고 한 뒤 형들이 다른 쪽으로 가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혼자 떨어진 나는 처음엔 혼자 놀다가 형들이 있는 곳이 궁금해졌다.
나는 정글짐에 기대어 누운 뒤 하늘을 봤다. 하늘에 있는 구름의 움직임은 다양해서, 어느 한 곳만 보기 어려웠다. 나는 나름의 기준점을 두고 그 지점까지 구름이 이동하길 바랐다. 이동하는 구름은 천천히 움직이나 싶더니 곧 내 머릿속에만 있는 기준점에 닿았다. 내 몸은 정글짐에서부터 서서히 뜨기 시작했고, 나는 이 전과는 달리 슈퍼맨 자세를 하기 위해 한 손을 뻗고 한 손은 허리에 댔다. 그리고 아이들 속 놀라는 이태진과 채해정의 표정을 본 것 같았다.
형들이 있는 곳의 물 깊이는 나의 목까지 올라왔다. 발은 닿았지만, 닿는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고, 그때 서야 나는 무섭다는 두려움이 생겼다. 형들이 보였다. 형들을 불렀지만, 아무도 나를 보지 못했다. 나는 형들에게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한 발짝 내딛는 순간 물은 내 키보다 깊었다. 나는 순간 보이지 않는 깊이의 공포를 인식해서인지 허우적거렸다. 형들의 말을 듣지 않고 온 것을 후회했다. 어른인지 아니면 형들인지 모를 사람들이 다가왔다. 나를 잡고 밖으로 꺼내었다. 거기까지 기억한 후 눈을 뜨니 수영장 천장이 보였다.
햇살에 비친 빛이 물에 반사되고 있었다. “희준이 살았다. 언제 왔어 말하지.”라는 형들의 말에 걱정을 안긴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 후 다신 형들과 함께 수영장을 가진 못했다.
나는 그 날 수영장에서처럼 눈을 떴다. 조금 전까지 보던 구름은 내 상상 속의 기준점을 넘어서고 있었다. 아이들이 있는지 아래를 내려봤다. 정글짐 아래엔 아무도 없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겠다. 조금 전 날았던 기억은 꿈이었까. 그런데 진짜 날았으면 어쩌지. 내일 이태진이 내게 어떤 말을 할까? 채해정이 말을 걸지 않을까? 이번엔 날아서 집까지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이 구름을 보며 혹시 날고 있는 나를 이상하게 보면 어떡하지란 걱정도 들었다. 하지만 그런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하늘을 나는 걸 보여주는 건 아무것도 아니다.
물 속에서 뜨는 것처럼 하늘에서 몸의 힘을 뺐다. 팔을 뻗으며, 나아갔다. 나아갈수록 나를 맞바람이 밀어내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맞바람에 눈은 아팠지만, 참을 수 있었다. 참을 수 있다는 건 생각보다 잘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하늘은 넓었지만 계속해서 나아가면 집에 곧 도착할 것 같았다. 지금보다 조금 더 빠르게 나아가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