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겨울, 평년보다 눈이 많이 내렸다. 도장으로 가는 길, 하얀 눈이 소복이 쌓인 거리를 보며 나는 본능적으로 중얼거렸다.
"와~ 차량운행 어떻하지?”
하지만, 도장에 도착한 아이들은 달랐다.
“관장님!! 우리 눈싸움 하면 안돼요?”
“아~ 눈사람 만들고 싶다..”
아이들은 이미 신이 나 있었다. 나는 순간 어색하게 웃으며 깨달았다. 같은 눈을 보면서도, 어른과 아이들은 전혀 다른 세상을 보고 있다는 것을.
눈이 내리는 날, 아이들은 하나같이 들뜬다. 운동장에 쌓인 눈을 보며 맨손으로 만지고, 서로에게 던지며 웃는다. 신발이 젖고 손이 얼어붙어도 개의치 않는다. 그저 지금 이 순간이 신날 뿐이다.
그러나 나는 그렇지 못하다. 눈이 쌓이면 미끄러질 위험이 생긴다. 차량운행 할수 있을지 신경쓰고, 계단을 치워야 하고, 아이들이 넘어지지 않도록 신경 써야 한다. 누군가 장난치다가 다치진 않을까? 바닥이 얼면 어떻게 하지? 머릿속에는 온갖 걱정이 쌓인다. 아이들은 눈을 맞으며 즐기지만, 나는 차량운행과 빗자루를 떠올린다.
특히 군대를 다녀온 남자들에게 눈은 낭만이 아니라 ‘작업’이다.
과격하게 표현하자면
'하늘에서 쓰레기가 내린다.' 라고 생각한다.
군 시절, 새벽 5시에 일어나 차가운 삽을 들고 눈을 치우던 기억이 떠오른다. 끝없이 쌓이는 눈을 퍼내며, ‘도대체 이걸 다 치운다고 뭐가 달라지나’ 하는 생각을 했던 날들. 그 기억은 시간이 지나도 몸에 남아 있다.
그래서 성인이 되어도 눈이 내리면 반가움보다 먼저 한숨이 나온다.
아이들이 “눈싸움해도 돼요?“라고 물을 때, 나는 머릿속으로 교통 마비와 체육관 앞 얼어붙은 바닥을 걱정하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순수하게 눈을 즐길 수 없게 되었다. 책임질 것이 많아지고, 해야 할 일이 늘어나면서 ‘하얀 낭만’보다는 ‘치워야 할 눈’이 먼저 보이게 되었다.
하지만 가끔은 생각한다.
아이들처럼 잠시라도 눈을 즐길 수는 없을까?
눈이 내리는 날, 나는 체육관 앞에서 빗자루를 들고 있다가도 뛰어노는 아이들을 보며 피식 웃곤 한다. 장갑도 없이 눈을 만지며 서로 던지고, 손이 시려도 깔깔 웃는 모습.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문득 ‘어릴 때 나는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날, 아이들이 “관장님도 같이 해요!”라며 눈뭉치를 내게 내밀었다. 평소라면 “미끄러지니까 조심해”라고 말했겠지만, 이번만큼은 나도 모르게 손을 뻗었다.
얼음장처럼 차가운 눈을 손에 쥐는 순간, 아주 잠깐이지만 어릴 적 그 감각이 떠올랐다. 그리고 아이들이 왜 이렇게 즐거워하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이들은 ‘지금’을 산다. 어른들은 ‘내일’을 걱정한다. 하지만 가끔은, 아이들의 눈을 빌려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