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블레스 오블리주, 그들이 남긴 삶의 기록

대한민국 최고의 명문가, 이회영 일가의 독립 투쟁기

by 혜원

남산에서 만난, 잊을 수 없는 충격

4년 전 우연히 남산을 찾았다가 우당 이회영 기념관에 들렀다. 그곳에서 만난 이회영 일가의 독립운동 투쟁기와 그 처절한 말로에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그들의 삶이 결코 편안하지 않았음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토록 외롭고 고통스러웠음을 눈으로 직접 마주하고 나니 깊은 슬픔을 감출 길이 없었다.


개인의 행복을 포기하면서까지 무엇 때문에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쳐야 했을까. '나에게도 과연 그럴 수 있는 용기가 있을까'라는 의문이 전시관을 돌아보는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우당 이회영 기념관은 남산 아래 예장동에서 사직동으로 이전을 했지만, 여전히 그들의 처절했던 발자취가 고스란히 전해진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꼭 한 번 방문해 그들의 삶을 느껴봐야 할 곳이라 생각한다.


모든 것을 버린, 여섯 형제의 결단

왼쪽에서 네 번째, 이회영 선생

한 집안에서 독립운동가 한 명도 배출하기 쉽지 않은데, 이회영 선생의 여섯 형제와 그 가족이 모두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는 사실은 깊은 감동을 준다. 한국 최고의 명문가 출신으로 어느 것 하나 부족함이 없던 그들이 가진 모든 기득권을 포기하고 만주로 망명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과 결단이 있었을까.


일제강점기 대부분의 부호들이 일본과 손을 잡았던 반면, 이회영 일가는 가지고 있는 모든 재산을 처분하고 만주로 떠나 경학사와 신흥강습소를 설립했다. 당시 40만 원은 현재 가치로 600억 원이 넘는 엄청난 금액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 거금을 바치고도 여섯 형제 중 누구도 편안한 삶을 살지 못했다. 심지어 둘째 형 이석영 선생은 굶주림에 목숨을 잃을 정도로 처참했다. 나는 이 시점에서 다시 한번 깊은 생각에 잠긴다. 무엇을 위해서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는가. 후대의 우리가 그들의 삶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만이 그들의 숭고한 희생을 값지게 만드는 첫걸음이 아닐까.


남겨진 흔적, 그리고 우리의 기억

남산 예장공원에 넓게 자리하고 있던 기념관이 옮겨간 사연은 더욱 서글프다. 그곳에 남산 곤돌라 승강장이 들어서면서, 기념관은 기존에 비해 다소 작고 비좁아 보이는 종로 사직동으로 옮겨와야 했다. 그들이 목숨까지 내놓으면서 지키려 했던 나라는 지켜냈지만, 과연 그들을 기억하는 우리의 흔적은 얼마나 오래 남을지 되돌아보게 되는 에피소드이다. 그나마 다섯째인 이시영 선생이 초대 부통령이 되어 나라의 초석을 다지고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수여받았다는 것이 일가에게는 마지막 위안이 아닌가 싶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몸소 실천한 이회영 일가의 희생정신은 결코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할 우리의 역사다. 그래야만 그들의 넋이라도 위로를 받지 않을까 하는 깊은 상념에 잠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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