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은 결의를 가슴에 품고 고향을 떠난 매헌 윤봉길 의사의 발자취
우리나라에 윤봉길 의사를 기념하는 기념관과 동상은 서울 서초 양재 시민의 숲을 비롯해 전국에 여러 곳 위치하고 있다. 그중 예산에서 만난 윤봉길 의사 기념관 이야기를 적어본다. 이번 예산 여행을 떠나면서 가장 마음에 남았던 곳은 바로 윤봉길 의사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에 지어진 생가터와 기념관이었다.
광복 80주년을 기념하여 서초 양재 시민의 숲에 위치한 윤봉길 의사 기념관도 재개관했다고 하는데, 예산의 기념관도 이번에 재개관을 한 곳이라는 점에서 묘하게 가까운 마음이 느껴졌다. 예산의 윤봉길 의사 유적지에는 기념관뿐만 아니라 그가 태어난 집인 광헌당과 중국으로 갈 때까지 거주하던 저한당, 농촌 계몽 운동을 펼치던 부흥원 등이 복원되어 있다. 생가터를 돌아보며 그가 살아온 발자취를 함께 만나볼 수 있는 뜻깊은 길이었다.
모든 곳들이 다 남다른 감회를 주었지만,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관은 입구부터 심장을 크게 울렸다. “장부출가생불환” 즉, “대장부가 집을 나서 대업을 이루지 못하면 살아 돌아오지 않는다”라는 말을 남기고 독립운동을 위해 떠나셨다고 한다. 이런 굳은 결의가 있었기에 본인의 목숨 또한 조국을 위해 버릴 수 있었겠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기념관을 돌아보며 윤봉길 의사에 대해 너무 아는 것이 없다는 사실에 부끄러웠다. 윤봉길 의사는 11세에 신식 교육기관인 덕산공립보통학교에 입학했으나 1년 후 3.1 독립운동과 일제 식민 교육에 반발하여 자퇴를 했다. 어린 나이에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보통 사람과는 남다른 분임을 알 수 있는 일화가 아닌가 싶다.
그는 한시에도 상당히 능했다고 한다. 특히 농민들의 무지함을 안타깝게 여겨 그들을 가르치고 교화하는 데도 힘을 썼다는 부분은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 그를 단순히 애국지사라는 점만 생각하고 학문적인 지식 수준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는데, 이곳에서 그분의 짧은 일생을 깊게 짚어볼 수 있었다.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관은 단순 나열식의 볼거리를 제공하는 곳이 아니라, 진심 애국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만드는 감동을 받을 수 있는 공간이었다.
기념관의 마지막 장면은 아직도 눈물이 지어진다. 윤봉길 의사가 처형당하는 영상을 현실에 근거하여 미디어아트 형식으로 상영하고 있었는데, 참았던 눈물을 감출 수가 없었다. 너무도 의연한 그분의 모습에 많았던 할 말을 안으로 삼키고 말았다.
윤봉길 의사가 순국한 뒤 그의 유족들은 일제의 탄압과 감시를 받으며 어렵게 생활했다고 한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지만 돌아오는 것은 유가족들의 핍박과 설움뿐이라니, 그럴 수밖에 없었던 당시의 상황이 답답하기만 하다. 그 모든 것을 감수하고 본인의 목숨을 내던진 수많은 독립유공자들에게 현실을 살고 있는 우리는 깊은 존경을 담아야 할 것이다. 그분들께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가 아닌지 잠시 생각에 잠긴다.
이런 역사적인 장소를 방문할 때마다 나는 나의 삶을 반성한다. 과연 나라면 그들처럼 행동할 수 있었을까 하는 물음과 함께. 평범한 농민에서부터 지식인들까지, 오직 독립을 위한다는 생각으로 이름 없이 스러져간 그분들께 존경의 마음을 담뿍 담는다.
그 의연했던 청년의 마지막 뒷모습이, 오늘 우리가 누리는 이 땅의 평화를 묵묵히 지키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