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 고택에서 만난 강인한 집념과 지고지순한 사랑

김정희의 추사체 뒤에 숨겨진 화순옹주의 역사, 시공간을 초월한 깊은 울림

by 혜원

충남 예산을 여행하며 가장 먼저 방문한 곳은 추사 김정희 선생 고택이다.


선생의 고향이 충남 예산이라는 것을 여행을 준비하며 알게 되었다. 이곳에는 생가뿐만 아니라 추사와 추사의 증조부 묘역과 기념관, 그 외 다양한 유적지들이 모여 있다.


한여름의 열기가 대단했던 때라 아침 일찍 방문을 했음에도 이글거리는 지열에 쉽게 맞설 엄두가 나지 않는다. 쿨 토시를 착용하고 양산으로 중무장을 했지만, 숨이 막힐 듯 뜨거운 태양이 복병이다. 하지만 시공간을 뛰어넘은 장소가 주는 설렘은 한여름의 더위에도 맞설 수 있는 용기를 준다.


한여름의 추사 선생 고택은 고즈넉하기 그지없다. 잔디밭은 세심하게 잘 가꾸고 다듬어져 있었다. 멋진 곳을 마주치는 사람 하나 없이 전세 낸 듯 다니다 보니 한가로움은 좋았지만, 이 풍경을 혼자서 누리기에 다소 아까운 마음이 들었다.


고택 뒤편에 자그맣게 자리한 화단에는 계절별로 아름다운 꽃들이 시기에 맞춰 피고 지기를 반복한다고 한다. 우리가 방문한 때에는 분홍빛 상사화가 환상의 풍경을 선사해 주었다. 추사 김정희 선생의 일대기를 알지 못한다고 해도 고택이 주는 편안함에 이미 무장 해제가 된다.




그다음 코스는 추사 선생을 조금 더 깊이 알고자 방문한 추사기념관이다.


추사 김정희는 일명 '금수저' 집안에서 태어났다. 김정희의 증조부인 월성위 김한신이 영조대왕의 사위였다고 하니 말이다. 어렸을 적부터 천재 소리를 듣고 자란 추사는 그것에 그치지 않고 끊임없이 연구에 연구를 거듭해 추사체를 완성시켰다.


그의 추사체는 제주도로 유배를 간 시기에 완성이 되었다. 유배라는 가혹함 속에서 자포자기하기보다는 본인이 가진 기술을 갈고닦아 뛰어난 추사체를 완성시켰다는 점에서 존경을 받아 마땅하지 않겠나 싶다.


추사 고택에는 또 다른 인물의 역사가 숨겨져 있다. 숨겨진 역사를 찾아가는 여정 또한 즐겁고 행복하다. 바로 월성위 김한신에게 시집을 간 영조대왕의 차녀, 화순옹주의 이야기이다. 화순옹주는 김한신이 38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자 곡기를 끊고 그를 따라 세상을 떠나 왕가에서 최초로 열녀문을 받은 인물이다.


화순옹주와 월성위 김한신의 부부애가 얼마나 깊었는지를 알 수 있는 단편적인 일화가 아닌가 싶다. 지금은 홍문 말고는 그들을 기억할 그 무엇도 남아 있지 않지만, 화순옹주의 진실된 사랑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추사 김정희 선생과 그의 증조모인 화순옹주의 삶까지 이곳은 내게 조금 특별한 장소로 기억된다. 한 여인의 지고지순한 사랑의 다짐과 금수저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유배라는 참혹한 현실에서도 안주하지 않은 인물의 강인함까지...


아름다운 풍경 뒤에 숨겨진 형언할 수 없는 슬픔과 한 시대의 부조리를 온몸으로 맞서 이겨낸 그들의 삶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장소였다. 옛사람의 일대기를 찾아가는 여정은 이렇듯 흥미롭고 아름다워 오랜 기간 여운을 남긴다.


우리가 걸었던 이 고즈넉한 길 위에서, 그들의 이야기는 영원히 살아 숨 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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