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만나지 않았다면 더 좋았을 것입니다.
다섯 살의 작은 아이로 첫 뺨을 맞았을 때부터 직감했다. 나의 보호자는 무력하다는 것을. 기억은 휘발성이 있어서 가물가물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당사자에게 확인받은 명확한 기억과 사실은 나는 같이 놀던 아이에게 이유 없이 뺨을 맞았고, 아이 엄마들은 그 사실을 인지했고, 나의 엄마는 뺨을 때린 아이 엄마 앞에서 어쩌질 못하고 우물쭈물 댔고, 나의 뺨을 때린 아이 엄마의 태도는 당당했다.
독립은 위대한 것이다. 나는 스물한 살이 되고 독일로 이주했다. 한국을 벗어나면서 나는 게임을 리셋하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화를 내며 길길이 날뛰지 않아도 함께 살아나갈 동거인들과 갈등을 풀어나갈 수 있을지 궁금했다. 내가 꾸리는 온전한 나의 삶이 어떤 모양새일지 너무 궁금했다. 그리고 지금은 차츰 자리를 잡아 무엇과도 바꾸지 않을 소중한 일상이 생겼다. 매우 평화로워서 가끔은 지루할 정도이다. 플랫메이트들과는 함께한 3년 내내 서로 배려하면서 갈등 없이 즐겁고 행복한 일들만 가득했다. 이들과 헤어지는 날을 생각하면 벌써 눈시울이 붉어져온다.
한국에 돌아오면 자꾸만 엄마가 나의 마음 한 귀퉁이에라도 본인의 자리를 만들어 보려고 애쓴다. 아무리 봐도 본인이 나에게 아무런 가치를 못하는 게 느껴져서이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그러한 노력이 나를 공격해서 자극하는 패턴이라는 사실이 변하지 않는다. 나에게 성추행을 한 인간의 가족이 결혼을 한다며 이 결혼식에 꼭 가야 한다며 나에게 위계의 말을 내리꽂았다. 분명 우리는 그 당시 이미 합의를 봤는데 말이다. 심지어 한 달 전에도 ”그들과 연을 끊었기 때문에 난 이번 설에 그 집에 방문할 수 없다 “는 이야기를 했는데도 말이다. 결국 “왜 성추행 당할 때 피하지 못했냐”는 2차 가해의 말을 듣고서 나는 이성을 잃었고, 그녀는 놀라서 나를 진정시키려 했다. 병 주고 약 주고는 이런 상황에 쓰라고 만들어진 듯하다.
애증이 섞여있던 기간도 있었지만 이젠 그냥 모든 기억들을 지우고 그들과 모르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그냥 길을 걷다가 지나쳐도 괜찮은 사람으로. 그냥 동네 아줌마나 아저씨로. 왜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애틋한 관계에서 한 사람이 기억상실증이 걸려서 주위에서 괴로워하는 주제는 많은데, 가깝지만 해로운 사람을 더 이상 기억하지 못해서 과거의 기억이 존재할 때보다 행복하게 사는 사람에 대한 영화나 드라마는 없을까?
나는 이제 힘든 일이 생겼을 때 다른 이들을 의지한다. 나의 친애하는 플랫메이트, 그의 가족들, 나의 절친. 그들은 내게 실제적 방안을 함께 고민하고 정서적 지지를 보낸다. 그게 위로가 된다.
경계선을 다시 정해야겠다. 짧은 기간이어도 부모와 한 지붕아래 함께 사는 것은 불행하다. 한국에 또 들어오게 된다면, 경제적 자립을 해서 혼자서 지낼 곳을 찾아오겠다.
임플라논 때문에 월경의 주기가 사라진 삶을 살고 있는데 한국에 온 후로 급격하게 월경을 길게 하고 있다. 29일째다. 이 정도면 월경이 아니라 달경이라고 불러야겠다. 임플라논의 부작용으로 사라졌던 월경통이 또 찾아왔다. 스트레스가 많다며 몸이 신호를 보낸다. 다시 독일로 돌아갈 때가 된 것이다.