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척도 그래프.
친구라는 관계를 가질 수 있었던 그 시점부터 나는 항상 내가 맺고 있는 그 관계를 정의하곤 했다.
Y는 친구 상위 5% (내가 이 사람을 좋아하는 이유: 호기심 30%, 공감능력 25%, 유머코드가 나와 맞음 20%, 웃는 게 예쁨 20%, 시간 약속 잘 지킴 5%), M은 친구 하위 5% (같은 취미 50%, 유머코드 30%, 한국어 가능 20%). 이런 식으로 말이다. 이 사람이 '친구 척도 그래프'의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지, 또 왜 이 사람이 내게 유일무이한 존재인지 머릿속으로 그래프를 그렸었다. 한 번도 그 그래프를 실물로 그려보거나 정리한 적은 없었지만, 내 머릿속에는 뚜렷했다.
내가 직접 나서서 친구들에게 설명하려 한 적은 없지만, 청소년기에는 친구들이 나에게 본인의 백분율 위치를 확인하고, 또 그 이유를 들으면서 나에게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는 일도 있었다. 한창 친구들이 좋아하고 사랑한다는 말을 쓰기 시작할 때였다. 나는 사랑한다는 말도 좋아한다는 말도 내뱉기 어려웠다. 상대가 내뱉는 좋아하고 사랑한다는 말과 내가 느끼는 감정이 동일한지 확인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이러한 이유로 인해 당신이 내게 소중한 존재이고, 그 때문에 내가 행복해진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쉬웠다. 다른 사람들은 언어의 능력이 부족하거나 이렇게까지 표현하는 게 귀찮으니까 사랑한다는, 좋아한다는 말로 퉁친다고 생각했다.
20대 후반이 되어감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사랑함, 좋아함이라는 말의 정의는 내리지 못했다. 연애를 하면 사랑이라는 카테고리가 새롭게 생기게 될까 싶어서 연애를 했지만, 나의 척도는 바뀌지 않았다. 전 애인 F는 나의 여느 친구들과 다르지 않게 나의 우정 그래프에 안착했고, 유일하게 다른 점이라면 괄호 안에 들어가는 특징에 섹슈얼리티가 있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성적 이끌림이라는 특징은 사랑으로 치환되지 않았다. 나의 친구들은 내 마음의 정원에 더 많은 지분이 있는데, 하위 40%의 그를 사랑한다고 표현할 수는 없었다.
하여튼 이제는 청소년이 아니니, 당신이 내 백분율 어딘가에 위치해 있고 이러이러한 장점으로 내게 마음에 들기 때문에 좋다는 말은 삼간다. 사랑한다는, 좋아한다는 말은 남들이 나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 것 같다고 생각한 타이밍에 내뱉는다.
어떠한 순간에 '어, 나 이 사람 사랑하네!' 혹은 '어, 이 사람이 나를 사랑하고 있네!'라고 느낀 적은 있지만, 그것은 찰나의 순간으로 내게 존재한다. 지지난주에 일을 마치고 녹초가 되어 집에 가는 도중에 내가 대학에서 유일하게 친구라고 부르는 K가 지하철 역에서 나를 발견하고 달려왔다. 번잡한 지하철 역의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내 뒷모습을 보고 나임을 알아채고 뛰어와서 와락 안기는 그녀가 사랑스러웠다. 싱그럽게 피어나는 그녀의 미소도 사랑스러웠다. 인턴을 시작하면서 주중에 만날 기회가 없었는데, 이렇게 평일 저녁 갑작스럽게 만난 상황도 내게 선물 같았다. 집에 돌아가는 기차에서 이 만남을 생각하니 행복해졌다. 그리고 내가 그녀를 사랑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유일무이하게 사랑스러운 존재가 나타나면 사랑한다는 말을 쉽게 꺼내게 될까 싶다가도, 다른 사람들도 나와 비슷하게 느끼지만 단지 더 기꺼이, 또 풍족하게 표현하는 것 그뿐 아닐까 하는 생각도 여러 번 했었다. 아직도 사랑함과 좋아함의 정의는 내게 모호하다. 하지만 이 답을 꼭 알아야 할 것 같지는 않다. 추상적인 감정은 모두 각자 정의하기 나름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